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前 그날처럼… 영국왕자, 여왕의 생일상 대신 받다

입력 2019.05.15 03:01

안동 찾은 앤드루 왕자, 1999년 엘리자베스 2세의 발자취 재현

"1999년 4월 어머니께서 이곳에서 73세 생일상을 받으셨습니다. 제가 이곳에 온다고 하니 어머니께서 '가서 보고 살피고 느끼고 체험한 것을 돌아와서 한 가지도 빼놓지 말고 다 보고하라'고 하셨습니다."

환갑을 앞둔 왕자가 구순(九旬)이 넘은 여왕의 당부를 전하자 양반 마을 주민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차남인 앤드루 윈저(59) 왕자가 14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경북 안동 하회마을을 찾았다. 어머니 여왕이 방문한 지 20년 만이다. 앤드루 왕자는 이날 20년 전 어머니의 발자취를 따라 마을을 돌아보고, 어머니가 받았던 생일상을 똑같이 받았다. 한옥에 들어설 땐 어머니 여왕이 했던 대로 신발을 벗는 파격을 선보이며 한국 종가 문화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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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前 어머니 생일상 그대로 - 앤드루 윈저(왼쪽 사진 가운데) 영국 왕자가 14일 경북 안동 하회마을 전통 한옥 담연재에서 이철우(맨 왼쪽) 경북도지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왕자 앞에 차려진 상은 1999년 4월 21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이곳에서 받았던 생일상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1999년 4월 한국을 찾았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오른쪽 사진 가운데)은 담연재에서 생일상을 받고 하회마을 곳곳을 둘러봤다. 앤드루 왕자는 조선일보가 개최하는 제10회 아시안 리더십 콘퍼런스(ALC)에 참여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김동환·이덕훈 기자
앤드루 왕자는 이날 오전 11시 서울에서 헬기를 타고 안동시 풍천면 경북도청에 도착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로부터 도청에 대해 설명을 듣고 하회마을로 이동했다. 마을 입구에서는 주민 300여명이 왕자를 맞았다. 태극기와 영국기를 흔들며 반기는 주민들을 향해 왕자도 손을 흔들어 화답했다. 앤드루 왕자가 서애 류성룡(1542~1607) 종택인 충효당에 들어서자 갓을 쓰고 도포를 차려입은 충효당 종손 류창해(63)씨 부부가 내당으로 안내했다. 충효당 사랑방 앞에 잠시 멈춰 선 앤드루 왕자는 20년 전 여왕이 했던 것처럼 신발을 댓돌에 벗어두고 안으로 들어섰다. 20년 전에도 여왕이 신발을 벗었다는 사실에 영국 현지 언론이 떠들썩했다. 그만큼 한국 전통을 존중한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왕자는 여왕의 생일상과 똑같은 상이 다시 차려진 담연재에서 여왕의 메시지를 낭독했다. 여왕은 "당시 생일상을 마음 깊이 기억하고 있다"며 "하회마을 주민과 안동시, 경상북도 여러분에게 좋은 일만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메시지를 통해 전했다. 다시 차려진 생일상에는 도미찜과 신선로, 전복찜, 숭어만두 등 47가지 음식이 올랐다. 권영세 안동시장은 이날 앤드루 왕자에게 한지 세트와 그릇을 기념 선물로 전달했다. 권 시장이 "1000년 전통의 한지"라고 소개하자 앤드루 왕자가 "안동에 오니 도청 인근 숲도 천년 숲, 도자기에 그려진 학도 천년 학"이라며 "안동에 살면 천년을 살 수 있습니까"라고 물어 좌중에 웃음이 번졌다.

앤드루 왕자는 여왕처럼 농협 공판장에 들러 경매 시연을 했다. 안동 농민과 함께 3년생 부사 사과나무를 심었다. 또 국내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인 봉정사 극락전을 둘러보고 범종을 타종했다. 세계기록유산인 유교책판이 보관된 한국국학진흥원에서 퇴계 이황 선생의 성학십도 목판 프린팅을 시연하는 것으로 안동 방문 일정을 마무리했다. 앤드루 왕자는 "어머니께서 다녀가셨던 길을 다시 걷게 돼서 매우 기쁘다"고 했다. 또 "영국과 대한민국의 관계는 매우 특별하다"며 "이번처럼 과거에 함께한 행사를 다시 축하하는 기회를 만든 것은 양국 관계에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동시는 20년 전 여왕이 다녀가고 이번에 왕자가 그대로 따라간 하회마을~농수산물도매시장~봉정사에 이르는 32㎞ 구간을 '왕족의 길'이라는 뜻의 '로열 웨이(The Royal Way)'로 부르기로 했다. 기존에는 여왕이 다녀갔다는 뜻에서 '퀸스 로드(Queen' s Road)'로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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