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살에 기차 처음 본 中 산골소녀, 미디어 벤처 기업가로 성공

입력 2019.05.16 14:25

‘산골 소녀’ 아이 정(艾诚)이 기차를 처음 본 것은 17살 때였다. 고향인 중국 황산(黄山)시는 오지였다. 주위를 둘러봐도 과수원 뿐이었다. 소녀에게 황산시 바깥 세상은 우주만큼 먼 미지의 세계처럼 느껴졌다.

15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10회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에 참석한 글로리아 아이(Gloria Ai) 아이애스크 미디어 창립자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오종찬 기자
'산골 소녀'는 호기심이 많았다. TV 스크린에 나오는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궁금했다. 호기심은 여정의 출발점이 됐다. 소녀는 800여km 떨어진 베이징대로 진학을 했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바다 건너 미국으로 유학을 결심했다. 이름도 걸맞게 ‘글로리아 아이’로 바꿨다.

아이는 승승장구했다.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세계은행 컨설턴트를 거쳐 중국 국영방송(CCTV) 앵커로 일하게 됐다. 그가 맡았던 인터뷰 방송은 CCTV 핵심 시간대 방영되는 인기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 중국 정·재계에서 아이를 스카웃하기 위한 ‘러브콜’이 쏟아졌다.

2014년 아이는 뜻밖의 선택을 했다. 회사에 돌연 사표를 낸 것. 홀로서기를 선언한 그는 중국의 성공적인 창업자와 혁신가들을 인터뷰하는 미디어 벤처회사 아이애스크(iASK)를 창업했다. 회사는 빠르게 성장했다. 아이 대표는 4년 만에 120여명이 넘는 기업가들을 인터뷰했고, 컨텐츠들은 다양한 미디어 플랫폼에서 조회수 2억건을 넘어섰다. 황산 출신 산골소녀는 2016년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꼽은 '아시아에서 영향력 있는 30세 이하 30인' 중 한명이 됐다.

제10회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에 참석한 글로리아 아이(32) ‘아이애스크' 대표를 지난 15일 만났다. 아이 대표는 "산골 소녀인 나를 도전에 나서게 한 원동력은 호기심이었다"며 "혁신가들의 이야기를 전하기로 마음 먹은 것도 마찬가지다. 미래를 빚어갈 이들을 이해하게 되면 우리 미래에 대한 궁금증도 풀릴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아이 대표는 2014년 CCTV 앵커로 인기가 절정일 때 그만두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고 했다. 그는 "중국 경제의 부흥기와 함께 젊은 경영인들이 쏟아지는 시점이었지만,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는 없었다"며 "서양의 경우, 스티브 잡스, 저커버그, 엘론 머스크와 같은 유명 경영자들이 회사를 대변하지만, 중국은 창업자가 뒤에 있고 회사가 우선되는 문화였다"고 했다.

아이 대표는 "마윈 이외에는 중국의 혁신가, 비전 있는 리더들의 국제적 인지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며 "사람에 대한 얘기가 빠져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들을 소개하는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말했다.

아이 대표는 아이애스크가 성장할 수 있던 이유에 대해 "세계 미디어가 제도권에서 탈중앙화 움직임을 보인 것이 한몫했다"며 "TV, 웹비디오, 팟캐스트, 라디오 등 채널로 우리 컨텐츠를 단독 공급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이 대표는 가장 인상적인 인터뷰로 바이트댄스의 장이밍(張一鳴) 창업가를 꼽았다. 바이트댄스는 인공지능(AI)·콘텐츠 스타트업으로, 기업 가치는 750억달러(약 83조4000억원)에 이르는 회사다. 아이 대표는 "사람들은 장이밍 창업자가 이전에 창업에 4번 실패하고, 중국 미디어 기업들의 소송 포화에 시달리며 벼랑끝에 몰렸던 점을 잘 모른다"며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비전을 믿으며 버틴 점이 무척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아이 대표는 중국을 넘어 확장을 계획하고 있다. '얼굴 없는' 세계의 혁신가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싶다고 했다. 한국도 그의 주요 타깃 중 하나다. 그는 "한국 기업들이 중국에 미치는 영향력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며 "삼성을 비롯한 한국 기업들의 혁신 사례를 발굴해 소개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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