중국 정부가 자국 내 인터넷 인프라 사업자가 부품·소프트웨어를 구매할 때 국가 안보 위험 여부를 사전 심사해 문제가 있을 경우 거래를 금지할 수 있도록 한 새 규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안보 위협을 이유로 중국 통신 장비 회사 화웨이의 미국 진출을 차단하고 미국산 부품·서비스 거래를 금지한 미국에 맞서 중국도 미국의 IT 기업들을 겨냥한 보복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미·중 양국이 IT 분야를 국가 안보 차원에서 다루면서 IT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제기된다.

중국의 인터넷 감독·규제 기구인 국가인터넷판공실은 지난 24일 홈페이지에 새 인터넷 규제안인 '인터넷 안전심사방법'을 공개하고, 오는 6월 24일까지 한 달 동안 공개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친다고 공지했다. 총 21조로 구성된 새 규제안은 중국 내 주요 인터넷 인프라 운용 사업자는 부품과 서비스를 구매할 때 반드시 국가 안보 위해(危害) 여부를 심사받아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중국 정부가 인터넷 인프라 사업자의 부품·서비스 구매건에 대해 사실상 거부권을 갖게 되는 것이다.

국가인터넷판공실은 특히 핵심적 안보 위해 요소 가운데 '정치·외교·무역 등 비기술적 요인으로 인해 상품과 서비스 공급이 중단될 가능성'과 '외국 정부의 자금 지원이나 통제를 받는 경우'를 포함했다.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정부 및 군사 분야에서 화웨이 장비 사용을 금지하면서 내세운 것과 같은 논리다.

규제안 초안에는 심사 대상이 될 온라인 인프라 사업자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았지만, 차이나모바일 등 국영 통신 사업자부터 은행·증권사 같은 금융기관, 바이두·텐센트 등 대형 포털, 알리바바와 징동 등 전자상거래 업체가 망라될 것으로 보인다. 일부 중화권 매체는 "중국 정부가 새 규제 도입을 앞두고 무려 한 달간이나 공개 의견 수렴 기간을 거치는 건 극히 이례적"이라고 보도했다. 이를 두고 "미국 IT 업계의 우려와 반발을 촉발함으로써 화웨이에 대한 미국 정부의 제재 강도를 완화하고 무역 협상 테이블로 미국 대표단을 빨리 끌어내기 위한 차원"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6일 전문가들을 인용해 "화웨이를 거래 제한 명단에 올린 미국에 맞서 중국이 새 규제안을 미국 IT 기업에 보복하는 수단으로 삼을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또 미국과 중국이 서로 자국 시장에서 상대방 기업들을 축출하는 규제를 강화함으로써, 세계 IT 산업계는 중국을 배제한 미국 주도 생태계와 미국을 배제한 중국 주도 생태계라는 명확히 갈리는 두 생태계 가운데서 선택을 강요받는 처지가 될 수 있다고 SCMP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