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일의 입] 문대통령 ‘인(人)의 장막’

입력 2019.05.14 19:34 | 수정 2019.05.14 19:36


문재인 정부와 집권당은 또다시 세금 보따리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기·승·전·세금’이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전국 버스 파업이 코앞에 닥치자 ‘준(準)공영제’를 전국으로 확대하겠다고 했다. 버스회사에서 적자가 나면 국가 세금으로 지원해주겠다는 것이다. 버스기사에게 주 52시간제를 보장하면서 종전 월급을 그대로 주면 회사의 적자가 뻔한 데 그것을 나라 세금으로 메꿔주겠다는 것이다. 그 돈이 자그마치 1조3000억 원이다.

문재인 정부는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 버스기사들에게도 주 52시간제를 적용하면 문제가 생길 것이란 점은 이미 1년 전부터 불거진 사안이었는데, 왜 이제 와서 세금 보따리로 해결하려 드는 것일까. 모든 것을 세금으로 해결하려는 이 무책임한 자신감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김광일의 입’은 이런 현상들을 빚어내는 요인을 모두 6가지로 나눠서 분석했다. 1)인(人)의 장막 2)복수심 3)총선(總選) 두려움 4)‘역사와의 대화(?)’ 5)주류교체 6)기고만장 등이다. 오늘은 1)인(人)의 장막 2)복수심 두 가지에 대해 살펴보겠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소련 진영에 속하는 국가들의 폐쇄성을 표현하면서 ‘철(鐵)의 장막’이라고 했다. 1946년 처칠이 연설문에 썼던 ‘아이언 커튼’이 그 말이다.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의 폐쇄성, 비밀주의를 뜻한다. ‘죽(竹)의 장막’이란 말은 중국의 폐쇄성, 배타성을 가리킬 때 썼던 말이다. 그러나 ‘철의 장막’이나 ‘죽의 장막’보다 더 답답하고 무서운 것이 바로 ‘인(人)의 장막’이다.

어느 정권이든 자기 사람들을 데려다 쓰면서 ‘코드 인사’도 있었고,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회전문 인사’도 있었다. 이른바 국정 철학이 맞는 사람을 중용한다는 명분이다. 그렇지만 지금 문재인 정부는 과거 어떤 정부보다 ‘캠코더’ 인사가 노골적이고 광범위하다. 선거 캠프에서 일했던 사람에게 보은(報恩) 인사를 하고, 코드가 맞는 사람만 갖다 쓰는 편향 인사를 하며, 집권당으로 인재 풀을 한정시키는 답답함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이런 사람들이 대통령을 둘러싸고, 대통령의 눈과 귀를 선별적으로 차단하면서 이른바 ‘벌거벗은 임금님’을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작년 10월 조선일보는 이런 보도를 했다. ‘청와대 비서실과 정책실, 안보실의 비서관급 이상 참모 중 전대협이나 대학 총학생회장 같은 운동권 출신, 그리고 각종 시민단체 출신은 전체 64명 중 23명, 36%였다. 임종석 비서실장이 관장하는 비서관급 이상 31명만 대상으로 좁히면 운동권·시민단체 출신은 전체의 61%, 19명에 달한다. 작년 연말, 17명보다 비중이 더 늘었다.’ 지금도 상황과 기조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대통령에게 ‘확증 편향적’ 보고(報告)만 올릴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대통령은 현실과 동떨어진 통계숫자만 인용하고 있다는 비난을 듣는다. 문 대통령은 "OECD 국가 중 한국은 상당한 고(高)성장 국가"라고 했다. 그러나 실상은 크게 다르다. OECD 36개 회원국 가운데 한국의 성장률은 2016년 11위, 2017년 12위, 그리고 작년에 18위로 떨어졌다. 대통령은 이걸 알면서도 그러는 것인지, 모르고 그러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때로 대통령이 청와대라고 하는 영화 ‘트루먼 쇼’ 세트장에 갇혀 있는 게 아닌가, 걱정된다.

지금 가장 큰 문제는 미국·중국이 벌이는 무역 전쟁이다. 일촉즉발 ‘보복 관세’가 꼬리를 물고 있다. 미·중은 우리에게 무역 상대 1, 2위인 수퍼 파워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주식펀드에서 벌써 2조원이 빠져나가고 있고, 코스피가 무너지고 있다. 그런데도 ‘벌거벗은 임금님’은 우리 경제를 낙관하고 있다니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대통령은 협치(協治)의 손을 내밀기는커녕 야당을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있다. ‘패스트 트랙 지정’에 강하게 반발한 자유한국당을 겨냥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막말과 험한 말로 국민 혐오를 부추기며 국민들을 극단적으로 분열시키는 정치는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 못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야당이 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판하면 그것에 대해 ‘낡은 이념의 잣대’라고 되받아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자유한국당을 정치 파트너로 인정하는 유연한 태도를 보이지 못하고, 야당을 불신하는 이유는 뭘까. 그들의 심리적 기저를 깊게 파들어 가면 일종의 정치 보복적 증오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을 수도 있다. 그것이 바로 문재인 정부가 갖고 있는 2)복수심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저 문재인의 사전에 정치보복은 없다. 다음 정부는 그런 짓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게 대선 공약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 보복"을 하고 있다고 비난하자 문재인 대통령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분노’와 ‘모욕’을 느낀다고도 했다.

그러나 청와대가 야당과 협치보다는 적폐청산이 우선이라고 외치고 있고, 전직 대통령 세 분이 형사재판을 받고 있는 지금 상황을 과연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김대중 대통령은 집권한 뒤에도 1973년에 있었던 ‘도쿄 김대중 납치사건’에 대해 정치적·사법적 앙갚음을 한 적이 없다. 순간적인 복수심이 긍정적으로 승화되면 전직 대통령보다 국정을 잘 하겠다는 좋은 에너지로 변화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끝까지 ‘청산(淸算)’을 외치는 도그마에 스스로 갇히게 되는 것이다.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