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간 軍이 반대했는데… 연평도 등대 켠다

조선일보
입력 2019.05.08 01:45

정부 "군사합의로 평화수역 조성"
노무현 정부서 재점등 요구땐
軍 "해안포 타격 원점 제공" 거부
北, 1시간 내 기습 공격 가능한
시속100㎞ 공기부양정 실전 배치

연평도에 설치된 등대 전경.
연평도에 설치된 등대 전경. 북한 간첩의 해상 침투에 이용될 수 있다는 이유로 1974년 소등된 이 등대는 오는 17일 45년 만에 다시 점등된다. /옹진군청

정부가 오는 17일 연평도에 있는 등대를 45년 만에 다시 점등하기로 했다. 9·19 남북 군사합의에 따라 평화 수역이 조성됐다는 이유였다. 연평도 등대는 북한 간첩의 해상 침투에 이용될 수 있다는 이유로 1974년 소등됐다. 노무현 정부 때 재점등 요구가 있었지만 군은 '북한 해안포에 타격 원점을 제공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 거부했다. 남북 간 평화 수역 조성 논의가 시작도 되지 않았고, 북이 도발 수위를 높이고 있는 상황에서 조급하게 등대 점등 조치가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해양수산부와 합동참모본부가 7일 자유한국당 이종명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등대 재점등 이유로 향후 남북 교류가 이뤄져 인천항과 북한 해주·남포항을 잇는 항로가 개설되면 연평도 등대가 항로 길목에 있어 오가는 선박의 안전 운항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것을 내세웠다. 정부는 지난달 1일 일출~일몰이던 연평도 등의 근해 출어 시각을 일출·일몰 전후로 30분씩 총 1시간을 늘려줬다. 이 때문에 야간 조업을 할 어선의 안전 문제로 등대가 필요하다는 이유도 댔다. 이에 대해 군은 "9·19 남북 군사합의가 있었다" "북한이 해안포를 닫는 등 수역에 평화 분위기가 조성됐다"며 재점등에 동의했다. 지난 45년 동안 북한 공격이 우려된다며 반대해 왔던 입장을 갑자기 바꾼 것이다.

이 의원은 "서해 5도 지역 북한의 전력은 줄곧 강화됐다"며 "실질적 상황 변화가 없는데 남북 군사합의만을 이유로 재점등을 받아줬다"고 했다. 북한은 황해도 지역에 서해 5도 지역을 겨냥해 1000여 문의 해안포를 설치했고, 최근에는 스텔스형 VSV(파도 관통형 고속정)도 실전 배치했다. 1시간 내에 이 지역을 기습할 수 있는 최대 시속 100㎞의 공기부양정도 전력화돼 있다. 어민들의 야간 조업을 돕는다는 명분도 약하다는 지적이다. 군은 "지금 상황에서 더 이상 어민들의 조업 시간을 늘려줄 계획은 없다"고 했다.

합참은 "군사작전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조건부로 재점등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등대 불빛이 연평도 남쪽 해상만을 향하게 하고, 원격으로 연평도에 주둔한 해병대가 등대를 소등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등대 불빛이 남쪽을 향한다고 해도 바다로 빛이 퍼지기 때문에 북쪽에서도 식별이 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선 부대에서는 "이렇게 쉽게 조건부 동의를 해줄 것이었으면 지난 45년 동안 왜 안 해줬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군 관계자는 "야간의 밝은 빛은 해안포와 간첩, 상륙작전, 그리고 공군 전력에 공격 기준점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정부는 지난 2005년 남북 해운합의에 따라 서해 북방 해역 선박 안전을 위해 연평도 등대 운영 재개를 추진했지만 군의 강력한 반대로 무산됐다.

정부는 이달 17일 저녁 군 수뇌부까지 대거 참석하는 점등식 행사를 계획했다. 하지만 대부분 인사가 불참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군 안팎에서는 "군사적으로 아무것도 상황이 변하지 않은 상태에서 참석하는 게 걸렸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하지만 군 관계자는 "일정이 맞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했다.

정부는 연평도뿐 아니라 45년 동안 소등됐던 백령도 등대 역시 40억원을 들여 '평화의 등대'로 다시 건설하는 것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이 의원은 "경협을 명분으로 북한군과 간첩에게 항로의 불을 비춰주는 셈"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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