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흔들립니까? 옷이 흔들립니다. 흔드는 건 어딥니까?"
문무일 검찰총장은 16일 기자회견 도중 갑자기 남색 양복 재킷을 벗어 한 손으로 흔들었다. "검찰이 정치권력에 비틀린 측면이 있다"는 기자 질문이 나온 직후였다.
그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은 옷을 보고 말하면 안 된다. 흔들리는 게 어느 부분에서 시작되는지를 잘 봐야 한다"며 "외부에서 (정치적) 중립을 흔들려는 시도는 있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사실상 검찰이라는 '옷'을 쥐고 흔드는 정치권력을 비판한 것이다. 기자회견 말미엔 "후배들에게 정치 공정성 시비에서 자유롭게 해주겠다는 게 개인적 소망이었는데 그조차 마무리 짓지 못하고 어려운 과제를 넘겨줬다"며 잠시 울컥하기도 했다.
이 기자회견은 정부·여당이 밀어붙인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대한 검찰의 반대 입장을 설명하기 위한 자리였다. 그런데 검찰의 정치 중립성 질문이 나오자 그동안 재임 중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얘기를 꺼낸 것이다. 검찰 안팎에선 인사권을 무기로 검찰에 개입한 현 정권을 겨냥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실제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장자연·김학의·버닝썬' 사건의 진실을 밝히라"며 사실상의 수사 지휘를 한 바 있다.
문 총장은 수사권 조정안에 대해서도 강한 어조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엉뚱한 부분에 손댄 것" "틀 자체가 틀리다"는 말까지 했다. 기자회견에 걸린 시간만 1시간 45분이었다. 검찰총장이 특정 문제에 대해 이렇게 장시간 기자회견을 열어 입장을 밝힌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수사권 조정안은 경찰에 1차적 수사권과 종결권을 주고, 검찰의 수사 지휘권을 폐지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검찰은 그동안 이 안대로 되면 경찰 권한이 비대해져 견제할 수 없게 된다고 반대해왔다. 그러나 그동안의 반대 입장 표명에도 정부·여당이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판단해 검찰총장이 직접 기자회견을 열어 뜻을 밝힌 것이다.
청와대와 여당은 내부적으론 '검찰이 공개적으로 정부 정책에 반기를 들었다'는 분위기지만 이날 공개 입장은 내지 않았다. 대신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이날 민주당 의원들과 비공개로 만나 향후 수사권 조정법안을 어떻게 처리할지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수사권 조정안은 정부가 아닌 국회 입법 사안"이라며 "국회에서 논의할 사항"이라고 했다.
문 총장은 이날 수사권 조정안에 대해 "민주적 원칙에 맞지 않고 기본권 보호에 공백이 생긴다"며 "(조정안대로) 검찰의 무소불위 권능을 경찰까지 확대하는 것은 개혁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수사는 진실을 밝히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국민의 기본권을 합법적으로 침해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며 "수사를 담당하는 어떠한 기관에도 통제받지 않는 권한이 확대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수사권 조정안이 검찰 개혁의 근본 문제를 건드리지 못한 채 경찰에 통제받지 않는 권한만 부여한다는 것이다.
문 총장은 특히 조국 수석이 최근 자기 소셜미디어를 통해 "(현 수사권 조정안으로도) 경찰 수사에 대한 사후 통제가 가능하다"고 한 것에 대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으로 문제(기본권 침해)가 생기고 나서 고치자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고 비판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최근 일선 검사들에게 "개인적 경험이나 특정 사건을 일반화해(조정안을 비판해서)도 안 된다"고 한 것에 대해서도 "검찰은 입 닫고 있으란 말이냐"고 강하게 반박했다.
문 총장은 "(이번 수사권 조정안은) 검찰이 전권적 권능을 갖고 일해왔으니 경찰도 통제 안 받고 전권적 권능을 검찰 통제 빼고 행사할 수 있게 한 것"이라며 "(수사에) 착수하는 사람은 종결해서는 안 되고, 종결하는 사람은 착수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 "(검찰) 문제의 원인에 대해 (수사권 조정안이) 처방을 했다면 저희가 반발하면 안 된다. 그런데 엉뚱한 부분에 손을 댔다"며 "(검찰의) 직접 수사라는 예외적 상황을 통제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했다. 검찰이 정권 하명(下命) 수사를 했다는 논란을 부른 사건은 대부분 검찰 특수부 사건인데 수사권 조정안은 이 부분을 손대지 않고 생활 밀착 범죄를 주로 다루는 검찰 형사부를 겨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정부 안은 (경찰의) 전권적 권능을 확대하는 것"이라며 "이대로라면 국민 기본권 침해에 대한 통제가 풀어진다"고 했다. 이어 "이걸 사후에 고치자거나 나중에 이의 제기로 고친다거나 등의 이야기는 굉장히 위험하다"며 "병이 발생할 것을 알고 사후에 약 지어준다는 이야기와 같다. 사후약방문을 예정하고,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것을 전제로 법을 만들면 안 된다는 것"이라고 했다.
문 총장이 이렇게 강한 어조로 비난한 것은 그동안 검찰이 수사권 조정 논의 과정에서 배제됐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문 총장은 작년 6월에도 수사권 조정 논의 과정에서의 '검찰 패싱'에 반발해 직원들에게 "내 짐을 싸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문 총장은 이날도 "정부 안이 나올 때까지 사실상 검찰 의견을 안 듣는 방식으로 진행된 것은 다 아시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정부 안이 나온 뒤로 의견을 수차례 제기했고, 국회에서 논의가 시작되면 저희가 참여하기로 했는데 논의가 중단된 상태에서 갑자기 패스트트랙(신속 처리 안건)에 올라갔다"며 "이제야 말씀드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문 총장은 검찰 권한 축소도 언급했다. 그는 "수사권 조정 논의에는 검찰이 적지 않은 원인을 제공했다"며 "검찰의 직접 수사를 대폭 줄이겠다"고 했다. 하지만 문 총장의 주장은 일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문 총장은 취임 후 지방 검찰청의 일부 특수부는 없앴지만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선 전직 대통령과 대법원장을 겨냥한 대형 적폐 사건 수사가 이어졌다. 국민이 관심을 갖는 특수수사의 총량은 오히려 늘었는데 이제 와 줄이겠다고 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문 총장이 검찰의 정치 중립 문제를 꺼낸 것도 '뒷북'에 가깝다는 말이 나왔다. 그동안 사실상 정권의 하명 수사를 아무 말 없이 하다가 임기 말에 다가와 문제를 언급했다는 것이다. 문 총장 임기는 오는 7월 24일로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