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반장]"홀짝, 24시간 베팅"…온라인게임內 '기생 도박장'이?

입력 2019.05.18 16:00

온라인게임內 ‘불법 기생(寄生)도박장’ 성황
경찰, 도박장 운영 8억원 챙긴 20대 검거
채팅방으로 호객, 베팅은 게임머니로
"은밀한 영업으로 감시 어려워"

"신용짱, 24시간 베팅, 배당up 1.97배, 카톡·귓속말 주세요."

지난 3월 약 2300만명의 누적 가입자수를 자랑하는 국내 인기 온라인 A게임 속 ‘◯◯성(城)’. 이 성 남쪽 6시 방향에 위치한 한 허름한 건물은 ‘도박하우스’를 연상케했다. 게임 속 수십명 캐릭터들이 모여 있는 건물 안에서는 도박 용어들이 쏟아졌다. 캐릭터들의 머리 위 말풍선에는 "사다리, 홀짝 귓말주세요", "베팅 가능합니다" 등 도박장 호객(呼客) 문구로 가득했다. 가상의 사이버 공간인 게임 속에서 게임머니를 ‘판돈’으로 하는 또다른 ‘불법 기생(寄生)도박장’이 운영되고 있던 것이다.

도박은 단순한 ‘홀짝’이나 ‘사다리타기’ 게임이었다. 은밀하게 참여를 알리는 귓속말이 수차례 오가자 인원 모집이 완료됐다. 곧 참가자들이 모인 비밀 단체 채팅방이 열렸다. 이른바 ‘딜러’로 불리는 캐릭터들이 게임을 주선하자, 참가자들은 채팅방에서 "홀", "짝"이라 외치며 베팅을 시작했다. 베팅금은 1만~200만원까지. A게임 한 이용자는 "게임머니가 없어도 딜러의 계좌에 현금을 입금하면 베팅이 가능하다"며 "장소만 게임 속이지, 현실세계 도박장과 구조가 똑같다"고 했다.

게임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딜러와 이용자가 서로 자신의 은행계좌 정보를 오픈한다. 베팅을 한 뒤 당첨자는 딜러의 수수료 5%를 뺀 나머지 금액을 당첨금으로 돌려받는다. 당첨금은 현금이나 게임 속 게임머니로 지급된다. A게임은 이용자들끼리 게임머니를 주고 받을 수 있는 거래시스템이 존재해, 이용자들은 당첨금(게임머니)을 다른 이용자에게 판매해 현금화 시킬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게임업체나 경찰의 단속에도 온라인게임 기생 도박장을 포착하기란 쉽지 않았다. 도박활동이 게임 속 공간에서 벌어지고, 대화는 비밀채팅, 판돈은 게임머니로 오가기 때문에 ‘흔적’을 잡아내기 어렵다.

문제는 이 게임이 누구나 게임을 이용할 수 있는 ‘전체 이용가’ 등급이라는 점이다.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게임을 하면서 쉽게 불법 도박에 노출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일각에서는 게임업체가 게임의 흥행을 위해 기생 도박장을 묵인하고 있는게 아니냐는 의혹도 나왔다.

최근에는 "A게임 운영사의 안일한 도박 대처를 막아달라"는 제목의 청와대 국민청원도 등장했다. 청원자는 "게임 속에서 몇천만 단위의 불법 도박장이 운영되고 있는데, 게임업체는 일부 캐릭터의 접속 금지 조치만 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상시 감시만해도 금방 사라질 도박장임에도 불구하고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A게임업체 측은 "모니터링을 통해 도박과 관련된 계정을 정지하거나 삭제하고 있다"며 "다만 새롭게 계정을 만들어 도박장을 다시 운영하면서 뿌리를 뽑기 어려운 한계도 있다"고 했다.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법망을 피해 도박장을 운영하던 이들도 결국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지난 16일 서울 송파경찰서는 온라인게임을 이용해 도박장을 개설하고 게임머니를 환전해주며 ‘불법도박장'을 운영해온 A(28)씨와 B(26)씨(도박개장 혐의)를 구속해 기소의견으로 지난달 29일 검찰에 송치했다.

이들은 2017년 초 각자 자택과 사무실 1곳, 지인의 집 2곳 등 총 5곳에서 컴퓨터를 설치해 기생 도박장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수사는 지난 3월 "온라인게임에서 게임머니로 사설도박장을 운영한다"는 첩보에서 시작됐다.

온라인게임內 '기생 도박장'을 운영해 지난 4월 20일 검거된 20대 일당의 사무실에서 발견된 도박 매크로 프로그램용 컴퓨터과 수익금 3000만원. /송파경찰서 제공
이후 경찰은 게임회사를 통해 서버와 채팅 모니터링 자료를 넘겨받아 분석에 들어갔다. 하지만 수사가 쉽지 않았다. 게임 속 기생 도박장인 만큼, 기존 불법 도박사이트에 비해 정보량이 부족했다. 경찰 관계자는 "해외에 서버를 둔 일반적 불법 도박사이트와는 달리 사다리타기나 홀짝맞추기같은 게임 자체는 합법적인 웹사이트에서 진행됐고, 결과에 따라 돈이 오가는 도박은 채팅방에서 은밀하게 이뤄져 감시가 어려웠다"고 했다.

또 이들은 게임 업체의 ‘키워드 모니터링’ 단속과 제재를 피하기 위해 ‘ㅁㅌ(무통장 입금)’, ‘ㅂㅌ(베팅)’ 등 각종 은어들을 사용했다. 또 도박장을 홍보하는 캐릭터는 IP추적을 피하기 위해 특정 행위를 반복하도록 설계된 ‘매크로 프로그램’을 사용했다.

경찰은 입수한 자료를 한달이 넘도록 분석했고, 결국 도박장 운영자들의 신상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경찰은 피의자들이 서로 연락을 주고 받을 것을 우려해 지난달 20일 A씨를 부산 북구 자택에서, B씨를 대전 서구 자택에서 동시에 검거했다.

또 경찰은 도박장을 운영·관리하는 컴퓨터가 설치된 5곳을 압수수색해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수익금 3000만원과 수익금을 관리하는 체크카드 9매 등도 발견됐다.

경찰 조사결과 이들은 수익금 8억원 중 6억5000만원을 도박과 사무실 전세금, 주식, 자동차 구매에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남은 1억5000만원에 대해서 기소 전 몰수 보전 신청을 했다.

경찰 관계자는 "그동안 불법 도박사이트는 많이 봤어도, 온라인게임 안에 도박장을 만들어 운영하는 것은 흔치않다"며 "일단 발견 자체가 어렵고 수사도 어렵다. 게임 속 내 도박 공간 개설과 도박 행위를 이용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수사할 예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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