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왜 남을 만지면 안 되는가

입력 2019.05.06 03:17

'자기 손발은 자기 공간에' 이 교육 대신 폭력·체벌 겪은 한국 중장년 이상 세대
민족주의적이지만 애국적이지 않아… 젊은 세대는 다를 것

마이클 브린 前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한국, 한국인’ 저자
마이클 브린 前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한국, 한국인’ 저자

지난주 국회에서 벌어지는 드라마틱한 장면을 보며 몇 년 전 서울의 한 외국인학교에서 본 풍경을 떠올렸다. 가장 선명하게 기억나는 게 선생님이 2학년 교실 벽에 아이들이 그린 그림과 포스터와 함께 써 붙여 놓은 글귀였다. '자기 손·발은 자기 공간에(Keep your hands and feet to yourself).'

이 글귀는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초등학생들, 특히 남자애들은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을 제어하고 남의 몸을 존중하는 걸 익힐 필요가 있다. 아이들이 이걸 배우지 못하면 타인을 거칠게 대해도 도덕적으로 괜찮다는 생각이 어리고 순진한 마음에 스며들기 쉽다.

우리가 피차 잘 알고 있듯 이 중요한 교훈은 한국 사회에 아직 새롭다. 서른을 넘긴 한국인들은 이 교훈을 완전히 익히기엔 너무 늦었는지도 모른다.

나보다 독자들이 더 잘 아실 거라 생각하지만 그동안 내가 한국에 살며 가족과 친구들에게서 들은 얘기를 종합하면 불과 얼마 전까지도 한국 사회는 가정 폭력, 학교 폭력, 교사의 체벌, 경찰의 구타를 일상 다반사로 받아들였다. 군대는 물론 때로는 일터에서 주먹을 휘두르는 것까지도 당연한 줄 알았다.

젊은 세대는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부모 세대와 조부모 세대는 이런 부적절한 학대 때문에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의 스트레스를 견뎌야 했다.

군대에선 체계적으로 신병을 때렸다. 맞는 것도 훈련의 일부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 시절 한국 어머니들이 왜 징병 거부 운동을 벌이거나 하다못해 국방부로 몰려가 장군들을 때려주지 않았는지 나는 솔직히 의아할 때가 있다.

지난 세월 군대·경찰·정보 당국 같은 정부 기관이 국민에게 휘두른 폭력이야말로 중장년 이상 한국인들이 왜 민족주의적이지만 애국적이진 않은지 설명해준다. 그들은 왜 한국이 이기길 바라면서도 한국을 사랑하는 것 같지는 않은지, 왜 말만 통하면 외국으로 이민 가고 싶다고들 하는지 말이다. 많은 사람이 나라가 자신을 사랑하지도, 존중하지도 않는다는 경험을 했다.

그래서 한국 사회에서 자란 중년 정치인들은 망치로 국회 문을 부수고 반대 당과 몸싸움을 벌이는 일이 나쁜 짓이라고 여기지 않을 수 있다. 그들은 되레 망치를 휘두르고 반대당과 엎치락뒤치락하는 것이 유권자들 눈에 좋게 보일 거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자신의 격렬한 행동이 자신의 열정적인 진정성을 보여줄 테고, 국민도 그걸 알아줄 거라고 말이다.

정치는 정책이 아니라 감정과 관계가 깊다는 단순한 정치 역학이 여기서 나온다. 민주주의와 법치를 담당하는 기관들이 민주 사회의 기둥이라면, 그 핵심은 유권자 개개인의 감정에 있다. 유권자가 하는 생각, 유권자가 받은 인상, 유권자가 느끼는 수요와 호오(好惡)의 감정이 합쳐져 표를 결정한다. 표야말로 민주주의의 신비롭고 성스러운 중심이다. 이 성소에 들어가서 표를 얻는 게 정치인의 목표다. 2012년 대선 때 이뤄진 온라인 여론 조작과 지난해 불거진 드루킹 사건이 그토록 심각한 범죄인 이유가 여기 있다. 민주 사회에서 그런 짓은 반역이다.

정치인의 열정은 유권자의 감정을 건드린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의 투사들이 반대 당 악당들을 막아서느라 문짝에 짓눌린 장면을 보고 유권자들은 자기 지역구 의원이 인문학 교수처럼 한쪽에 비켜 서 있는 대신 자유를 위해 싸우는 전열의 선두에 섰으면 하고 바랄 수조차 있다.

하지만 나는 유럽인으로서 감정은 반드시 이성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믿으며 자랐다. 나는 욱하는 정치인, 물건을 던지고 고함지르는 정치인을 신뢰할 수 없다. 내 눈에 그런 행동은 품위를 던지는 행동일 뿐이다. 내가 가진 유럽인의 뇌는 그런 사람들은 리더가 돼선 안 된다고 말한다. 내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분들의 모든 친구들은 이성이 정치를 다스리지 못해서 일어난 두 차례 세계대전에서 싸운 분들이었다.

재미있는 건 한국의 젊은이들에겐 이 두 가지 태도가 섞여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고등 교육을 받은 부모 밑에서 자란 세대. 더 이상 교사가 학생을 때리지 않는 학교에서 배운 세대, 전보다 나아진 군대와 일터를 겪은 세대다. 그들의 조국이 이제는 개인을 존중하는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기에 가능했다. 한국 젊은 세대는 왜 남들이 망치를 휘두르고 싶어하는지 이해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건 존중의 행동이 아니란 것도 안다. 그들은 이성적인 말과 상식으로 남들을 설득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정치인이 돼선 안 된다고 믿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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