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평중 칼럼] 한반도의 봄은 왔는가

조선일보
  •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입력 2019.05.10 03:07

    대통령 기고문 '화려한 空理空論'… 총체적 위기 한국 현실과 대조
    보통 사람의 몽상은 백일몽이지만 대통령의 몽상은 나라 흔들어
    평범한 사람 고통 키운다면 그 꿈은 버리는 게 마땅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문재인 정부의 지난 2년과 남은 3년을 두루 조망할 수 있는 의미심장한 글이 나왔다. 독일 유력지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FAZ) 문집에 게재될 문 대통령 기고문이 그것이다. '평범함의 위대함'이란 미려(美麗)한 제목의 글은 5월 말 출간 예정이지만 청와대 홈페이지에 전문(全文)이 실렸다. 문 대통령의 자화상과 소명 의식을 담은 이 글은 문 정부가 무리한 이상주의적 정책들을 강행하는 본질적 이유를 투명하게 보여준다.

    문 대통령의 기고문은 아름답지만 공허하다. 말의 성찬(盛饌)이 민생고와 국가 위기를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FAZ 기고문에서 문 대통령은 "한반도의 봄이 성큼 다가왔다"고 단언한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신(新)한반도 체제'는 동아시아철도공동체와 에너지공동체를 다자평화안보체제로 발전시키는 거대한 비전이다. 하지만 북한 비핵화가 불가능에 가깝다는 원초적 사실이 장밋빛 평화 담론의 호소력을 떨어트린다. 핵무기가 있어야 지속 가능한 김씨 유일 지배 체제의 자폐적·착취적 속성이 한반도 위기의 근원이다. 화려한 수사(修辭)와 주관적 소망 사고로 일관한 문 정부의 대북 정책이 겉도는 이유다.

    '혁신적 포용 국가'라는 말도 아름답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누구나 돈 걱정 없이 원하는 만큼 공부하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꿈을 위해 달려가고, 노후에는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고 있다"고 자부하는 건 당혹스럽다. 집권 3년 차에 들어서는 문재인 정부가 만든 우리 사회의 현실은 그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경제 전문가가 수정이나 폐기를 권고하는 소득 주도 성장에 대해서도 문 대통령은 '더 좋은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기 위한 노력'이라고 자화자찬한다. 자신의 경제정책이 일자리 참사와 경제 위기를 불러오고 있다는 사실적 증거가 넘쳐나도 주관적 확신에만 집착한다.

    아름다운 언어와 차가운 현실의 괴리는 문 대통령의 자연관과 지속 가능한 발전론에서 절정에 이른다. 동아시아 문명이 국가 운영의 최대 덕목으로 여긴 치산치수(治山治水)를 문재인 대통령은 '자연 존중의 정신'으로 해석한다. "물을 가두기보다 자연스럽게 흐르게 하여 홍수와 가뭄의 피해를 줄이고자" 하는 게 치산치수라는 것이다. 물을 가두는 4대강 보를 문 대통령이 해체하려 하는 근본적 이유가 드러난다. 국민 다수가 반대하는 탈원전 정책을 밀어붙이고 우리 현실에 맞지 않는 태양광 같은 재생에너지 확대를 강행해 국가 에너지 대계를 흔드는 밑바탕에도 문 대통령의 목가적 자연관이 깔려 있다.

    문 대통령의 자연 사랑에서는 낭만적 감성이 현실적 정합성과 정책적 일관성을 압도한다. 특유의 감성 언어로 꾸며진 문 대통령의 세계관과 역사관은 엄혹한 현실과 동떨어져 있기 일쑤이다. 그는 대통령 공식 담화에서 사실과 어긋난 정보를 당당하게 얘기하기도 한다. 스스로의 양심에 거리낄 게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철학자 헤겔의 통찰처럼 양심과 악(惡)은 주관적 자기 확신으로 충만하다는 점에서 공통의 뿌리를 갖는다. 세상엔 양심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악이 너무 많다. 양심의 타당성이 공론 영역에서 토론되고 검증되어야 하는 까닭이다. 행위의 결과보다 동기의 순수성을 더 중시하는 정치인은 자격 미달이다.

    문 대통령의 화려한 공리공론(空理空論)과 총체적 위기인 한국의 현실은 극단적으로 대조된다. 소득 주도 성장과 탈원전은 문 대통령 기고문의 화두인 "평범한 사람들의 세계"를 위협할 지경에 이르렀다. 남북을 "생명 공동체"로 만든다며 남북 관계의 엄혹한 진실인 김정은의 핵 독점을 건너뛰는 굴종적 평화 정책은 오히려 전쟁 가능성을 높인다. 장대한 꿈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고 문 대통령은 장담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출발하지 않고 현실로 되돌아오지 않는 꿈은 몽상에 불과하다.

    보통 사람의 몽상은 백일몽에 그치지만 국가 최고 통치자의 몽상은 나라를 뒤흔든다. 정의감과 진리에 대한 확신이 몽상과 결합해 정부 정책으로 집행될 때 최악의 결과가 초래된다. 사명감으로 가득한 제왕적 대통령의 미몽(迷夢)은 국가 전체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간다. 문 대통령의 꿈이 평범한 사람들의 고통을 키운다면 그 꿈은 버리는 게 마땅하다. 한반도의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한국의 내정(內政)과 외교, 민생도 한겨울이다. 제비 한 마리가 봄을 만들지는 않는다. 문재인 정부는 구름에서 내려와 대지 위에 두 발로 서야 한다. 현실 정치는 구체적 성과로써 말할 뿐이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