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 귀인 본 날, 駐美공사관 복원 기록 나섰죠

입력 2019.05.22 03:01

在美 사진작가 오향숙씨
워싱턴 대한제국공사관 공사 현장 800일 동안 12만장 촬영해 전시

2015년 겨울, 미국 워싱턴에 살고 있는 사진작가 오향숙(52)씨는 신기한 꿈을 꿨다. 꿈속 그녀의 아파트엔 환한 빛이 가득했다. 그리고 흰옷 입은 동양인 남성이 누군가를 찾는 듯 아파트 안에서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그 남성과 오씨는 눈이 마주쳤고, 남성은 갑자기 오씨의 방으로 뛰어들어간 뒤 옷장에 숨었다.

안전모를 쓰고 카메라를 든 채 복원 공사 중이던 워싱턴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 앞에 선 오향숙씨.
안전모를 쓰고 카메라를 든 채 복원 공사 중이던 워싱턴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 앞에 선 오향숙씨.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오씨는 아침을 먹으면서 남편에게 "정말 이상한 꿈을 꿨다"고 이야기했다. 꿈속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면 두려운 마음이 들기 마련이지만 그날 밤 꿈에선 눈까지 마주쳤는데도 전혀 무섭지 않았다.

그런데 이날 아침식사를 마친 부부는 아파트 바깥으로 나왔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꿈이 현실로 연장이라도 된 것처럼, 웬 동양인들이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오씨의 남편이 "무슨 일이냐"고 묻자 그들은 "옆 건물이 과거 주미(駐美) 대한제국 공사관이었다"며 "한국 정부에서 건물을 사고 오늘 처음 열쇠를 건네받아 복원 작업 준비를 위해 들어가려고 하는 중"이라고 했다. 마치 예비한 듯한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오씨는 곧 공사관 복원 프로젝트에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 참여했다. 그녀는 홍익대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독일의 대학에서 사진을 이용한 회화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오수동 대한제국공사관 박물관장은 지난 16일(현지 시각) "우리는 오향숙 작가를 보고 공사관을 세웠던 고종 황제가 보낸 인물이라고 생각했다"며 "봉사료 수준의 임금을 받고도 새벽 6시부터 인부들이 퇴근할 때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록했다"고 말했다. 오향숙씨는 "돈도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일하는 내내 과거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희열을 느꼈다"고 말했다.

조선 왕실은 1889년 왕실 예산의 절반이 넘는 2만5000달러를 들여 이 공사관 건물을 사들였다. 백악관에서 1.5㎞ 거리에 있는 지상 3층, 지하 1층 빅토리아 양식의 벽돌 건물로, 당시로서는 워싱턴의 중심가였다. 그러나 1905년 을사늑약 체결과 함께 공사관의 외교 기능은 정지됐고, 1910년 경술국치 직후 일제가 단돈 5달러에 강제 매입했다.

오씨는 2015년 12월부터 지난해 5월 공사관의 복원 공사를 마칠 때까지 약 800일을 카메라와 함께 공사관 현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350만달러를 주고 매입한 건물의 복원 비용만 1000만달러에 이를 정도로 대대적인 공사였다.

오향숙씨가 촬영한 대한제국 공사관 내부 사진.
오향숙씨가 촬영한 대한제국 공사관 내부 사진.
그녀는 하루에 150~200장씩 800일 동안 12만 장이 넘는 사진을 찍었다. 이 중 30장을 골라 지난 10일부터 22일까지 워싱턴 한국문화원에서 '대한제국 공사관 800일간의 복원 기록'이란 주제로 전시회를 열고 있다.

전시회엔 복원 작업에 참여했던 기술자들도 와서 그녀를 축하해 줬다. 오씨는 "이번 작업을 하면서 건물에도 삶이 녹아 있다는 걸 알게 됐다"며 "앞으로도 건물과 사람을 엮어가는 작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복원된 공사관엔 매달 1000여 명의 사람이 찾고 있다. 워싱턴D.C.엔 전 세계의 외교 공관이 있지만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의 모습을 그대로 복원한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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