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욱의 스타트업 세계] '제2 벤처 붐'은 거품인가?

조선일보
  •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입력 2019.05.27 03:10

20년 전과 달리 거품이 아닌 8가지 이유
인터넷 사용자 5%→56%, 인터넷 속도 1만배 빨라져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4년 전인 2015년 말 큰 금융회사에 강연하러 간 적이 있다. 장차 금융회사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는 핀테크 스타트업에 대해 얘기했다. 강연이 끝나자 그 회사 대표는 필자에게 지금의 스타트업 붐은 거품일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2000년 닷컴 거품기에 은행 지점장을 했는데 당시 많은 벤처기업 가치가 천정부지로 올랐다가 거품이 꺼지며 다 망하는 것을 지켜봤다고 했다. 사실 그때는 골드뱅크, 리타워텍 등의 주가가 폭등해 시가총액이 수천억에서 조 단위까지 올랐다가 거품이 꺼지면서 주식이 거의 휴지 조각이 되곤 했다. 그는 같은 일이 또 일어나리라 굳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는 달리 지난 4년간 벤처 붐은 오히려 훨씬 더 뜨거워졌다. 당시 1조원 가치의 유니콘 스타트업은 전 세계에 100여 곳쯤 됐다. 그런데 지금은 340여 곳으로 크게 늘어났다. 한국의 벤처 투자 금액도 그사이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그럴수록 필자에게 "지금의 벤처 붐은 거품이 아닌가요. 곧 꺼지는 것이 아닌가요" 하고 물어보는 분은 더 많아졌다. 신생 기업들의 가치가 너무 빨리 상승하는 것이 믿기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20년 전의 벤처 붐과 지금은 다르다. 그때는 정말 거품투성이였지만 지금의 붐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환경이 달라졌다.

지금이 20년 전과 다른 8가지 이유

① 인터넷 사용자가 엄청나게 증가했다. 2000년 당시 세계 인터넷 사용자는 불과 3억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세계 인구의 5%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집계에 따르면 2019년 4월 현재 세계 인구의 56%, 선진국 인구의 80% 이상이 인터넷을 이용한다.

② 인터넷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졌다. 2000년 당시에는 아직도 전화선을 이용해 컴퓨터 모뎀으로 인터넷을 연결해 사용하는 사람이 많았다. 최고 속도가 56kbps였다. 불편하기도 하고 속도도 끔찍할 정도로 느렸다. 요즘 스마트폰 사진 하나를 보는데 몇 분을 기다려야 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지금의 LTE나 5G 통신망은 그 당시보다 속도가 수천 배에서 1만배는 더 빠르다.

③ 스마트폰 보급에 따른 이동성 향상이다. 2000년 당시에는 대부분 데스크톱 PC를 이용했다. 뭔가 인터넷을 연결하려면 자기 책상으로 가서 이용해야 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누구나 손안에 수퍼컴퓨터를 가지고 다닌다.

④ 비약적으로 향상된 온라인 결제의 편이성이다. 2000년 당시에는 자기 신용카드 번호를 인터넷상에서 입력하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았다. 온라인 뱅킹이라는 것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누구나 스마트폰에 카드 결제 정보를 입력해두고 온라인 주문을 하거나 카카오택시, 타다를 이용한다. 카카오페이나 제로페이를 이용하면 현금 없이 다니는 것도 가능하다.

⑤ 온라인상에서 국경이 사라졌다. 2000년 당시 일본어 사이트를 이용하고자 윈도 일본어 버전을 설치해야 했던 기억이 있다. 인터넷에 국경이 없다고 하지만 다른 나라 서비스를 쓰는 것은 그만큼 불편했다. 이제는 달라졌다. 앱스토어에 모바일 앱을 공개하면 순식간에 전 세계에 배포된다. 한국 스타트업 하이퍼커넥트가 내놓은 아자르라는 영상 채팅 앱은 230국에서 19가지 언어로 서비스 중이다. 하이퍼커넥트는 지난해 매출 1000억원을 돌파했다. 대부분 해외에서 올린 매출이다.

⑥ 물류의 발전이다. 온라인으로 물건을 주문하면 당일에 도착하는 것은 예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해외 직구도 일반적인 일이 됐다. 이제는 자기 전에 주문한 물건이 다음 날 아침 문 앞에 도착해 있는 세상이 됐다.

⑦ SNS다. 2000년에는 개인 미디어라는 것이 없었다. 트위터, 페이스북은 물론 블로그도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누구나 인스타그램 등 SNS를 써서 정보를 나눈다. 비싼 돈을 들여 TV 광고 등을 하지 않아도 홍보가 가능해졌다.

⑧ 투자 환경의 변화다. 2000년 당시 벤처기업의 투자는 벤처 캐피털이 주류였다. 그런데 지금은 다양한 투자자가 넘친다. 그리고 이들은 국경을 넘어서 투자한다. 구글, 텐센트, 알리바바, 삼성 등 대기업들도 스타트업에 거액을 투자하고 소프트뱅크는 120조원짜리 거대 벤처 펀드를 만들어 글로벌 혁신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지금의 벤처 붐, 한국 경제 세대교체 이룰 기회

이 모든 환경 변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20년 전의 벤처기업은 "인터넷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비전으로 기업 가치가 천정부지로 올랐다. 하지만 매출이 따라주지 못하자 거품이 쉽게 터져버렸다.

그런데 지금은 모든 것이 달라졌다. 밀레니얼 세대의 취향에 맞는 온라인 서비스를 내놓는 회사는 큰 매출을 올리며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됐다. 2015년 중반 신선 식품 배송을 시작한 마켓컬리는 불과 3년 만인 지난해 매출 1570억원을 올렸다. 이런 성장세를 보여주니 투자자들도 적극적이다. 힐하우스캐피털 등 외국 투자사들이 마켓컬리에 1350억원을 최근 투자했다. BTS의 빅히트도 2011년 벤처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이 이뤄냈다. BTS라는 글로벌 히트작을 내니 2017년 매출 924억원에서 2018년 2142억원으로 급증했다.

실리콘밸리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혁신 기업이 나타나 모든 산업을 뒤흔들고 있다. 특히 음식 배달, 신선 식품 배송, 승차 공유, 공유 주방, 금융, 물류 등 인간의 일상생활을 지배하는 의식주 및 교통 관련 영역에서 기존 틀을 파괴하는 회사들이 나타나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자국에서 이룬 성공을 바탕으로 인접 국가로 빠르게 확장해 나가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 기술은 이들의 성장을 가속할 것이다.

거품을 걱정할 때가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벤처 붐을 한국 경제의 세대교체를 이룰 기회로 인식해야 한다. 요즘 한국 젊은이들의 소질과 실력은 단군 이래 최고다. 기득권 눈치를 보지 말고 젊은 기업들이 마음껏 뭐든지 해보도록 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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