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징용피해 중재위 열자"… 정부 "신중 검토"

입력 2019.05.21 03:53

내달말 G20 앞두고 물밑서 양국 현안 해결방안 모색 기류

일본 정부는 20일 대법원의 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 문제와 관련한 중재위원회 개최를 우리 정부에 요구했다. 일본이 지난 1월 요구한 양국 정부 간 협의가 전혀 진행되지 않자 '다음 스텝'을 요구한 것이다.

우리 외교부는 "제반 요소를 감안해 신중히 검토해 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외교가에선 우리 정부가 일본의 요구를 일축하지 않은 데 주목하는 분위기다. 중재위를 통한 해결이 현실적으로 쉽진 않지만 절충의 여지를 남긴 것으로 풀이된다.

남관표 신임 주일 한국 대사가 지난 13일 일본 외무성에서 고노 다로 외무상과 면담을 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남관표 신임 주일 한국 대사가 지난 13일 일본 외무성에서 고노 다로 외무상과 면담을 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일이 1965년 맺은 청구권 협정에는 분쟁 해결 절차로 정부 간 협의에 이어 중재위 개최가 명시돼 있다. 중재위는 한·일 양국과 제3국의 위원 3명으로 구성되지만, 우리 정부가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개최되지 않는다. 일본의 이번 조치에는 중재위 다음 단계인 국제사법재판소(ICJ)로 이 사안을 가져가겠다는 의도도 녹아 있다는 분석이다.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 외무상은 이날 참의원 결산위원회에서 "이낙연 총리로부터 (대법원 배상 판결 관련) '정부의 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발언이 있었다"며 "유감이지만 책임자로부터 이런 발언이 있고, 4개월 이상 한국 측이 협의를 받아들이지 않기에 중재위 회부를 한국에 통고했다"고 말했다. 이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방관'에 가까운 대응이 계속될 것으로 보고 다음 수순인 중재위 구성으로 압박 수위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이 총리는 지난 15일 한 토론회에서 "사법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데 행정부가 무엇을 한다는 것이 삼권분립 원칙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아키바 다케오(秋葉剛男) 외무성 사무차관도 이날 오후 남관표 주일 한국 대사를 외무성으로 불러 한국이 중재위 개최에 응할 것을 요구했다. 이날은 남 대사가 나루히토(德仁) 일왕에게 문재인 대통령의 신임장을 제정(提呈)하고 활동을 본격 개시한 날이다. 외교 소식통은 "일본이 앞으로 '경제적 보복 조치'를 가동하는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명분 쌓기용 외교 조치들을 하나씩 취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중재위 가동 가능성은 낙관하기 어렵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중재위는 구성 자체가 쉽지 않고 결과를 양국 국민에게 설득시키기도 어렵다"며 "(차라리) ICJ 공동 제소를 하면 시간을 몇 년 벌고, 양국 정부가 역사 문제를 직접 다루는 부담도 덜 수 있다"고 했다. 신각수 전 주일 대사는 "중재위에서 질 경우 그 정치적 부담을 어느 정부가 감당할 수 있겠느냐"며 "한국 정부와 양국 관련 기업이 참가하는 3자 기금을 만드는 등 우리 안을 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일 양국 모두에서 '전후 최악'으로 평가되는 양국 관계를 더는 방치해선 안 된다는 공감대가 커지는 것도 사실이다. 양국 간 갈등을 '방조'하던 미국이 최근 본격 '중재 외교'에 나선 정황도 감지된다. 이와야 다케시(岩屋毅) 일 방위상이 지난 18일 "미국·일본·한국이 연대하지 않으면 나라의 안전을 지킬 수 없다"며 한·일 군사 협력 복원 의사를 밝힌 것도 이 같은 기류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전직 고위 외교관은 "일본의 요구를 거부하면 한국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려는 일본의 노림수에 넘어가는 셈"이라며 "최선책은 아니지만, 다음 달 말 오사카 G20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 정상 외교를 복원하면서 중재위 구성에 일단 응하는 게 차선책"이라고 했다. 양국은 22~23일 파리에서 열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각료이사회에서 외교장관 회담을 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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