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한숨 나오는 대학가 소식

조선일보
입력 2019.05.16 03:16

한 교수가 인간 행동에 관한 수업에서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읽으라고 했다. 생명체의 진화는 유전자가 최대한 세를 불리려고 이기적 선택을 한 결과라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어떤 학생이 책을 읽은 척하며 말했다. "어떤 사람이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건 이기적 행동을 유발하는 유전자 때문 아닐까요?" 교수는 "어이가 없어 프랑스 작가 피에르 바야르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란 책을 소개해줬다"며 "다들 손뼉 치며 좋아했는데 이 책 역시 아무도 읽지 않았다"고 말했다.

▶작년 한 해 서울대생 1인당 평균 도서 대출량이 8.9권이라고 한다. 2년 전 24.9권보다 크게 줄었다. 대학원생도 13.4권에 불과했다. 옥스퍼드대(108권)나 하버드대(98권)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다. 졸업한 지 몇 년 안 된 후배들에게 물어보니 "그나마 빌린 것도 대개 교과서용일 것"이라고 했다. 한 교수는 "교과서를 빼면 실제 빌린 책은 1인당 한 권이 될지 모르겠다"고 했다. 도서관에서 빌려 간 교재를 학기 내내 반납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학교 도서관 연체료 무는 게 책값보다 싸기 때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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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안 읽는 학생들을 탓하기엔 교수들도 부끄러운 게 많다. 최근 교육부가 논문과 상관없는 자녀 이름을 논문 공동 저자로 올려 아이의 '가짜 스펙'을 만들어 준 교수 102명을 적발했다. 친구나 동료 교수의 아들딸을 공저자로 올린 사례는 더 많았다. 이렇게 만든 가짜 스펙으로 자녀가 대학에 진학하도록 해주는 걸 '논문 품앗이'라고 한다.

▶학계에서는 아무도 관심 없고 가치도 없는 논문을 '실적' 삼아 써내는 교수들의 윤리 의식도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한다. 데이터베이스를 뒤지다 상관관계가 성립하는 듯한 자료를 발견하면 적당히 조립해 논문으로 발표하는 식이다. 이런 논문 역시 기업이나 재단에서 연구비를 받거나 연구 실적이라며 재임용이나 승진의 근거가 된다.

▶요즘 축제 철을 맞은 대학가 마트가 '술 매출 대박'이 났다고 한다. 대학 축제의 주점 영업이 주세법 위반이라고 국세청이 경고하면서 술을 못 팔게 됐기 때문이다. 대학 앞 마트 단 한 곳에서 술이 하루 6000병 팔렸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사립대에서는 등록금 10년 동결로 연구는커녕 화장실 휴지 살 돈도 없다고 비명이다. 요즘 대학가에서 들리는 뉴스가 죄다 이 모양이다. 여기서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된다면 기적이 따로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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