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만원 자립수당, 우리에겐 공부·취업 돕는 동아줄"

입력 2019.05.11 03:01

보호시설 나온 청년들 홀로서기 지원하기 위해 5년간 지급
"생활비 걱정 덜었다" "학원도 등록" 한달만에 호응 이어져

보호종료아동 연도별 현황 그래프

인천에 사는 박진우(가명·24)씨는 지난 2월 다시 한 번 외톨이가 됐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집 나간 뒤 아버지까지 돈 벌러 나가 그는 14세 때부터 아동양육시설에서 자랐다. 대학 졸업과 함께 규정에 따라 퇴소한 뒤 월세 40만원짜리 고시원에 들어갔다. 당장 먹고 입는 비용은 시설에서 나올 때 받은 자립지원금을 헐어서 해결하고 있다. 그 돈이 떨어지면 어떻게 살지 막막한 처지다.

박씨처럼 시설에서 나와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젊은이들을 위해 보건복지부가 지난달부터 월 30만원씩 5년간 자립수당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2017년 5월 이후 아동양육시설, 공동생활가정 등에서 나와 자립 생활을 시작한 이들 5000명이 대상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아직 시범사업 단계라 올해 예산만 확보했다"면서 "내년 이후에도 사업을 계속해, 아이들이 시설을 나간 뒤 5년간 지원해주는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시설이나 위탁가정에서 나와 독립하는 이들이 2016년 2703명, 2017년 2593명, 지난해 2606명으로 매해 2600명 안팎이다. 이들이 시설을 떠날 때 각 지자체에서 자립지원금으로 300만~500만원씩 지급하고 있지만, 액수가 많지 않아 월세 보증금 내고 나면 빈손이 된다는 지적이 계속 나왔다. 한 번에 목돈을 내주다 보니 관리를 잘 못하는 경우도 간간이 있었다.

자립수당은 이와 별도로 주는 돈이다. 부모 도움 없이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이들이 아르바이트와 취업 준비를 병행하느라 취업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악순환을 막자는 취지다. 이상정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보호시설 아이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기반을 만들어준다는 의미가 있다"고 했다.

대구에 사는 이수진(가명·23)씨 통장에도 지난달 30만원이 입금됐다. 이씨는 "30만원이 누군가에겐 적다면 적은 돈이지만, 저에겐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할 수 있게 해준 동아줄"이라고 했다. 이씨는 태어나자마자 친부모와 떨어져 위탁가정에서 자랐다. 4년 내내 성적 장학금을 받으며 평균 학점 4.41로 대학을 졸업했다. 대학원도 장학생으로 일찌감치 합격했는데, 입학이 망설여졌다.

이씨는 "과연 대학원을 가도 될까, 바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하는 게 아닐까 무수히 고민했다"고 했다. 자립수당이 이 고민을 덜어줬다. 이씨는 "교통비가 5만~6만원, 학교 식당 음식이 평균 4000원 정도라 이 돈이면 교통비·식비 걱정 없이 공부에 매진할 수 있다"며 "대학원을 졸업한 뒤 노무사가 돼, 사회복지사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서울에 사는 하상우(가명·22)씨의 자립수당은 영어 공부를 가능하게 해줬다. 시설을 나오면서 받은 자립지원금으로 월세 보증금을 냈지만, 항상 생활비 걱정이 앞섰다. 자립수당 덕분에 생전 처음 영어 학원에 다닐 수 있게됐다. 하씨는 "영어 회화 실력을 늘려서 차근차근 취업 준비를 해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정부가 자립수당에 올 한 해 쓰는 예산은 134억원이다. 기초연금 예산(14조7000억원)의 0.09%, 아동수당 예산(2조 1627억원)의 0.6%다. 모든 사람에게 무차별적으로 혜택을 주는 제도에 비해, 비용을 덜 쓰고도 장기적인 효과는 더 클 수 있다. 도움이 절실한 사람을 찍어서 그 사람이 복지에 기대지 않을 능력을 길러주는 '타기팅 프로그램'이라서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보편복지도 중요하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정말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을 위한 '타기팅 프로그램'이 충분한 상황이 못 된다"면서 "이런 집단은 정치적 발언권이 강하지 않기 때문에 주목받지 못하는데, 정부가 대중적인 인기만 따지지 말고 의지를 가지고 이 같은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이삼식 한양대 정책학과 교수는 "보편복지도 의미 있지만, 청소년·아동에 대한 복지만큼은 대상의 시급성·취약성 등을 따져 선별적으로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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