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결국 버스 요금 인상, 국민에 부담 전가 말고 주 52시간 재검토를

조선일보
입력 2019.05.15 03:20

주 52시간제로 인해 줄어들 소득을 보전하라며 전면 파업을 예고한 버스 기사들에게 정부가 백기를 들었다. 민주당 대표와 국토부 장관, 경기지사는 경기도 시내버스 요금을 200원(약 15%) 올리기로 합의했다. 당·정은 충남·북과 경남의 버스 요금도 연내 인상하고, 다른 지역도 대부분 요금 인상과 기사 임금 인상을 추진하기로 했다. 광역버스에도 국민 세금을 지원하는 '준공영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대책 없이 강행한 주 52시간제의 부작용이 결국 고스란히 국민 부담으로 전가된 것이다. 정부가 사고를 쳐놓고 국민이 뒷감당을 하게 됐다. "대통령과 장관, 여당 의원들이 돈을 내라"고 말하고 싶은 국민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버스뿐 아니라 제조·유통·건설업 등 산업 현장마다 주 52시간제의 혼선과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조선업체들은 최근 늘어난 수주로 작업 물량이 많아졌는데도 근로시간 제한에 묶여 납기를 맞추느라 애를 먹고 있다. 경영이 어려워 마냥 인력을 늘릴 수 없는 상황에서 즉시 작업 현장에 투입할 숙련자를 찾기도 어렵다. 한 IT 대기업은 소규모 서비스 센터들을 본사에 편입시켰는데 이들이 주 52시간제를 적용받으면서 근로시간 부족으로 서비스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주 52시간제 여파로 기업 수익이 줄고 비용 부담이 커지면 버스 대란 같은 집단행동이 또 나올 가능성이 크다.

산업 현장에선 지난달부터 적용 대상이 된 '300인 이상 사업장' 규제를 받지 않으려 직원을 더 고용하지 않고 인원수를 299명으로 못 박거나 일부러 직원 규모를 축소 신고하는 일까지 등장하고 있다. 특히 집중력과 기술개발 속도가 성패를 가르는 인공지능·빅데이터 등 4차 산업 인재들을 시간 틀에 가두는 건 사실상 국가 경제에 자해 행위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업주뿐 아니라 근로자도 힘들게 하고 있다. 저녁과 주말에 남는 시간은 많아졌지만 소득이 줄어들어 당장 가계 지출부터 줄여야 한다. 저녁에 아르바이트하지 않으면 생활이 안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주 52시간제는 2년 뒤엔 5인 이상 사업장은 모두 적용 대상이 된다. 이를 어기면 '2년 이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기업인과 소상공인들이 어이없이 감옥에 갈 판이다. 대부분 나라가 법정 근로시간 규정을 두고 있지만 우리처럼 형사 처벌하는 나라는 대만 정도다. 미국·영국·프랑스는 처벌 규정 자체가 없고, 독일은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 아직 더 성장해야 하는 경제 현실에 전혀 맞지 않는 강압적 근로시간 규제가 산업과 기업을 훼손하고 근로자 소득을 줄이는 역설을 낳고 있다.

근로자 혹사는 안 된다. 하지만 모든 정책은 유연해야 한다. 독일·영국 등 유럽 주요국은 근로시간을 노사 자율 합의에 맡기고 유연 근로제를 적극 적용한다. 일본도 성수기 등 특수 여건에선 초과근무를 허용한다. 근로자가 원하면 더 일할 수 있는 제도도 있다.

한국에선 정부가 한번 무엇을 내세우면 '성역'이 된다. 소득 주도 성장, 최저임금 과속 인상, 탈원전에 이어 주 52시간제까지 성역으로 들어갔다. 대통령은 어제 "최저임금, 탄력근로제, 주 52시간 근로제 등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한 사안에 대해 기업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다"고 했다. 듣고 고쳐야 한다. 잘못된 일을 수정하는 걸 '기적' 바라듯 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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