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의과대학 서울성모병원 종양내과 강진형 교수

정밀의학(precision medicine)이란 유전체 정보를 기반으로 개개인에게 맞춤형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질병 치료 및 예방 전략이 일반인을 위해 개발되고 개인 간 차이를 별로 고려하지 않는 '일률적인(one-size-fit-all)' 치료적 접근과는 대조적이며, 개인의 유전 정보, 질병 정보, 생활 정보 등을 토대로 보다 정밀하게 환자를 분류하고 이를 활용하여 효과적인 치료법을 선택한다는 점에서 정밀의학은 맞춤 의료 개념을 보다 구체화했다고 볼 수 있다.

정밀의학의 응용 분야는 유전체 분석을 통한 질병 위험도 예측, 동반 진단, 표적 치료제, 약물 유전체 맞춤치료 등 4가지 분야로 나뉜다. 미국의 유명 여배우 안젤리나 졸리(Angelina Jolie)의 유전자 검사를 통한 유방 절제는 유전체 분석을 통한 질병 위험도 예측을 설명하는데 적절한 사례이다. 유방암에 걸리지 않은 그녀가 가족력과 유전자 검사를 통해 BRCA1 유전자 돌연변이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유방 절제술을 선택한 것은 정밀의학이 유전체 정보를 이용한 예방의학 목표를 실현할 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2016년 8월 10일 대통령 주재 과학기술전략 회의에서 국가 전략 프로젝트로 개인 맞춤 의료를 실현하고 미래 신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정밀의료기술 개발'을 본격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정밀의료기술 개발의 주요 내용은 ①정밀의료 기술 기반 마련 ②정밀의료 서비스 개발 및 제공 ③정밀의료 생태계 조성 ④정밀의료 인프라 구축 등이다. 정밀의료 인프라 구축 세부 목표 가운데는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NGS) 기반 유전자 검사법의 건강보험 적용'이라는 목표가 설정되어 2017년부터 건강보험급여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실제 임상에서 NGS 검사를 처방하고 분석 결과를 접하게 되면 낯설고, 잘 알려지지 않은 생소한 유전자 변이가 자주 눈에 띈다.

암 환자 개인의 NGS 검사로부터 확인되는 유전자 변이가 그 환자의 특정 암을 유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발암 유전자 변이(driver oncogene mutation)가 아닐 수도 있으며 설사 그렇다 하더러도 상당수에서는 그에 적합한 표적치료제가 건강보험급여권 밖에 존재한다는 안타까운 사실이다.

필자가 이해하기로는 'NGS 검사가 건강보험급여 항목에 포함되었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정밀의학을 통해 선별된 환자군에 적합한 표적 치료제를 처방해서 이들의 생존 기간을 연장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보건의료 시스템은 국민건강보험에 의존하기 때문에 NGS 검사를 통해 적합한 항암제가 확인되더라도 보험급여에 해당하지 않으면 처방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NGS 검사의 건강보험급여'라는 본래 취지를 희석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NGS 검사를 통해 요구되는 표적 치료제나 항암제의 접근성을 강화하기 위한 투명하고, 효과적인 방법은 범국가 차원의 신약 임상시험과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 사항 외에 항암제 치료의 물꼬를 트는 길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그동안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진행해왔던 허가용 임상시험에서 다양한 형태의 연구자 주도 임상연구로 변화가 요구되며, 이를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과감한 지원이 필요조건이다.

많은 암 전문의사와 과학자들이 참석하는 암 학술대회에서 한 환자가 연단에 올라서 꼿꼿한 자세로 기조강연을 시작했다. 의대교수나 의과학자들이 해오던 기조강연을 암 환자가 맡아 처음에는 생소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진솔하고 생생한 경험담에 모두가 고개를 끄떡였다. 강연을 마치자 1000명이 넘는 암 전문가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로 환자를 격려하고 그에게 답례했다. 그 환자는 자기가 말기 암을 극복할 수 있었던 비결로 치료를 위해 적극적으로 정보를 찾은 스스로의 노력과 환자 동호회의 도움, 그리고 신약 임상시험 참여가 결정적이었다고 말했다. 이제는 말기 암 환자와 가족들의 절실한 바람과 한 줄기 희망에 대해 정부가 화답할 때가 아닐까?

강진형 교수 프로필
가톨릭의과대학 서울성모병원 종양내과 교수
-1984년: 가톨릭의과대학 졸업
-1988년: 의학석사
-1995년: 의학박사
-1996~1998년: 뉴욕코넬의대 박사후연구원(암전이 연구)
-1999년: 가톨릭의과대학 서울성모병원 조교수
-2016년~: 사단법인 대한항암요법연구회(KCSG) 회장
-2018년: 고려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석사
*2002년 이후 폐암/두경부암/식도암 환자를 대상으로 약 100여개 암 임상연구 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