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이 우리나라 근대 병원의 종가(宗家) 격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을 노원구 상계동에 있는 지하철 4호선 창동차량 기지 부지로 옮기자고 서울대 측에 제안했다. 오는 2024년 지하철 기지가 경기도 남양주시로 이전하고 비는 땅에 병원을 유치해 이 일대를 첨단 의료 산업 단지로 키우겠다는 것이다. 박원순 시장은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앞으로 서울과 우리나라가 미래 성장 동력으로 삼을 수 있는 산업은 의료·바이오 분야밖에 없다"며 "창동 기지 자리에 세계 최고·최대의 병원을 만들자고 서울대 측에 제안했다"고 밝혔다. 박 시장은 "지난달 오세정 서울대 총장을 만나 직접 설명했고, 오 총장도 전향적으로 고려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서울대병원이 훨씬 더 넓은 부지에서 세계 최고 병원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서울시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서울대 측에 제안했다"고 말했다. 창동 부지는 17만9578㎡로 현재 연건동 부지 10만4752㎡의 약 2배 규모다. 박 시장은 "(부지를) 싼 가격에 50년이고 100년이고 쓸 수 있도록 드리겠다고 했다"며 파격적인 임차료에 토지를 공급할 의사도 내비쳤다. 창동 기지는 오는 2024년 이전 뒤 2025년부터 본격 재개발이 시작된다. 박 시장은 "임기 내 착공은 어렵겠지만, 밑그림까지는 그려 놓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장의 제안에는 병원뿐 아니라 서울대 의대의 창동 기지 이전까지 포함된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박 시장의 이 같은 제안이 구체적으로 논의될 경우 작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서울대병원이 가진 상징성 때문이다. 서울대병원 전신인 '대한의원'이 1907년 현재 연건동 부지에 문을 연 뒤 이 자리를 지켰다. 이 때문에 '연건동'은 서울대병원과 서울대 의대를 상징하는 이름으로도 굳어졌다. 그러나 도심 한복판인 데다가 창경궁·창덕궁과 인접해 부지 확장이나 건물 증축이 어렵다는 점은 위치상 단점으로 꼽혀 왔다. 그동안 서울대병원의 시설 확장은 주로 지하 공간을 통해서 이뤄져 왔다. 박 시장은 이 때문에 이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전 부지로 제안한 상계동 창동 차량기지는 1984년 지하철 4호선 개통 때 만들어졌다. 서울시가 창동 기지와 맞붙어 있는 경찰청 소유 도봉면허시험장(부지 면적 6만7420㎡)도 이전시킬 경우 연건동 부지보다 2.5배까지 넓힐 수 있다.
서울시는 창동 기지 일대를 세계적인 의료·바이오 기업들이 모인 첨단 산업 단지로 키우겠다는 방침이다. 초대형 K팝 공연장을 신축할 예정인 중랑천 건너편 도봉구 창동과 함께 노원·도봉구를 강북의 새로운 산업 거점으로 키운다는 밑그림을 그려 놓았다. 서울대병원의 창동 기지 이전이 현실화될 경우 이러한 구상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박 시장의 이전 제안에 대해 서울대 측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걸려 있는 큰 규모의 사업이라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병원 측 입장이 정리된 게 없다"고 밝혔다. '연건동 캠퍼스'에 대해 추억과 자부심을 가진 동문, 병원 주변 약국들의 반발이 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서울시는 서울대병원이 '노원구 시대'를 열 수 있도록 최대한 설득한다는 방침이다. 서울시는 최근 '서울대병원 창동기지이전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이르면 이번 주 내에 첫 회의를 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