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경찰이 취객 제압 못했다고… "여경 다 없애라"는 사람들

입력 2019.05.20 03:08 | 수정 2019.05.20 13:28

"위험한 상황 해결 못하는 경찰은 필요없다"며 여경 무용론 주장
"술에 취한 여성 손도 못댄다고 남성 경찰 다 없앨 건가" 반론도

여성 경찰관이 술 취한 남성을 제대로 제압하지 못하는 듯 보이는 영상이 '여성 경찰 무용론(無用論)'으로까지 번졌다. "위험한 상황에서 완력으로 대응 못 하는 여성 경찰은 필요 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경찰의 도움을 받아본 여성들이나 범죄 현장에 출동하는 남성 경찰관 상당수는 "여성 피의자, 피해자가 있는 범죄 현장에서는 여성 경찰관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난 13일 서울 구로구 구로동의 한 술집 앞에서 술 취한 중국 동포 허모(53)씨가 남성 경찰관의 뺨을 때렸다. 해당 경찰관은 허씨를 제압했지만 일행인 장모(41)씨가 달려들었다. 장씨는 여성 경찰관을 밀치고 남성 경찰관을 끌어냈다.

장씨는 결국 경찰에게 체포됐지만 이 장면을 찍은 영상 일부가 지난 15일 인터넷에 퍼졌다. 그러자 "여성 경찰이 취객을 제압 못 했다"는 비난 글이 이어졌다. 서울 구로경찰서는 지난 17일 동영상 원본을 공개하고 "출동 경찰관들은 정당하게 업무를 처리했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경찰 해명 후에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등에는 '여경을 없애주세요'라는 글이 올라왔다.

지난 13일 서울 구로구 구로동의 술집 앞에서 남성 경찰관이 허모(53)씨를 제압하고 있다(왼쪽 사진). 이후 허씨 일행인 장모(41)씨가 남성 경찰관에게 달려들었고, 여성 경찰관이 대신 허씨를 제압했다. 오른쪽 사진은 여경이 이 과정에서 옆에 있던 시민에게 “남자분 나오시라”며 도움을 요청하는 장면.
지난 13일 서울 구로구 구로동의 술집 앞에서 남성 경찰관이 허모(53)씨를 제압하고 있다(왼쪽 사진). 이후 허씨 일행인 장모(41)씨가 남성 경찰관에게 달려들었고, 여성 경찰관이 대신 허씨를 제압했다. 오른쪽 사진은 여경이 이 과정에서 옆에 있던 시민에게 “남자분 나오시라”며 도움을 요청하는 장면. /구로경찰서

여성 경찰 무용론에 대해 경찰은 "경찰 업무를 너무 좁게 해석한 것"이라고 했다. 서울에서만 하루 평균 1만 건의 112 신고가 들어오는데 이 중 60~70%는 물리력 행사가 필요하지 않은 단순 안내나 도움 요청이다. 이영상 서울청 생활안전부장은 "현행범을 체포하는 경우처럼 경찰관이 직접 물리력을 쓰는 경우는 하루 100~200건 수준"이라며 "업무 중 많은 경우에서 여성 경찰의 섬세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살과 살이 부딪치는 출동 현장에서도 여성 경찰관이 필요하다. 남성 경찰들이 여성 피의자, 피해자에게 대응하기 위해 여성 경찰관에게 지원을 요청하는 경우도 많다.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이나 예민한 상태의 피의자와 대화를 부드럽게 이어가는 데도 여성 경찰관이 유리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성범죄 여성 피해자 조사도 여성 경찰이 맡는다. 현직 경찰관인 장모 경위는 "남성 경찰관이 술에 취한 여성에게 어설프게 대응했다가 성추행 논란이 생긴 경우가 있었다"며 "그렇다고 남성 경찰관을 없애자는 이야기는 안 나오지 않느냐"고 했다.

경찰청 규정에 남성 경찰관만 할 수 있는 직무(職務)로 규정된 것은 없다. 미국 여성 경찰은 현장에서 남성과 같은 직무를 수행한다. 프랑스의 경우 여성 경찰관이 창설 초기에는 민원실, 청소년 가정폭력 분야에서 일했지만 숫자가 늘면서 형사, 헌병경찰 업무 등으로 범위를 넓혀 남성과 같은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한국 경찰 중 여성 비율은 11%로 미국(14.1%), 영국(28%), 캐나다(21%) 등에 비해 낮다. 여성을 상대로 한 치안 서비스 수요가 늘어나면서 경찰청은 여성 경찰관 비율을 2022년까지 15% 수준으로 늘릴 계획이다. 이를 위해 경찰 채용 시 여성 비율도 당분간 25% 이상으로 유지할 방침이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경찰 폭행과 공권력 무시이지 출동한 경찰관의 성(性)이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남성 경찰 중에서도 체구가 작은 사람이 있고, 현장에서 소극 대응해 논란이 된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출동한 경찰관이 남자냐 여자냐가 아니라 왜 법 집행 과정에서 경찰이 제때 물리력을 쓰지 못하고 몸을 던졌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이 교수는 "미국 경찰의 경우 경찰관 판단에 따라 즉각 장구류(장비)를 쓸 수 있어 이번처럼 경찰을 때린 취객과 몸싸움을 벌일 이유가 없다"고 했다. 지구대 근무 경력이 있는 한 경찰관은 "장비를 쓰지 않고 취객을 제압하는 것은 남자 경찰관에게도 쉽지 않다"며 "당시 영상을 보면 여성 경찰관의 대응을 일방적으로 비난하기 어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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