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일 KBS 대담에서 "적폐 수사와 재판은 우리 정부가 아니라 앞의 정부가 시작한 것"이라며 "우리 정부는 기획하거나 관여하지 않았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국정 농단 특검이 2016년 11월 시작된 것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실제 적폐 청산 진행 과정을 보면 문 대통령 발언과 다른 부분이 많다.
현 정부는 출범 직후 국정 과제 1호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다. 문 대통령 스스로 방산 비리, 기무사 문건 사건, 강원랜드 채용 비리 수사 외압 의혹, 김학의 전 법무 차관 사건 등을 언급했다. 지난 정부를 겨냥한 상당수 적폐 청산 수사는 현 정부 출범 이후 시작됐다. 검찰은 2017년 8월 말부터 첫 적폐 수사인 '국정원 댓글 사건' 재수사에 착수했다. 이 과정에서 수사받던 변창훈 검사와 국정원 소속 정모 변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검찰은 군(軍) 사이버사령부의 정치 댓글 사건도 함께 수사했다. 이 때문에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구속됐다가 11일 만에 구속 적부심으로 풀려나기도 했다. 국정원·군 댓글 수사의 최종 타깃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의 연루 혐의가 뚜렷이 나오지 않자 검찰은 '다스' 사건으로 수사를 틀었다. 이 전 대통령에 대한 대대적 수사가 시작됐고, 이 전 대통령은 뇌물 수수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국군기무사령부가 세월호 참사 당시 유가족을 사찰한 혐의도 수사했다. 이 수사를 받던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은 지난해 12월 목숨을 끊었다. 군과 검찰이 지난해 7월부터 수사한 '기무사 계엄 문건' 사건도 적폐 청산의 일환이었다. 문 대통령은 해외 순방 중에 수사 지시를 내렸다. 이 수사는 105일 동안 진행됐지만 '불법 계엄령 시도'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장자연·김학의·버닝썬 사건에 대한 수사 지침도 문 대통령이 직접 내렸다.
문 대통령이 대담에서 "선(先) 적폐 청산, 후(後) 협치 발언을 한 적 없다"고 한 것도 논란을 빚고 있다. 문 대통령은 "사법 농단과 국정 농단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 협치에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는 소회를 말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난 3일 원로 간담회에서 문 대통령은 "이제 적폐 수사는 그만 끝내고 협치, 통합으로 나아가자고 하는데, 빨리 진상을 규명하고 청산이 이루어진 '다음' 그 성찰 위에서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 나가자는 데 대해서 공감이 있다면 얼마든 협치하고 타협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었다. 적폐 청산을 하고 나야 협치가 가능하다는 선후(先後)의 문제로 해석됐다. 그런데 언론이 잘못 해석해서 보도한 것처럼 얘기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번 대담에서 "인사 실패, 참사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검증 실패로 그만둔 차관급 이상 인사는 11명에 이른다. 이미선 헌법재판관을 비롯해 국회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된 장관급도 14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