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 정자로 인공수정하면 친자식일까…"예외 넓혀야"vs"자녀 신분 불안정"

입력 2019.05.22 19:06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친생자관계 부존재 확인소송’ 사건의 상고심 공개변론을 열었다. /연합뉴스
민법 844조는 '아내가 혼인 중에 임신한 자녀는 남편의 자녀로 추정한다'고 규정한다. 남성과 여성이 혼인관계 도중 출생한 아이의 친부(親父)를 남성으로 정하는 규정이다. 의학이 발달하기 전 여성이 혼인 중 낳은 아이에 대해 남편의 자식임을 일일이 증명해야 하는 문제를 방지하고, 자녀의 복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남성이 무정자증을 앓고 있어 제3자의 정자로 인공수정해 태어난 아이의 아버지는 누구일까. 이를 놓고 대법원이 공개변론을 열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22일 오후 대법원 대법정에서 A씨가 자녀들을 상대로 낸 친생자관계 부존재 확인소송 상고심 공개변론을 열고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었다.

A씨는 부인 B씨와 1985년 결혼했지만 무정자증으로 자녀가 생기지 않았다. 이에 부부는 다른 사람의 정자를 제공받아 시험관 시술을 통해 자녀를 갖기로 했다. 1993년 첫째 아이가 태어났고, 두 사람의 자식으로 출생신고가 됐다. 이후 B씨는 혼외 관계를 통해 둘째 아이를 낳았다. 둘째도 A씨와 B씨의 자녀로 출생신고를 마쳤다.

A씨는 2013년 가정불화로 B씨와 협의이혼을 신청했다. 아이들에 대해서도 자신이 친자가 아니라며 소송을 냈다. 법원이 유전자 검사를 한 결과 두 자녀 모두 A씨와 유전적으로 친자관계가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1심은 "무정자증 진단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는 부인이 남편의 자식을 임신할 수 없는 외관상 명백한 사정이 있음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며 A씨 패소 판결을 내렸다. 항소심도 A씨가 첫째 아이에 대해서는 인공수정에 동의했고, 둘째 아이에 대해서는 입양의 실질적 요건이 갖춰졌기 때문에 소송의 이익이 없다고 보고 1심과 같은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의 1983년 판례는 '친생추정의 예외'로 부부거 동거하지 않은 경우라는 명백한 사정이 있는 경우만 인정하고 있다. 아내와 남편 쌍방 중 한쪽이 친자관계를 깨려면, 친자가 아니라는 것을 안 지 2년 이내에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제3자의 정자를 이용한 인공수정이 가능해진 데다, DNA 검사 등으로 친자 확인이 쉬워져 친생추정의 예외를 넓혀야 한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원고 측 김혜겸 변호사는 "친생추정 원칙을 정한 민법 844조는 제정된 지 50여년이 지났고, 예외를 인정한 대법원 판결도 30여년이 지났다"며 "현 시점에서는 과학적으로 명백하고, 정서적·사회적 유대관계가 단절됐다는 요건이 충족된 경우 등에도 친자로 인정하지 않도록 판례가 변경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함께 변호를 맡은 안성영 변호사도 "혈연관계의 판단이 쉬워졌는데도 친자관계를 지속시키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제척기간 2년이 지나도 소송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도 대법원에 낸 의견서를 통해 "친자관계 관련 상담이 꾸준히 늘고 있고, 민법상 친생추정 규정으로 인해 출생신고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며 "입법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만, 자녀의 복리나 인권보호 등을 고려해 법원에서 친생추정의 예외를 인정하는 범위를 넓힐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반면 피고 측 최유진 변호사는 "A씨는 제3자 인공수정 출산에 동의했다가 변심해 친생부인권을 행사했다"며 "사법부가 금반언의 원칙에 반하는 사정까지 인정하면 사회적 공감대에 반한다"고 했다. 최 변호사는 "친자추정의 예외를 확대하면 자녀는 혼외출생자로 신분이 불안정해지고, 아버지에 대한 부양청구권과 상속권을 잃게된다"고 했다. 다만 의료법상 진료기록부는 10년만 보관하게 돼 있어 A씨가 인공수정에 동의했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는 상태다.

공개변론에 나온 전문가들의 의견도 맞섰다. 원고 측 참고인으로 나온 차선자 전남대 로스쿨 교수는 "산부인과에서의 동의가 친자관계를 귀속하는 모든 법적 효과를 내는 것은 안정적인 법률관계 형성에 도움을 달리하지 않는다"며 "관점을 달리해 입양을 적용하면 안정적으로 자녀가 보호될 것"이라고 했다.

반면 피고 측 참고인인 현소혜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는 "제3자 인공수정에 동의한 부모가 출생한 자녀에 대해 친생부인을 하는 것은 금반언의 원칙상 허용될 수 없다"며 "친생추정 예외를 인정하면 출생과 동시에 자녀의 아버지 확정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고 했다. 예외를 인정한 현행 판례도 폐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관련 기관도 대법원의 요청에 따라 의견을 밝혔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제3자 인공수정에 남편이 동의한 경우 신의칙과 금반언의 원칙에 따라 남편의 친생부인 주장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다만 "친생추정의 예외는 인정할 필요가 있다"며 "과학적으로 혈연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 명백한 경우로 한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했다.

대한산부인과학회는 "제3자 인공수정 시술은 원칙적으로 법률상 부부만을 대상으로 하고, 시술 부모에게 출생아가 친자와 동일시돼야 한다는 점을 충분히 설명하고 동의권자의 서명을 받은 동의서를 보존하도록 돼있다"며 "태어난 아기가 안정된 환경에서 양육될 것이라는 신뢰가 중요해 판례 변경에는 부정적"이라고 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공개변론에서 논의된 내용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올 하반기에 결론을 내린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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