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이 와장창

조선일보
  • 이해인 기자
    입력 2019.05.22 03:01

    서울역사박물관 한달전 유리 깨져… 조선 영조때 병풍 100군데 파편
    서울시, 수년 전 똑같은 사고 반복

    지난달 20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 3층 전시실에서 난데없는 굉음이 울렸다. '쩍' 하며 큰 물체가 갈라지는 소리였다. 관람객 5~6명이 놀라 둘러보니 진열대의 강화유리(가로 2.1m, 세로 2.4m)가 산산조각이 나 붕괴되기 직전이었다. 신고를 받고 달려온 박물관 관계자가 진열대 문을 열고 전시품을 꺼내려는 순간 유리가 와장창 깨지며 무너졌다. 파편이 사방으로 튀면서 전시품에까지 날아갔다. 하필이면 비단 병풍이었다. 유리 조각에 맞은 병풍에는 100군데 이상 상처가 난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시 산하 서울역사박물관의 관리 소홀로 문화재가 크게 훼손된 것으로 21일 확인됐다.

    지난달 20일 오후 2시 30분쯤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 3층 전시실에 있는 진열대 유리가 산산조각 나 흩어져 있다.
    박물관 관람 시간에 갑자기… - 지난달 20일 오후 2시 30분쯤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 3층 전시실에 있는 진열대 유리가 산산조각 나 흩어져 있다. 유리가 깨지며 조선 영조 때의 병풍 '친림 광화문내근정전 정시 시도'(왼쪽)에 100군데 넘는 흠집이 났다. 전시실 앞에 관람객이 없어 인명 피해는 없었다. /서울역사박물관
    박물관에서 수년 전 동일한 사고가 있었는데도 박물관 측이 아무런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다가 끝내 파손 사고가 난 것으로 밝혀졌다. 사고 당시에는 다행히 가까운 곳에 관람객이 없었으나 자칫하면 인명 피해가 날 뻔한 순간이었다.

    이번에 파손된 문화재는 조선 영조 때 제작된 8폭짜리 비단 병풍인 '친림광화문내근정전정시시도'(親臨光化門內勤政殿庭試時圖,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38호)다. 조선 영조 23년(1747년)에 실시된 과거시험에 왕이 직접 나와 시제(詩題)를 내리는 장면을 그림으로 기록했다. 임진왜란 이후 폐허가 된 경복궁의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돼 2001년 문화재로 지정됐다. 사고로 100여 군데 흠집이 난 병풍은 지하 수장고로 옮겨졌다. 복원에 최소 6개월이 걸릴 전망이다.

    이번 사고는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이전에도 박물관의 강화유리가 깨진 사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박물관 관계자는 "수년 전에도 유리가 갑자기 터진 적이 있다"며 "당시 폐관 시간이라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다"고 했다. 박물관은 사고 이후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박물관 관계자는 "유리가 불량이라서 발생한 사고였다"며 "일부 불량품으로 인한 사고를 방지할 방법은 없지 않으냐"고 했다.

    이 같은 대응은 한 해 예산 약 150억원을 들여 유물 20만점을 관리하는 서울시 대표 박물관의 처리로는 매우 미숙하다는 지적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경우 강화유리 파손으로 인한 문화재 훼손을 막기 위해 모든 유리에 비산 방지 필름을 붙여 관리한다.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는 "문화재와 관람객을 보호하기 위해 유리마다 안전 필름을 붙였다"고 말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의 경우 아예 자동차 전면에 쓰는 접합유리를 쓴다. 두 개의 유리판 사이에 필름이 끼워진 구조라 만약 파손돼도 유리가 사방으로 튀지 않는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이번 일이 터진 후에야 전시실 13곳에 설치된 강화유리 69장에 방지 필름을 붙였다. 박물관 관계자는 "접합유리는 강화유리보다 80% 이상 가격이 비싸서 예산 부담이 있다"며 "일단 진열대 10곳의 유리를 접합유리로 교체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연희 국민대 행정대학원 교수(박물관·미술관학 전공)는 "서울을 대표하는 박물관에서 이런 사고가 있다니 황당하다"며 "문화재를 제대로 관리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을 배치하고 관련 예산도 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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