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현대의 키케로' 오바마 명연설 뒤에는 그가 있었다

조선일보
  • 남민우 기자
    입력 2019.05.24 09:24

    [Cover Story] 참모란 누구인가… 전문가들이 말한다

    오바마 스피치라이터, 카일 오코너

    스피치라이터 업무 80%는 대통령 할 말 대신 전달하는 것 20%는 도와주는 것
    애틀랜타 흑인 청중 앞 연설문을 백인으로서 작성 가장 인상에 남아

    많은 정치 전문가들이 '현대의 키케로'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 최고의 연설가 중 한 명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명연설 중 다수는 총기 난사나 테러 같은 국가적 비극 속에서 탄생했다. 절묘하게 들어맞는 표현과 진정성으로 국민의 감정선을 건드리며 독창적인 스타일을 구축했다.

    그리고 이러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에는 그의 연설문을 작성해주고 다듬어주던 연설 보좌관들이 있었다. 2009년 대선 때부터 약 5년간 오바마 대통령의 스피치라이터였던 카일 오코너(O'connor)에게 보스를 빛나게 만드는 글을 쓰는 법을 물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명연설문 작성자로 명성을 날린 카일 오코너(왼쪽)가 오바마 대통령과 샌프란시스코 한 극장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명연설문 작성자로 명성을 날린 카일 오코너(왼쪽)가 오바마 대통령과 샌프란시스코 한 극장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백악관
    카일 오코너
    대통령의 의중 전달에 주력

    ―기억에 남는 연설을 하나 꼽는다면.

    "2012년 미국 코네티컷주 샌디 훅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집단 총격 살인 사건을 계기로 행정부가 총기 규제를 준비했을 당시 대통령의 연설문을 작성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총기 규제 문제는 여야가 극심하게 대립하는 이슈이며, 그때나 지금이나 중요한 현안이다.

    당시의 연설만으로 강력한 총기 규제를 도입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한 걸음씩 걸어왔던 덕분에 최근 주(州) 정부 차원에서 규제를 도입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문은 명연설로 통한다. 좋은 연설이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화자(話者)의 독특한 특성이 묻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화자의 스토리와 시각을 담아 다른 사람이 모방할 수 없는 연설일수록 좋은 연설이다. 많은 사람이 '훌륭한 연설가'를 모방하려는 실수를 한다. 청중은 연설이 가식인지 진심인지 금방 알아챈다. 그래서 한 번쯤은 소리를 내어 읽어봐야 한다. 일상생활에서 친구들과 주고받는 말로 연설을 해야 효과적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문은 어떻게 작성했나.

    "스피치라이터 업무의 80%는 보스가 할 말을 대신 전달해주는 것이고, 20%는 더 좋은 연설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문 작성 때에도 이 점에 유의했다. 또 문법적으로 문제는 없는지, 더 좋은 단어를 쓸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연설 역시 글과 마찬가지로 기승전결이 중요하다. 보통 사람들은 이것저것 말하고자 하는 욕심을 내다가 한 연설에서 전혀 다른 세 가지의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

    단어 하나하나 뉘앙스에도 신경

    ―대통령의 의중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그 밖에 신경 쓴 점은.

    "무엇보다 청중(聽衆)이 누구인지가 가장 중요하다. 청중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그들에게 중요한 현안이나 가치관이 무엇인지를 고려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대통령의 연설이 현 시국의 맥락에 알맞은지, 또 더 나아가 역사적 맥락에 맞는지 다시 한 번 살펴본다. 연설의 적합성을 따지기 위한 과정이다. 대통령의 연설은 많은 사람이 정말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을 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를 향해 메시지를 발신(發信)하는지, 미국민에 한정하는지에 따라도 미묘하게 뉘앙스가 달라진다. 단어 하나에도 메시지를 명료하게 전달하는지 확신을 가져야 한다."

    ―방금 말했던 조언들을 잘 적용했던 사례는 무엇이었나.

    "2013년 모어하우스(Morehouse) 대학 졸업 연설이 기억에 남는다. 모어하우스는 미국 남부 애틀랜타에 있는 흑인 대학이다. 백인 출신인 내가 흑인 청중을 위한 연설문을 써야 했다. 연설문을 쓰는 과정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제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 중 당신이 불편하게 느낄 대목도 있겠지만, 연설을 하는 것은 당신이 아니라 저라는 것을 기억해주시길 바랍니다'라고 지적해 준 점을 기억한다.

    대통령이 바로 곁에서 흑인 대학생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고민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인상 깊었다. 그날 졸업식은 지금도 잊지 못할 광경 중 하나였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부터 졸업 축사를 듣는 학생들의 표정에서 큰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보스의 시각과 비전 명확히 제시해야

    ―선거 유세 연설과 평상시 연설 때 대통령 이미지가 서로 달리 보여야 할 텐데.

    "실무자 입장에서 선거 유세 연설은 더 신나는 일인 것은 분명하다. 조금 더 넓은 의미에서 이야기를 꾸려나갈 수 있고, 대통령이 이끌어 낼 변화에 대해 얘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편과 대립각을 세우며 보스의 선명성을 드러낼 수도 있다.

    반면, 평상시의 연설은 디테일과 정책이 중요하다. 그러다 보니 연설이 지루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상황에서든지 연설은 보스의 가치를 빛나게 해주고 비전과 그 이유를 청중에게 잘 전달해야 한다."

    ―보스의 의중 전달 때 주의할 점은.

    "거창한 느낌을 주는 업계 관용 표현을 쓰는 것은 반드시 자제해야 한다. 페이스북에서 일할 때 특히 이런 문제가 심각했다. 예를 들어 'disrupt(지각변동을 일으키다)' 'breakthrough(새로운 분야로 혁파)' 'pivot(기존 사업 방향을 변경)' 'scale(사업을 상당한 규모로 키우다)'. 심지어 'wordsmithing(재치 있는 말을 만들어내다)'이라는 단어도 쓰인다. 만약 당신이 하는 말과 당신이 쓰는 단어를 당신의 할머니가 알아듣지 못한다면 다르게 말하는 방법을 생각해 봐야 한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