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들 "결론 정해놓고 밀어붙인 게 누군데… 어이가 없다"

입력 2019.05.13 03:54

국토부 - "버스사태, 주52시간 때문인데 왜 우릴 걸고 넘어지나"
산업부 - "탈원전 정책 탓에 욕먹어가며 일하는데 정말 너무하다"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와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이 정부 관료들을 싸잡아 비판한 대화 내용이 알려지자 주요 부처 공무원들은 부글부글하는 분위기다. 관료 사회에 대한 당·청(黨·靑) 핵심 인사들의 평소 편향된 인식이 그대로 드러난 것 아니냐는 것이다. 부처 관료들은 청와대에 대해 "독단적으로 정책 방향을 정한 뒤 무조건 따르라고 지시했으면서 왜 책임은 우리에게 돌리느냐"고 불만을 표시했다. "묵묵하게 열심히 일했는데 평가가 너무 박하다"며 섭섭함을 토로하는 공직자들도 많았다.

◇"무리한 정책 펼치다 안 되면 공무원 탓"

이번에 국토교통부는 '대표적 문제 사례'로 지목됐다. 최근 버스 노조의 총파업 예고 사태가 국토부 관료들의 복지부동 때문에 벌어졌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국토부에선 "정책 방향이 잘못된 게 근본적 문제"라는 말이 나왔다. 국토부 고위 관계자는 "청와대와 여당이 '대통령 공약'이라면서 주 52시간 근로제를 강행한 것이 버스 사태의 원인인데, 왜 공무원만 걸고넘어지느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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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을 추진하면서 야당의 집중포화를 받았던 산업통상자원부도 "말을 안 듣거나 일을 안 한 적이 없는데 너무하다"고 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청와대와 여당이 시키지도 않은 일을 정부 부처가 하겠느냐"며 "결국 책임은 청와대에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다른 산업부 인사는 "탈원전 정책으로 욕도 많이 먹고 숱한 비판도 받았지만, '레임덕'이 온 것처럼 무책임하게 대응하지 않았다"며 "(탈원전) 부작용을 줄이려고 최선을 다해왔는데, (관료 탓을 한다면) 평가가 박한 것"이라고 했다.

경제 관련 부처에선 "청와대가 바른 방향을 제시하면 정부 부처도 자연스레 일해 나갈 수 있는데 청와대가 바른 방향으로 가지 못하니 각종 저항에 부딪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기재부의 한 과장은 "청와대에서 결론을 다 정해놓고 밀어붙이다 그대로 안 되면 '공무원이 제대로 준비를 못 한 탓'이라고 한다"고 했다.

◇"관료들 일하는 동안 당·청은 뭐했나"

주요 부처 공무원들은 이 원내대표와 김 실장의 지적에 대해 "하라는 대로 열심히 했는데 섭섭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국토부 관계자는 "청와대와 여당은 큰소리만 쳤지 도대체 무슨 노력을 했느냐"며 "우리 탓만 하는 건 너무하다"고 했다. 또 다른 국토부 인사는 "최근 버스 사태 해결의 열쇠가 될 수 있는 '버스 요금 인상안'을 경기도가 최종 거부해 협상이 결렬됐다"며 "이 과정에서 민주당 소속인 이재명 경기지사를 민주당이 설득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고 했다. 당·청은 사태 해결에 전혀 힘을 보태지 않고 방관만 했다는 주장이다.

산업부 한 공무원은 "산업 살리기 대책을 내고, 일본과의 수산물 소송에서 이기는 등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기운 빠지는 소리만 듣는다"고 했다. 경제 부처의 한 관료는 "솔직히 일 안 하는 국회가 공무원들 일 안 한다고 하느냐" "당·청 수뇌부의 속내가 드러난 것 같아 씁쓸했다"고 했다.

외교부에선 "청와대의 '독주'에 끌려가고 있는데 욕은 우리만 먹는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다. 한 외교관은 "청와대가 모든 현안을 좌지우지하면서도 외교부엔 비핵화 협상의 정보도 안 준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체코 면담 논란'은 외교관들 사이에서 대표적인 '외교부 무시' 사례로 꼽힌다. 작년 11월 문 대통령이 체코 총리와 '정식 회담'이 아닌 '비공식 면담'을 해 논란이 됐을 때 청와대가 '회담이 맞는데 실무자가 면담으로 오기(誤記)했다'며 외교부 탓으로 돌렸다는 것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청와대가 티 나는 건 다 가져가고, 하기 싫은 일 뒤처리만 (외교부에) 시키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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