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데스'가 말했다 "하늘의 선물이라는 생명… 짐이 된다면 반납할수도"

조선일보
  • 힐레곰(네덜란드)·디에스트(벨기에)=남혜윤 탐험대원
  • 취재 동행 양지혜 기자
    입력 2019.05.18 03:00

    [청년 미래탐험대 100] [17] '안락사 인정' 네덜란드의 삶
    보험사 근무하는 28세 남혜윤씨

    평균수명이 더 늘어나면 스스로 선택하는 죽음인 안락사가 하나의 대안으로 부상하지 않을까. 게다가 한국은 가장 빠른 속도로 늙고 있다. 2001년·2002년 각각 안락사를 합법화한 네덜란드와 벨기에를 찾아갔다.

    '닥터 데스'라 불리는 필립 니슈케 박사가 자신의 연구실에서 제작 중인 안락사 기계 옆에 서 있다.
    '닥터 데스'라 불리는 필립 니슈케 박사가 자신의 연구실에서 제작 중인 안락사 기계 옆에 서 있다. /양지혜 기자
    '닥터 데스(죽음의 의사)'란 별명을 가진 남자가 있다. 죽음을 스스로 선택하겠다는 이들에게 안락사라는 '도구'를 쥐여주는 필립 니슈케(72) 박사다. 이달 초 찾은 네덜란드의 작은 마을 힐레곰, 그의 연구실 앞엔 튤립이 화사하게 피었다.

    호주인인 니슈케 박사는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집행한 의사다. 1996년 호주에서 시한부 환자 넷에게 독극물 주사를 놓아 세계를 발칵 뒤집었다. 의사 면허를 박탈당한 그는 2001년 안락사를 합법화한 네덜란드로 4년전 이주하고 안락사를 연구하는 '엑시트 인터내셔널'을 만들었다. 그에 대해선 '살인마'라는 비난과 '죽음계의 일론 머스크'라는 찬사가 엇갈린다.

    연구실에 들어서자 봅슬레이처럼 생긴 안락사 기계 '사코(Sarco·sarcophagus의 줄임말로 '석관'이란 뜻)'가 보였다. 이 기계는 단추를 누르면(본인만 가능) 순간적으로 질소 농도가 짙어져 정신을 잃고, 1분 안에 세상을 뜬다. 이 기계는 그대로 관(棺)이 된다. (마음이 바뀔 경우를 대비한 긴급 탈출 버튼도 있다.) "기계가 쓰인 적이 있는가"라고 묻자 그는 우리를 물끄러미 봤다. "아직은 없소. 혹시 첫 번째가 되길 원하는가?" 머리가 쭈뼛해 말을 잇지 못하자 그는 물었다. "죽음에 대한 대화조차 께름칙하시오? 죽음을 삶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는 것, 현대사회가 반드시 합의를 봐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네덜란드에선 매년 약 6000명이 안락사를 선택한다. '가족이 안락사 하기로 해 휴가를 쓰겠다'는 이도 드물지 않다. 벨기에는 매년 2000여명이 안락사로 숨진다. 대다수는 말기 암환자다. 한국은 말기 환자의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존엄사법'을 작년 2월부터 시행했다. 시행 후 3만명 넘는 사람이 이 법을 따랐다.

    니슈케 박사는 말했다. "언제 죽을지 선택하는 것은 보편적 기본 인권이어야 합니다." 안락사 방법은 디지털 기술과 함께 진화 중이다. 지금까지 니슈케 박사는 약물로 안락사를 도왔다. 이제 그는 사코 설계도를 인터넷에 무료로 공개해, 원하는 사람은 직접 3D 프린터로 만들 수 있게 하려 한다고 했다. 제작비는 1000만원 안팎이다. 그는 수련의 시절 말기 암환자가 '차라리 죽여 달라' 호소하는데도 도움을 못 주었던 경험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했다. "생명을 하늘의 선물이라고들 하죠. 그 선물이 짐이 됐다면요? 선물을 반납하는 게 죄악인가요?"

    니슈케 박사는 호주 생태학자인 데이비드 구달 박사가 104세이던 지난해 그 '선물'을 반납할 때도 함께했다. 구달 박사는 "품위 없이 더 살기는 싫다"며 스위스에서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을 들으며 안락사했다. 구달 박사가 남겼다는 마지막 말은 이렇다. "이거 젠장… 끔찍하게 오래 걸리는구먼!" 약물 주입 후 그가 세상을 뜨기까지 걸린 시간은 15초였다.


    하반신 마비돼 휠체어 생활… '안락사 선언' 후 패럴림픽 메달 4개

    벨기에 휠체어 육상선수 마리케 베르보트(40)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안락사 예정자'다. 그는 수시로 통증이 오고 끝내는 온몸의 근육이 마비돼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게 되는 퇴행성 척추 마비를 앓고 있다. 2008년 의사 3명의 동의를 얻어 안락사 절차와 장례식 준비까지 마쳤다. 그리고 가열차게 살았다. 4년 뒤인 2012년 런던 패럴림픽에서 금·은메달을 땄고, 2015년엔 세계육상선수권 3관왕에 올랐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패럴림픽 은·동메달을 끝으로 은퇴했다. 그는 당시 기자회견에서 "곧 안락사하겠다"고 다시 한 번 선언했다. 벨기에 소도시 디에스트에 그를 만나러 갔다.

    휠체어 육상 선수 마리케 베르보트(왼쪽)가 지난달 벨기에 디에스트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탐험대원 남혜윤씨를 만나 패럴림픽 메달을 들어 보이고 있다.
    휠체어 육상 선수 마리케 베르보트(왼쪽)가 지난달 벨기에 디에스트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탐험대원 남혜윤씨를 만나 패럴림픽 메달을 들어 보이고 있다. 두 사람 뒤로 마리케의 현역 시절 경기 장면을 담은 사진이 벽에 걸려 있다. 퇴행성 척추 마비 환자인 그는 지난 2008년 안락사 준비 절차를 마쳤다. /양지혜 기자
    ―안락사를 왜 공개적으로 선언했나요.

    "저처럼 불치의 병으로 고통받는 분들에게 알려 드리고 싶었습니다. 안락사가 오히려 지금을 살아내기 위한 하나의 선택지일 수 있다고. 저는 원하는 순간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뜰 수 있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살아갈 용기가 생겼습니다. 죽음은 포기가 아닌 평화로운 휴식이며, 휴식 시간을 직접 정할 수 있게 되고 나서 오히려 매일을 알차게 살 수 있게 됐습니다."

    ―안락사 예고 후 무엇이 달라졌나요.

    "덤으로 사는 인생엔 엄청난 에너지가 생깁니다. 3년 전 리우 패럴림픽 때는 경기 전날 고열·탈수로 병원에 실려갔는데, 다음 날 이 악물고 달려 메달을 두 개 땄습니다. '이게 마지막이야'라고, 미련 없이 경기해서 얻은 결과입니다. 안락사는 마지막 순간까지 의미 있는 기억을 남기게 해주는 결단이라고 믿습니다."

    ―실행 시기는 정했나요.

    "'아, 이만하면 잘 살았다!'라는 생각이 들 때 마지막 결심을 하려 합니다. 요즘 종종 그때가 머잖았음을 느낍니다."

    ―안락사는 반대 목소리도 큰데요.

    "저는 우리가 삶에 고통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삶은 무작정 아름답다? 그건 아니라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고…. 전 하루하루를 어떻게든 살아내야 합니다. 하루에 네 번씩 모르핀을 맞아야 하고 어디에도 못 갑니다. 삶을 평화롭게 끝낼 기회 정도는 쥐고 있어야 살아갈 용기가 납니다."

    ―유언은 준비했나요.

    "모든 순간 정말 최선을 다해 살았다. 유골은 스페인 란사로테섬 바닷가에 뿌려달라. 이 둘입니다."

    나는 하회탈을 선물했다. 마리케는 하회탈 같은 눈웃음으로 인사를 하고선 휠체어를 힘차게 밀며 자리를 떴다. 그에게 삶과 죽음은 상극(相剋)이 아니었다.


    [미탐100 다녀왔습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한국에도 다양한 선택지가 생기길"

    우울증이 있는 것도, 힘든 가정환경에서 성장한 것도 아니지만 '태어나지 않을 수 있는 선택지가 있었다면 그쪽을 택했을 것'이라고 줄곧 생각해왔습니다. 태어났기에 살고 있는 거라면, 최대한 인생을 잘 살고 난 후에 어떤 죽음을 선택할지는 스스로 정하고 싶습니다. 네덜란드는 그런 선택이 이미 현실이 된 나라였습니다. 불치병에 걸린 노인이 안락사로 세상을 떠나는 게 이 나라에선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선택지가 생겼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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