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돈 안풀면 향후 큰 비용"… KDI "돈 풀면 더 큰 부작용"

조선일보
  • 신수지 기자
    입력 2019.05.17 01:31 | 수정 2019.05.17 10:59

    국책연구기관, 文대통령 '재정 확대' 밝힌 날에 정반대 보고서

    정부가 단기적인 경기 부양을 위해 돈 풀기 정책을 반복할 경우 나라 살림에 큰 부담을 주고, 경제성장률 하락의 구조적인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는 국책연구기관의 진단이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16일 열린 '2019년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우리는 나라 곳간을 채우는 데 중점을 뒀지만 지금의 상황은 저성장과 양극화, 일자리, 저출산·고령화 등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 해결이 매우 시급하다"며 "재정의 과감한 역할이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같은 날 국책연구기관이 전혀 다른 방향의 의견을 제시한 것이다.

    ◇"확대 재정, 구조적 문제 해결 못 하고 장기적으로 큰 부담"

    문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재정은 우리 사회의 중장기 구조 개선뿐 아니라 단기 경기 대응에도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개발연구원 (KDI)은 같은 날 발표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우리 경제의 성장률 둔화와 장기전망' 보고서에서 "성장 둔화에 대응하기 위한 확장적 재정 정책은 장기적인 대안이 될 수 없으며, 오히려 상당한 부작용이 발생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보고서를 쓴 권규호 KDI 연구위원은 "정부가 지출을 늘려 수요를 지탱하는 방식은 단기적으로 효과가 있을 수는 있지만 구조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정책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현재의 성장 둔화는 구조적인 요인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단기적 처방인 재정 확대로는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권 연구위원은 "정부가 성장률 둔화 현상의 원인을 혼동해 잘못된 처방을 제시하면 상당한 비용을 지불해야 할 위험이 있다"며 "단기 부양을 목표로 확장적 재정 정책을 장기간 반복 시행할 경우 중·장기적으로 재정에 큰 부담을 줄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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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세종시 어진동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2019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고 “재정의 과감한 역할이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라며 “지금 재정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가까운 미래에 더 큰 비용을 지불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세종시에서 개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왼쪽부터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낙연 국무총리, 문재인 대통령,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뉴시스

    KDI는 성장률을 높이기 위한 대안으로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뒷받침할 구조 개혁과 기술 혁신이 지속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보고서는 이 같은 노력으로 총요소생산성 기여도를 1.2%포인트까지 끌어올려야 2020년대에도 현재와 비슷한 2% 중반대 성장률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총요소생산성은 한 국가의 전반적인 기술이나 교육수준, 사회제도의 효율성 등이 생산에 얼마나 기여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권 연구위원은 "한국은 금융·노동·기업활동 규제 등 제도적 측면에서 아직 생산성을 끌어올릴 여지가 많다"며 "끊임없는 혁신과 자유로운 경제활동에 유리한 제도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노력이 지속돼야 한다"고 했다.

    ◇생산성 개선 없으면 향후 1%대 성장

    KDI는 성장률이 떨어지는 기본적인 이유도 정부의 재정 지출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낡은 경제 시스템으로 인해 생산성이 하락했기 때문이라고 결론 내렸다. 지난 30년간 성장률을 분석해보면, 한국의 실질 성장률은 1990년대 7%, 2000년대 4.4%, 2010년대 3%로 점차 하락했는데, 같은 기간 총요소생산성의 기여도는 2%, 1.6%, 0.7%로 하락했다. 총요소생산성 기여도가 하락한다는 것은 경제 시스템 전반의 효율성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런 생산성 하락이 경제성장이 둔화한 주요 요인이라는 뜻이다.

    KDI는 이를 토대로 최근 한국 경제성장률 둔화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외 수요 부진이라는 일시적인 경기 요인에 따른 결과라기보다 제도나 기업 환경 등 구조적 요인에서 비롯됐다고 봤다. 보고서는 생산성이 높아지지 않고 현재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가정하면 2020년대(2020~2029년)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1.7%까지 떨어질 것으로 추정했다.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이고 규제 개혁에 적극 나서라는 지적은 KDI뿐 아니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나 국제통화기금(IMF) 같은 국제 경제기구에서도 공통적으로 나오는 조언이다. 그러나 현 정부가 이 같은 제도 개혁에는 소홀한 반면, 재정 지출을 늘리는 데만 몰두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김태기 단국대 교수는 "재정 확대로 경제성장률 하락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은 예산 확대에도 마이너스를 기록한 1분기 경제성장률로 이미 입증됐다"며 "KDI 지적대로 경직적인 노동시장 개혁 등 구조적인 혁신 없이 재정만 확장하는 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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