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 세력은 기득권에 대한 증오심 부추겨 집권한다"

입력 2019.05.13 03:50

[제10회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 / 기로에 선 세계: 구체적 해법을 찾아서]
렌치 前이탈리아 총리 서면인터뷰

"포퓰리즘엔 엘리트·기득권층에 대한 증오심이 깔려 있다. 포퓰리스트들은 이런 증오심을 이용해 집권하는데, 문제는 이들도 집권 이후엔 기득권이 돼버린다는 것이다."

2014년 39세 나이로 최연소 총리에 오른 마테오 렌치 전 이탈리아 총리가 14~15일 열리는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에 참가해 포퓰리즘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2014년 39세 나이로 최연소 총리에 오른 마테오 렌치 전 이탈리아 총리가 14~15일 열리는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에 참가해 포퓰리즘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블룸버그
마테오 렌치(44·현 상원 의원) 전 이탈리아 총리는 12일 "포퓰리즘이란 유령이 세계 각국을 휩쓸고 있다"면서 "포퓰리즘은 나라와 시대마다 다르게 나타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공통점이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렌치 전 총리는 14~15일 조선일보 주최로 열리는 제10회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에 참석하기에 앞서 본지와 서면 인터뷰를 했다. 그는 "포퓰리즘은 '엘리트·기득권층은 나쁘다'는 간단하면서 얄팍한 개념으로, 이들과 맞서는 우리만이 '진짜(authentic)'라고 대중이 믿게끔 하는 것"이라면서 한국 국민도 이를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렌치 전 총리는 2014년 39세 나이로 이탈리아 최연소 총리에 오른 젊은 정치인이다. 당시 그는 실용주의를 내세우며 선심성 복지 정책을 남발하는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을 비판하며 주목받았다. 그는 "포퓰리즘은 잠시 유행하는 '패션'과 같아 잊힐 운명이긴 하지만, 문제는 시간"이라며 "제대로 대응하지 않으면 이들의 독주를 오랫동안 지켜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사태를 포퓰리즘이 얼마나 큰 국가적 손실을 가져올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들었다. 렌치 전 총리는 "영국의 포퓰리스트들은 브렉시트만 하면 영국이 EU(유럽연합)의 지배자로 등극할 것처럼 거짓말했지만, 현재 영국은 전혀 그런 상황이 아니다"라고 했다. 영국은 현재 브렉시트 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브렉시트로 발생할 천문학적인 금전적 손실, EU와 행정적 문제와 관련해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는 "포퓰리스트들은 선전에 능숙하다"면서 "기성 정치 세력도 과거 방식의 대중 메시지 전달법에서 벗어나 소셜미디어(SNS) 같은 새로운 매체 활용, 이야기식 화법을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렌치 전 총리는 재임 시절 상원 의원 수를 줄이고, 의원의 권력과 특혜를 줄이는 내용을 골자로 한 개헌안을 추진했다. 의원들 간 '밥그릇 싸움' 탓에 웬만한 법안이 통과하는 데 3년이 꼬박 걸릴 정도로 고비용·저효율이라는 이탈리아 정치의 고질병을 고치기 위한 시도였다.

그의 이런 정치 개혁은 결국 실패로 끝났지만 여전히 이탈리아뿐 아니라 유럽에서 집권 세력의 모범적 개혁 사례로 꼽힌다. 그는 "국민이 알고 싶어하고 원하는 것에 답을 주는 데 시간을 쏟지 않고, 정치적 싸움만 하고 자신들의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정치인들은 소용이 없다"면서 "다만 (재임 시절 개헌안을 급히 추진해) 주류 정치 세력에 위기감을 느끼게 하고 결국 통합 정부 구성을 어렵게 만든 건 실수였던 것 같다"고 했다. 옳은 개혁이라 하더라도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렌치 전 총리는 노조를 기반으로 하는 중도 좌파 민주당(DP) 소속이지만, 재임 시절 노동시장 개혁, 정부 지출 축소, 공공 자산 매각 정책을 추진해 실용주의 지도자로 높이 평가받았다. 그는 "노동세를 줄였더니 각 조직의 관료주의적 절차가 간소화하며 일의 효율이 올라갔다"면서 "포퓰리즘 정권 때는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이 마이너스 2.3%였지만, 내가 취임해 노동 개혁 등을 추진하자 성장률이 1.7%로 회복되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는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룬 한국의 기적 스토리는 이탈리아도 잘 알고 있다"면서 "지금 성장 침체기에 있지만 분명히 이를 극복할 것이라 믿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 기업이 혁신을 통해 성장하고, 국가 경제를 이끌려면 한국의 대통령과 정치인들은 기업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옳은 선택을 해야 한다"면서 고대 로마 격언을 하나 소개했다. '우니쿠이케 수움(Unicuique suum·각자 제 할 일을 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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