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칼럼] 경제 망쳐놓고 '20년 집권'?

조선일보
  • 박정훈 논설실장
    입력 2019.05.17 03:17

    경제難 가리려는 정권의 '우기기'가 계속 통할 순 없다
    국민을 한두 해속일 순 있어도 영원히 속일 순 없다

    박정훈 논설실장
    박정훈 논설실장

    이 정권의 경제 인식은 이제 대놓고 '우기는' 수준까지 갔다. 경제가 엉망인 것이 명백해졌는데도 "크게 성공했다" "성과가 나타났다"고 주장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경제 위기를 알리는 비상벨이 요란하게 울려대고 있다. 서민 경제가 파탄나고 일자리는 참사를 빚고 있으며 성장 동력에 급제동이 걸렸다. 모든 지표, 모든 현장 목소리가 비상 상황임을 말해주는데도 정부만 아니라고 한다. 국민 59%가 먹고살기 더 힘들어졌다 하고, 경제학자의 84%가 "위기"라고 하는데 정부만 억지를 부린다. 약간 물 타기 하거나 조금 분칠하는 정도가 아니라 전면 부정이다. 아무리 내로남불 정권이라지만 이렇게까지 딱 잡아뗄 줄은 몰랐다.

    왜 이토록 막무가내인지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것은 정권이 경제를 경제로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는 철저한 실용의 영역이다. 가장 현실적이고 냉정해야 하며 객관적 사실만 따져야 할 국정 분야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는 '경제'를 하고 있지 않다. 경제가 아니라 정치를, 실용 추구가 아니라 가치 투쟁을 하고 있다. 경제를 정치와 이념에 복무하는 하위 개념으로 보고 있다. 정권 차원의 목표 달성을 위한 통치 수단으로 대하는 것이다.

    이 정권의 최고 목표가 무엇인가. 문 대통령은 '주류 세력 교체'라고 했다. 경제의 주류 교체를 위해 들고나온 것이 소득 주도 성장론과 일련의 반기업·친노동 정책들이다. 좌편향 정책을 통해 민노총 중심의 노동 권력, 참여연대류(流)의 좌파 분배론이 주류가 되는 경제로 바꾸려 하고 있다. 이 정권에 소득 주도론은 그저 일개 정책 중의 하나가 아니다. 그것은 정권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 가치이자 이념이다. 수많은 비판이 쏟아져도 꿈쩍 않고 밀어붙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정책은 틀리면 고칠 수 있다. 하지만 소득 주도론은 이념이기 때문에 수정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온갖 부작용을 일으키고 역설이 나타나도 오류를 인정하지 않는다. 일종의 현실 부정 심리다.

    여권은 정권 재창출의 의욕을 불사르고 있다. '20년 집권론'이 제기되고 '좌파 영구 집권' 구상이 흘러나오고 있다. 여당 대표는 '총선 260석' 운운까지 했다. 이것이 집권 세력의 속내일 것이다. 정권의 국정 운영은 온통 선거 스케줄에 맞춰져 있다. 경제 역시 예외가 아니다. 선거용 정책을 쏟아내고 표를 얻기 위해 돈을 풀고 있다. 선거 승리가 지상 과제인 마당에 '경제 실패' 프레임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 총선이 1년도 안 남았는데 정책이 잘못됐다고 시인할 수는 없다. 어떻게든 좌편향 정책을 고수해야 골수 지지층을 붙잡아 둘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가장 실용적이어야 할 경제까지 진영 논리를 펼치고 있다. 이념의 참호를 파고 그 속에 들어가 '진지전(陣地戰)'을 펴겠다는 것이다.

    정권엔 철석같이 믿는 비장의 무기가 있다. 세금 카드다. 곳곳에서 아우성이 터져 나오지만 세금을 쏟아부으면 급한 불은 끌 수 있다. 세금으로 단기 알바 일자리를 만들고, 토건(土建) 붐을 일으켜 지역 건설 경기를 살리면 된다. 초팽창 예산을 집행하고 추경까지 편성해 돈을 풀면 성장률도 어느 정도는 끌어올릴 수 있다. 무너지는 서민 경제 역시 세금 뿌려 진통제를 놓아주면 된다. 세금으로 저소득층 지갑을 채워주고 자영업·소상공인 불만도 누그러트릴 수 있다. 경제가 곤두박질쳐도 세금 약발을 퍼트리면 다음 대선까지는 어떻게든 버틸 수 있다는 계산일 것이다. 결국 눈앞의 위기만 모면하려는 임시 미봉책이다. 국민을 속이겠다는 것이다.

    이 정권은 선거를 위해 세금을 동원하겠다는 생각을 숨기지도 않는다. 지난 재·보선 때 민주당 지도부는 선거구에 내려가 '예산 폭탄'을 안겨 드리겠다며 지원 유세를 했다. 여당 후보를 당선시켜 주면 그를 국회 예결위원에 임명해 지역 예산을 빼오도록 하겠다는 낯뜨거운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체면도 염치도 없다. 나랏돈을 주고 표를 사겠다는 '매표(買票)'나 다름없다.

    그러나 세금으로 경제 실정(失政)을 가리는 눈속임 미봉책이 언제까지나 통할 수는 없다. 이미 시장(市場)의 보복은 시작됐다. 세금을 퍼부어도 제대로 된 일자리는 생기지 않는다. 기업들은 고용하려고도, 투자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경기 사이클은 고꾸라지고 있다. 아무리 세금으로 분칠해도 참담한 경제 현실을 계속 감출 수는 없다.

    국민도 경제가 잘못돼가고 있음을 알기 시작했다. 어떤 여론조사에서도 경제에 낙제점을 주는 응답이 절반을 넘는다. 본지 조사에선 55%가 소득 주도론에 반대하고, 46%가 대통령·청와대에 경제 실패의 책임이 있다고 응답했다. 국민의 눈을 잠깐 가릴 수는 있어도 5년 내내 속일 수는 없다. 경제가 엉망인데 선거를 이겼다는 말은 동서고금 어디서도 들어본 일이 없다. 경제를 망쳐 놓고도 장기 집권 운운하다니 이것은 오만인가, 망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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