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의 사물극장] [98] 의사 장기려와 넥타이

조선일보
  •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입력 2019.05.16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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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 든 도둑이 들고 나갈 게 없자 책들을 주섬주섬 챙겼다. 주인이 도둑을 말렸다. "그건 돈이 안 되는 것이니 놔두시게. 대신 내가 돈을 주겠네." 도둑은 책 대신에 돈을 받고 나갔다. 바보 의사, 작은 예수,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린 장기려(1911~1995)의 얘기다. 그는 부산에서 청십자의원을 세우고, 나라의 의료보험제도보다 앞서서 '청십자의료보험' 시대를 열었다.

    의사 장기려는 거지, 행려병자, 간질 환자들을 먼저 섬긴 우리 시대의 의인(義人)이고 성자(聖者)다. 집에 구걸 온 걸인과는 겸상을 하고, 거리의 걸인에겐 외투를 벗어주었다. 어느 날인가, 거지를 만났는데 돈이 없었다. 그는 그냥 가다가 월급으로 받은 안주머니의 수표가 생각나자 돌아가서 그걸 거지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경성의전(서울 의대의 전신)을 졸업하고 서른 살에 평양 기홀병원 외과 과장으로 가서 병원장을 지냈다. 해방 무렵 김일성대학 교수를, 나중에 남쪽으로 내려와 서울대 의대와 서울 가톨릭 의대에서 외래교수를 지냈다. 김일성대학에서 영어 원서로 가르칠 만큼 영어 실력이 뛰어났다. 독학으로 공부한 러시아어 실력도 뛰어났다.

    1950년 12월 3일 차남만 데리고 남쪽으로 내려오며 아내와 자녀 다섯과는 생이별했다. 늘 북쪽에 두고 온 아내와 자녀를 그리워하며 평생을 혼자 살았다. 그는 성실한 신앙인이었지만 돈과 권위주의, 파벌과 세습 같은 세속주의에 물든 교회 개혁을 절감했다. 76세 때 교단과 교회를 등지고 기독 신앙의 실천을 예배보다 중시하는 '종들의 모임'에 나갔다.

    한번은 교단 목사들을 '종들의 모임'에 초대했다. 이들은 강단에 선 이가 남방 차림에 넥타이를 매지 않은 것을 보고 "넥타이도 안 매고 말이지, 뭐 들을 게 있겠어요?" 하곤 가버렸다. 장기려는 본질이 아니라 겉치레를 문제 삼는 교단 목사들을 가엾게 여겼다. 그는 "넥타이를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 들을 자격 없지. 예수님이 넥타이 맸냐"며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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