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학과' 도입 15년… 전문인력 배출 성과 냈지만 중도탈락률은 해결할 숙제

입력 2019.05.13 03:00 | 수정 2019.05.13 05:13

정부는 지난달 30일 시스템 반도체 산업을 육성해 2030년 종합반도체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며 대대적인 투자와 인력양성 계획을 발표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계약학과 신설이다. 정부는 대학과 산업체가 손잡고 채용을 보장하는 계약학과를 신설해 3400명을 양성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연세대와 고려대 등이 정부의 계획에 따라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손잡고 2021학년도부터 신입생을 모집한다고 발표했다. 두 대학 모두 졸업 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채용을 보장하는 채용조건형 계약학과다. 서울대와 카이스트도 산업체와 함께 반도체 인력 양성을 위한 계약학과 신설을 논의하고 있다.

정부가 최근 반도체 인력을 계약학과로 양성한다는 계획을 밝히면서 계약학과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정부가 최근 반도체 인력을 계약학과로 양성한다는 계획을 밝히면서 계약학과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이신영 기자
◇2004년 도입 뒤 15년… 전문 인재 공급 성과

2004년 도입된 계약학과는 '산업교육진흥 및 산학연협력촉진에 관한 법률'(산학협력법) 8조에 근거해 산업체 수요에 따른 맞춤형 인재를 양성하는 제도다. 기업이 요구하는 교육내용을 반영해 대학이 인력을 양성하는 게 골자다. 졸업 뒤 취업을 100% 보장하는 채용조건형과 산업체 재직자를 위탁교육하는 재교육형으로 나뉜다. 운영 비용은 주로 대학과 기업이 50%씩 부담한다. 일부는 학습자인 학생이 부담할 수도 있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도움을 받는 3자계약의 경우엔 대학이 부담할 몫을 정부 또는 지자체가 맡기도 한다. 계약기간은 우선 학제에 따라 졸업자가 처음 나오는 2~4년으로 체결하고 자체평가에 따라 계약기간을 갱신하는 형태로 운영한다.

현재 채용조건형 계약학과는 비중이 크지 않다. 대학정보공시포털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계약학과는 793곳이 운영 중이다. 이 가운데 채용조건형은 4년제 대학에 21곳, 전문대학에 11곳, 대학원에 67곳, 대학원대학에 18곳이 각각 설치돼 있다. 나머지 계약학과는 모두 재교육형이다. 인건비 부담을 직접 져야 하는 기업이 채용조건형보다 재직자의 역량을 끌어올리는 재교육형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재교육형은 이미 기업을 다니는 재직자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기업이 대학에 위탁교육을 하는 형식이다. 대학 1곳과 기업 1곳이 계약을 맺기도 하고 여러 기업이 1개 대학과 계약을 하는 구성도 있다.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취업을 했거나 고졸 재직자를 주로 대상으로 하다 보니 특히 중소기업에 양질의 인력을 공급하는 기능을 한다. 중소기업으로서는 재직자의 학위취득을 지원해 장기고용할 수 있는 유인책이 됐다. 근로자는 선취업 후진학을 통해 자신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채용조건형은 대학의 일반학과에선 양성하기 어려운 실무인재를 양성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효과다. 전공분야를 폭넓게 배우는 학부교육의 특성상 일반학과에선 반도체나 이동통신 관련 기술에 특화된 인재를 뽑기 어려운데, 이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

정부는 앞으로 재교육형보다 채용조건형 계약학과를 늘릴 계획이다. 최근 정부가 팔을 걷고 대기업과 대학을 연결한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신설 계약학과는 모두 채용조건형이다. 채용조건형은 직접적으로 취업률을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다. 엄중흠 교육부 교육일자리총괄과 사무관은 "계약학과를 통해 기업과 대학이 교육·연구를 자주 논의할 수 있는 구조를 정착시키는 데 더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계약학과는 대학과 기업이 교육내용을 협의해 교과과정을 구성한다. 기업 실무진이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는 모습.
계약학과는 대학과 기업이 교육내용을 협의해 교과과정을 구성한다. 기업 실무진이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는 모습. /교육부 제공
◇입학해보니 적성 맞지 않아 자퇴 고민하는 경우도

계약학과를 운영하는 대학들의 공통적인 고충은 학생들의 중도탈락이다. 전국 계약학과의 중도탈락률은 2018년 8.77%로 나타났다. 대학과 전문대학 등 고등교육기관의 중도탈락률은 6.69%다. 채용조건형은 입학 시엔 100% 취업에 이끌렸지만, 막상 입학한 뒤엔 진로와 적성이 맞지 않는 경우도 생긴다. 일반학과로 입학하면 이중·복수전공 등으로 전공을 바꾸거나 넓힐 수 있지만, 계약학과는 불가능하다. 재교육형은 재직자가 일과 학습을 병행할 여유가 없는 탓이 크다. 이동형 중소기업계약학과사업 권역별협의체 회장은 "중소기업 특성상 전문대학 졸업자나 고졸 취업자가 많은데 입학하더라도 수업을 충실히 따라갈 만큼 시간을 내기 어려워 자퇴를 택한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어려움은 대학이 인력을 배출하는 시기와 기업이 인력을 요구하는 시기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4년제 대학 계약학과를 기준으로 보면 기업으로선 4년 뒤 배출될 인원을 정원으로 정한 것이지만, 학생이 휴학하거나 군입대를 해 졸업시기가 늦춰지면 정한 시기에 인력을 충원하는 게 힘들어진다. 계약학과를 만들어 투자하고도 인력을 채용하지 못해 다시 채용과정을 시작해야 하는 일이 발생하는 셈이다. 계약학과를 졸업하고도 해당 기업에 취업만 했다가 퇴사할 수도 있다. 한 대학교수는 "지난 2월 계약학과를 졸업한 학생 2명이 기업에 취업했지만 합의하에 바로 퇴사했다"며 "계약학과를 만들 당시엔 필요한 인력이었지만 4년이 흐른 지금엔 경영 악화로 관련 사업분야에서 철수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실제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4년제 대학 채용조건형 21개 학과 졸업생 260명 가운데 57명은 계약한 기업이 아닌 다른 산업체에 취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계약학과를 운영해본 경험이 있는 교수들은 유연한 학사제도를 도입하고 해당 분야의 기본기를 다지는 교육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창하 선문대 3D융합학과 교수는 “이중·복수 전공과 전과 등을 허용하고 다른 학과에서 계약학과로 옮길 수 있도록 유연한 학사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전정훈 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공학과장은 “해당 전공의 기본기를 충실히 다지면서 기업의 실무·특화 교육을 더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또 일부만 허용된 원격교육을 좀 더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해외는 선취업 후진학 위주… 계약학과는 드물어

그렇다면 해외는 어떨까. 학계의 연구에 따르면 해외엔 채용조건형 계약학과와 유사한 제도는 찾기 어렵다. 재교육형과 유사한 선취업 후진학 관련 제도가 더 발달해 있다. 미국은 속진 과정을 두고 있다. 5주 단기 과정을 제공하거나 4년 학사학위 과정을 3년으로 줄여 운영하는 경우다. 이 밖에도 ▲모듈 과정 ▲주말대학 과정 프로그램 ▲현장 기반 교육 프로그램 ▲선행학습 학점 부여 제도를 두고 있다. 커뮤니티 칼리지도 2~3년제 학위 과정을 운영하고 있어 유사한 제도다.

일본은 사회인 특별 입학자 선발 제도를 운용한다. 사회인으로서의 경험과 식견을 기준으로 입학자를 선발하는 제도다. 가사나 육아, 근무 등 사정으로 강의에 참석하지 못해 학점을 취득할 수 없을 땐 재수강할 수 있도록 1년 3학기제로 운영한다.

외국 제도의 특징은 취업을 연계하기보다 성인 학습자의 평생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특성에 맞는 수업 방식과 일·경험을 학점으로 인정해 참여율도 높이려는 시도가 눈에 띈다.

강기호 코리아텍 일학습병행대학장은 “계약학과 형태를 확산시키려면 사내대학 형태로 기업 내에 교육기관을 설립해 대학 교수를 참여시켜 기업이 요구하는 교육을 뒷받침하는 형태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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