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승록. 우리 아버지 이름입니다. 세 글자밖에 안 됩니다. 그러나 이 이름을 세상에 내놓는 데 58년이 걸렸습니다. 저는 진미경입니다. 아버지의 막내딸입니다."
17일 서울 서초구 자택에서 만난 진미경(63) 한국외대 초빙교수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전날 서울고법 형사 2부는 간첩 방조 혐의로 1963년 대법원에서 징역 10년형을 받았던 고(故) 진승록 서울대 법대 학장에게 재심(再審)을 통해 무죄를 선고했다. 진 전 학장은 1947년 국내 최초의 민법 책 '민법총칙 상권'을 펴낸 민법학의 선구자다.
1961년 1심 판결 후 58년 만에 무죄를 받아낸 사람은 진 전 학장의 막내딸인 진 교수다. 무죄가 확정된 지 하루가 지났지만 딸의 눈은 부어 있었다. "돌아가신 아버지께 편지를 쓰면서 밤새 울었습니다."
아버지는 진 교수가 국민학교 1학년이었던 1961년, 5·16 직후 중앙정보부에 끌려갔다. 북한 간첩에게 대학생 동향 정보를 알려주고 금괴를 받았다는 혐의다. 1심 군법회의는 진 전 학장에게 간첩죄로 사형을 선고했다. 1963년 2심과 대법원에선 간첩 방조죄만 인정돼 징역 10년이 확정됐다. 아버지가 57세되던 해다.
2년여간 구속 수감됐던 진 전 학장은 대법원 판결 2개월 뒤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 3년여간 병원만 다녔다. 그 후로도 강단에 설 수도, 책을 쓸 수도 없었다. 진 교수는 "집으로 형사들이 수시로 찾아왔다"고 했다.
진 전 학장은 1978년 사면받았지만 1985년 79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동안 막내딸은 이화여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미국 버클리대 유학을 마친 후 아주대 교수를 지냈다.
2011년 법원은 1959년 간첩 혐의로 사형된 진보당 당수 조봉암씨에 대해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이 소식에 용기를 얻은 진 교수는 아버지 사건도 재심을 받아보기로 했다. 2014년 7월부터 남편 이수철(66) 용인대 명예교수와 함께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자료를 찾고 인터뷰를 했다. 진 교수는 "아버지의 행적(行跡)을 되짚어가는 긴 여행이었다"고 했다.
우선 육군본부에 가서 아버지 판결문을 찾았다. 1심 재판 때 사형을 구형했던 군 검찰 관계자를 만나기 위해 전남 순천에 갔다. 그는 진 교수에게 "50여년이 흐르고 진 학장 막내딸이 나를 찾아올 줄은 몰랐다"고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상부의 지시대로 사형을 구형했지만, '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증언했다.
판결문도 검증했다. 당시 판결문에는 진 전 학장이 1955년 서울 성북구 돈암동 집에서 북한 간첩을 만났다고 돼 있지만, 진 전 학장은 당시 서울 종로구 신문로에 살고 있었다. 진 교수는 주민센터에서 60여년 전 거주 기록을 찾았다. 1961년 아버지를 수사하고 간첩죄 무혐의 취지의 수사 기록을 작성했던 중앙정보부 파견 형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찾아갔지만, 이미 사망해 허탈해하기도 했다. 이제는 법학계 원로가 된 아버지의 서울대 법대 제자들도 증언해 줬다.
진 교수는 "발로 뛰어 수집한 A4 용지 800여장 분량의 증거 자료와 판결문 내용을 비교해 당시 군 검찰이 주장한 내용 중 틀린 부분이 있는 것을 확인했고, 이것들이 아버지의 무죄를 밝히는 열쇠가 됐다"고 했다. 진 교수의 집 방 한 칸은 이렇게 모은 재판 자료로 가득 차 있었다. 진 교수는 "다시는 국가 폭력에 의해 개인이 희생되는 일이 없도록 여생을 인권 증진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진 교수는 최종 판결문이 나오면 경기 성남시에 있는 아버지 묘소에 바칠 계획이다. 아버지께 부칠 편지도 썼다.
"아버지, 드디어 58년 만에 무죄를 받았습니다. 살아생전 잠 못 이루시고 '억울하다 원통하다' 하셨는데 이제 오명을 벗으셨으니 부디 천국에서 안식을 누리소서. 막내딸 미경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