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 때 '유튜브 명상'하는 2030세대
여유 없는 청춘들의 공짜 '멘탈관리법'
세계는 '이너 피스(마음의 평화)' 열풍
전문가들 "자기계발과 현실도피 사이"
야근을 마치고 피곤한 몸으로 집에 돌아온 직장인 이수연(31)씨. 예전 같았으면 침대에 누워 TV를 켰겠지만 요즘은 요가 매트로 직행한다. 전등을 끄고 스마트폰으로 유튜브에 접속해 ‘명상’ 영상을 틀자 잔잔한 음악 소리가 방 안을 채운다. "자, 심호흡 하세요" 낮게 울려 퍼지는 명상 선생님의 목소리를 들으며 이씨는 잠시 ‘속세 탈출’의 시간을 가졌다.
스마트폰 등을 통해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이른바 '이너 피스(Inner peace·내면의 평화) 컨텐츠'가 인기다. 주머니는 가볍지만, 디지털 친화성이 높은 2030 세대 사이에서는 '마인 튜브'(Mind+Youtube·명상 유튜브)라고 불린다. 돈 들이지 않고 혼자 간편하게 할 수 있는 그들만의 '멘탈 관리법'이다. "아픈 마음이 나았다"는 경험담도 잇따른다.
◇2030 달래는 '명상 유튜브'..."돈도 시간도 없지만 마음 여유 준다"
'유튜브 명상'은 경쟁에 몰리고 시간에 쫒기는 2030 세대에 특히 인기다. 불면증 치료, 생활습관 교정, 자존감 회복 등 활용 목적도 다양하다. 특히 장기 취준생(취업준비생)이나 공시생(공무원시험준비생) 등 구직 기간이 길어져 돈도, 시간적 여유도 없는 이들에게는 간편하고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효율적이다.
공무원 시험을 4년 동안 준비한 백아람(27)씨는 정신과나 심리상담소에 갈 여유가 없어 '유튜브 명상'을 찾았다고 털어놨다. 백씨는 "(공부하며 쌓이는) 스트레스는 엄청난데 그마저도 해소하려면 전부 돈이 들고 공부에도 방해가 되는데 명상이 스트레스를 푸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라고 했다. 취업준비생 최선기(28)씨도 "취준 기간이 길어지면서 밤낮이 바뀌고, 식습관도 불규칙해져 우울감과 신경질이 늘었다"면서 "이런 악순환을 끊기 위해 자기 전에 명상을 시작했는데, 비용이 제로(0)니까 나 같은 사람에겐 아주 좋은 방법 같다"고 말했다.
직장인들 사이에선 이런 명상을 ‘정신적 다이어트’라고 부른다. 직장인 임소은(22)씨는 "회사 업무를 하면서 회사와 집이 세상의 전부가 되자 자존감이 낮아졌다"며 "우연히 유튜브에서 명상 영상을 보고서 그동안 내가 스스로를 믿는 게 아니라 외부에서 인정 받으려고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큰 위로가 됐다"고 했다. 임씨는 이어 "(명상은) 스스로와 친구가 될 수 있는 게 가장 큰 장점인 것 같다"고 했다.
자영업을 하는 손지선(29)씨는 "이십대 중반 서울에 올라와 독립해서 사는 하루하루가 힘겹고 버거울 때, 외롭고 조급한 마음에 시달리면서 명상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명상을 통해 더 단단한 내면과 자아를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직장인 노종현(37)씨는 "삶에 휩쓸리는 느낌이었는데 하루 명상 10분으로 삶의 주도권을 되찾았다"고 했다.
◇'명상 유튜버'에 '명상 앱'도 인기몰이…"명상의 대중화"
'유튜브 명상'이 인기를 끌면서 전업 '명상 유튜버'도 등장했다. 서울 강서구에서 귓전명상센터를 운영하는 채환(45)씨는 2017년부터 유튜브 명상 수업을 시작했고 이제는 '명상 유튜버'가 직업이 됐다. 채환씨는 상황별 명상 영상을 만들어 올리는 한편, 일주일에 2번은 구독자들과 소통하는 '명상 스트리밍'도 진행 중이다. 채씨는 "명상은 돈 들이지 않고도 마음을 다스리고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라며 "유튜브를 통해 수많은 사람에게 마음의 평안을 전파한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명상 컨텐츠를 제공하는 유료 앱도 인기를 끌고 있다. 명상앱 ‘마보(마음보기)’는 가입자만 10만명이 넘는다. 그중 약 40% 정도가 20~30대 여성이다. 나머지 약 30%는 30~40대 남성이고 10대 사용자도 약 10%에 달한다. 마보 관계자는 "스마트폰에 친숙한 젊은 세대가 앱을 활용한 명상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2004년부터 대학생 명상 캠프를 실시하고 있는 마음수련 명상원 관계자는 "대학생 캠프를 15년정도 했는데 예전에는 극소수만 명상을 찾았다면 지금은 명상을 자기개발의 수단으로 여기는 일반 참가자가 대부분이어서 명상의 대중화를 실감한다"며 "스티브 잡스 등으로 명상을 접한 세대라서 그런지 명상에 대한 인식이 아예 다르다"고 했다.
◇美 사내(社內) 명상, 中 불계(佛系) 열풍…'이너피스'는 세계적 트렌드
명상과 같은 이너피스 컨텐츠가 인기를 끄는 것은 '점차 복잡해지는 세상에서 내면의 중심을 찾으려는 작용'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양희연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최근 바쁘고 힘든 삶에 치인 젊은 직장인들이 내면의 안정을 위해 명상에 빠져드는 경향을 보인다"며 "명상은 외부의 인정과 사랑을 갈구하는 대신 자기 마음에 중심을 두는 것"이라고 했다.
‘명상’ 문화를 일찌감치 받아들인 미국 등 서구 국가에서는 구글·나이키와 같은 일부 기업들이 아예 직원들에 사내 명상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유정은 한국내면검색연구소 대표는 "명상 문화가 가장 대중화되고 빨리 도입된 미국 실리콘밸리가 한국보다 5년~10년정도 앞서나가고 있다. 한국도 점차 (해외 기업처럼) 내면과 정신건강을 가꿔 외적 성과로 이끄는 선순환의 기류가 보이고 있다. (명상 유행은) 이제 시작이라고 본다"고 했다.
젊은 세대가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는 경향은 한국에만 있는 게 아니다. 지난해 중국에서는 ‘불계 청년(佛系青年)'이란 신조어가 유행했다. 불교에 귀의한 스님처럼 욕심을 버리고 경쟁에서 벗어나 부처와 같은 삶을 지향하는 젊은 세대를 일컫는 말이다. 이에 향락적인 소비문화에서 벗어난 채식과 명상 등 정적인 라이프스타일이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과거 유행했던 웰빙이나 힐링이 자기 개발적 성향을 띠던 것과는 달리 요즘의 명상 열풍에는 현실 도피적인 성향이 반영돼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사토리(さとり·깨달음) 세대나 중국의 ‘불계 청년’처럼 욕구의 좌절을 깊게 경험한 세대가 ‘무욕(無慾)'을 통해 현실로부터 도망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 교수는 "명상 같은 ‘이너 피스’가 붐을 일으키는 이유는 사회전반적으로 성취동기가 좌절됐기 때문"이라며 "요즘 2030 청년들은 스스로 뭔가 이룰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그에 대한 차선책이 바로 명상이고, 해외여행을 가거나 소비에 몰두하거나 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