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저는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살아요" 열혈인간, 김남길

입력 2019.05.04 07:41 | 수정 2019.05.07 07:27

"드라마 ‘열혈사제'는 관계의 드라마, 팀웍의 산물"
"성공? 서로에게 쪽팔리지 않게 임무 완성했을 뿐"
"감정이 정답이라는 사실, 전도연에게 배워"
"내 미래, 내가 어떤 길로 가게 될 지는 궁금하지 않아"

SBS 드라마 ‘열혈사제'의 매력적인 행동파 신부 김해일을 맡아 열연한 김남길(39세). 그는 국정원 특수요원 출신으로 알코올 의존증에 독설과 폭력을 서슴지 않는 가톨릭 사제 역을 맡아 코믹 연기와 액션 연기를 자유자재로 오갔다.
SBS 드라마 ‘열혈사제'의 매력적인 행동파 신부 김해일을 맡아 열연한 김남길(39세). 그는 국정원 특수요원 출신으로 알코올 의존증에 독설과 폭력을 서슴지 않는 가톨릭 사제 역을 맡아 코믹 연기와 액션 연기를 자유자재로 오갔다.
"하느님, 저는 자는 사람은 깨울 수 있어도 자는 척하는 사람은 깨울 수 없습니다."
"이마에 성수로 십자가 찍어 바른다고 천국 가는 거 아니에요. 마음 편히 죄지으려고 성당 나오는 신도들은 성수로 반신욕 해도 천국 못 갑니다."
-드라마 ‘열혈사제' 중에서

김남길에게 호기심을 가진 건 2012년 즈음, 한 사회활동가를 통해서였다. 인도네시아 지진 피해 현장에 함께 다녀온 후, 자신의 영향력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던 그가 ‘길 스토리'라는 비영리 공익단체를 론칭한다는 이야기였다. 당시 그 사회활동가의 요청으로 나는 ‘길 스토리' 홈페이지에 재능기부로 몇 편의 힐링 에세이를 실었다. 그렇게 사소한 인연으로 몇 년간 김남길이라는 사람에 대해 약간의 관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막 인기를 얻은 젊은 배우가 자신의 매력 자본을 선한 영향력으로 환전하려는 이 놀라운 액션을 나는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무슨 무슨 단체의 홍보 대사가 아닌, 그 자신 문화예술 NGO의 수장이 되어 많은 사람과 길 위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겠다니! ‘지금까지 이런 배우는 없었다. 이것은 선의인가 치기인가!' 의심의 와중에도 그는 작은 시골 마을의 버스에 안내 방송을 내보내는 캠페인이나 필리핀 태풍 피해 모금 운동 같은 일을 소리 없이 벌여나갔다.

대체 넘치는 끼를 주체하지 못하는 분방한 ‘다혈질’ 배우와 사회를 변화시키겠다는 선한 의지를 지닌 신중한 사회활동가는 어떻게 김남길 안에 공존하게 되었을까? 그러던 차에 SBS 드라마 ‘열혈사제'에 대한 소문이 들려왔다. 처음엔 가톨릭의 ‘하느님'을 개신교의 ‘하나님'으로 발음했다거나 ‘폭력적인 사제'가 불편하다는 등의 비판이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대중들은 부패한 공권력에 맞서는 정의로운 신부의 활극에 점점 열광하기 시작했다.

드라마 ‘열혈사제'는 성과 속, 현실과 드라마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거침없이 풍자와 패러디를 쏟아냈다. 마약과 비리의 온상인 클럽 ‘버닝썬'은 ‘라이징문'으로 천연덕스럽게 개명한 채, ‘베트맨'의 고담시의 한국 버전인 가상의 도시 구담시에 버젓이 문을 열었다. 몸은 아직 특수부대원인데, 마음은 사제인 김남길은 십자가 성호를 긋던 손으로 어퍼컷을 날리며 물 만난 히어로처럼 부패 도시를 누빈다.

정의에 민감한 사제는 자비와 무자비 사이를 선명하게 가르며 악당들의 갈비뼈를 죄책감없이 작살냈다. 그럴 때 김남길의 연기엔 ‘가오'와 ‘병맛'이 적절한 하모니를 이뤘다. 그것은 그의 표현대로 영화적이라기보다는 매우 만화적이어서, ‘페이소스'로 강한 스크린보다는 작은 사이즈의 가벼운 브라운관에서 훨씬 빛을 발했다.

김남길을 만났다. 검은 사제복을 벗고 눈부신 흰 셔츠에 블랙진, 슬리퍼를 신은 편안한 모습이었다. 얼음물 한 잔을 들이킨 후 잠금 밸브가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재담이 쏟아졌다. 그 ‘감기는 말 맛'이 달고 시원했다. 대화 중에 가장 많이 내뱉은 단어는 ‘동료'와 ‘성실'이었다.

-정의감에 불타는 편인가요? 평소엔 언제 분노합니까?

"아무 때나 쓸데없이 작은 일에 욱하는 편입니다(웃음). 엘리베이터 앞에서 무작정 밀고 들어올 때, 주차장에 아무렇게나 주차한 차를 볼 때, 깜빡이를 켜지 않고 돌진하는 차를 만날 때… 일상적인 배려심이 없는 무례한 타인들에게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열혈사제'는 장르가 김남길이라고 하더군요.

"당치도 않는 말씀입니다. 어떤 배우가 장르라는 건 불가능합니다. 굵직한 사건과 센 인물을 중심으로 현실과 만화적 상상력을 뒤섞은 앙상블이지요."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특수부대 출신 사제 김해일을 연기한 김남길. 공격적인 파이터 자세가 인상적이다.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특수부대 출신 사제 김해일을 연기한 김남길. 공격적인 파이터 자세가 인상적이다.
-드라마 ‘스카이캐슬'은 우리 사회 교육 피라미드를 풍자했고, ‘눈이 부시게'는 나이 듦에 대한 시선을 교정해서 감동을 끌어냈습니다. 사람들은 ‘열혈사제'의 어떤 부분에 그렇게 열광했을까요?

"이 드라마는 타이틀롤 위주의 작품이 아닙니다. 조연이 주연을 위해 희생하거나 도구로 쓰이지 않고, 각자의 역할과 개성을 유지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대하는가의 관계성이 ‘열혈사제'의 핵심이죠. 그런 조화 속에 악을 단죄하고 동시에 사회 적폐 세력이 회심하는 스토리가 가려운 부분을 속 시원하게 긁어준 거죠."

-특별히 다혈질 신부의 분노와 유머가 묘한 카타르시스를 주더군요.

"제겐 아버지 같은 이영준(정동환 분) 신부의 죽음이 드라마의 큰 사건이었어요. 하지만 그 무거움을 털어내고 저는 만화 캐릭터처럼 한없이 가벼운 멘트를 날렸습니다. 생각해보면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 해도 삶 자체가 트라우마로만 채워질 수는 없어요. 슬퍼하는 시간과 웃으며 살아가는 시간이 함께 어우러진다고 생각했어요."

-그나저나 사제복 핏이 멋지더군요. 대단히 스타일리시한 전투복이 아닌가 합니다.

"처음엔 사제라는 배역이 좀 식상했어요. 하지만 특수부대 출신의 사제라면 그 신선도가 다르지요. 제가 활동 공간은 구담시라는 가상의 도시였어요. 영화 ‘베트맨'의 고담시의 패러디인데, 그런 면에서 제가 맡은 김해일 신부는 히어로 아닌 히어로죠. 베트맨 가면을 쓸 수도없고(웃음). 대신 검은 망토처럼 사제복 위에 롱코트를 휘날리고 다녔습니다."

-영화 ‘강철비'에서 보여준 정우성의 액션 만큼 높은 완성도에 강렬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하는 액션 영화를 상상해 봤어요.

"정우성 씨와는 피지컬 면에서 제가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웃음). 영화 ‘무뢰한'에서 박성웅 씨를 상대할 땐 제 몸이 다 으스러질 것 같았죠(웃음). 다만 저는 촬영장에 와서 열심히 스트레칭을 하고 다리를 찢었어요. 투박하게 치고 받기 보다 무용하듯 힘을 빼고 스타일리시한 몸놀림을 만들었지요. 사실 모든 건 팀의 결과물입니다. 작품마다 함께 했던 두 명의 액션 감독이 동작을 정교하게 설계했고, 카메라가 아래에서 위로 발차기를 잡아줬습니다. 알고 보면 제가 하는 수많은 헛발질에 액션 팀이 달려와 격렬하게 맞아줬던 거지요."

-액션과 코믹이 적절한 시너지를 이룬다는 점에서 영화 ‘극한직업’이 생각나더군요.

"(뾰로통하게)저는 그 영화를 안 봤습니다. 극장에서 제 영화 ‘기묘한 가족'과 맞붙었잖아요. 하하. 농담입니다. 이하늬 씨가 ‘극한직업'을 끝내고 와서 그러더군요. "똑바로 인사 안 해? 이 탤런트들아!(웃음)" 저는 우리의 ‘천만 여배우'를 융숭하게 대접했지요(웃음)."

배우이자 문화예술 NGO 길 스토리의 대표이기도 한 김남길의 카리스마 넘치는 표정.
배우이자 문화예술 NGO 길 스토리의 대표이기도 한 김남길의 카리스마 넘치는 표정.
-올해 서른아홉이지요? 남길 씨 얼굴은 철이 덜 든 어른 같기도 하고, 약간의 퇴폐미도 느껴지는군요.

"철부지 같은 느낌은 인정해요. 어릴 적엔 양조위와 장첸이 롤모델이었고 그들 같은 이미지를 추구했어요. 한편으로는 코믹 연기도 병행했지만, 드라마 ‘나쁜 남자'에서 이미지도 강렬했던 모양입니다. 서른 중반부터는 주성치와 B급 코미디를 표방하고 있어요."

-실제로 만화방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지요?

"네. 저는 연기를 만화로 배웠어요. 고전인 ‘슬램덩크'를 보세요. 그 표정과 목소리와 정서는 정말 빼어납니다. 애니메이션은 컷과 컷의 분할로 벚꽃의 풍경뿐 아니라 냄새까지 묘사해요. 저는 친한 영화감독과 드라마 PD에게 만화를 보고 장면을 구성해 보라고 해요. 특히나 일본 만화는 미래지향적인 메시지가 있으면서 음악과 미감도 정말 탁월합니다."

-퇴폐적인 느낌에 대해선 어떤가요?

"저더러 아침에 일어나면 위스키 마실 것 같은 얼굴이라더군요. 천만에요. 저는 아침에 일어나면 우유를 마십니다(웃음)."

-연극하다 2003년 MBC 31기 공채로 입사했습니다. 2009년 드라마 ‘선덕여왕'의 비담으로 뜰 때까지 6년의 시간은 어떻게 보냈습니까?

"온갖 단역을 전전했습니다. ‘베스트극장'같은 단막극이나 다큐 드라마 ‘서프라이즈'에 차출되곤 했어요. 영화 현장에 이름 없는 많은 작은 배역도 연기했어요. 알찬 시간이었어요. ‘선덕여왕'으로 얼굴이 알려지면서 비중있는 배역들이 들어왔어요. 그후 10년 간 동료들과 책임감을 갖고 많은 작품에 출연했어요. 초기엔 한 작품 해서 터뜨려야지, 하는 조바심이 있었지만 지금은 한 작품 한 작품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열혈사제'도 그 여러 작품 중 하나일 뿐이지요."

-특별히 마음을 다잡게 된 계기가 있나요?

"먹고살만하니 군대 오라고 영장이 나왔어요(웃음). 2009년 ‘선덕여왕'으로 뜨고 2010년 ‘나쁜 남자'라는 드라마를 16부까지 찍다 급작스레 군대에 가게 됐어요. 영광을 누릴 새도 없이(웃음).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잊혀지면서, 서서히 내려오는 법을 알게 된 거죠. 주위를 돌아보고 작은 데 일희일비하지 않는, 그런 차분함이 생기더군요."

-동료 배우들은 어떻습니까?

"‘열혈사제’에 나온 배우들은 지금 다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어요. 그런데 그중 누구도 들떠서 흥분하는 친구들이 없지요. 제가 어릴 땐 갑자기 인지도가 올라가면 어깨에 힘 들어가는 분위기였는데요(웃음). 드라마가 주목받으면 본인을 어필하려는 욕구가 생기는데, 약속이나 한 듯 서로에게 양보하고 비켜주고 몰아줘요. 그게 자기가 사는 법이라는 걸 아는 거죠. 신기해요."

캐릭터라는 가면을 쓴다고 해도, 결국 연기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 감정과 인격을 나누는 일. 촬영 현장은 어떤 노동 현장보다 유독 ‘사람을 탄다'. 정경유착으로 부패한 구담시의 공무원과 조폭들이 결국 ‘김 신부님'의 정의감에 교화되듯, 쉴새 없이 웃기면서 남의 판을 깔아주는 김남길의 밝고 겸손한 에너지에 동료 배우들은 자연스레 동화되었다.

전도연은 그에게 ‘배우는 어떻게 상대와 호흡해야 하는 지'를 가르쳐주었다. 사진은 영화 ‘무뢰한'의 스틸컷.
전도연은 그에게 ‘배우는 어떻게 상대와 호흡해야 하는 지'를 가르쳐주었다. 사진은 영화 ‘무뢰한'의 스틸컷.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연기의 결이 달라지지요. 저는 김남길을 발견한 영화로 2014년 ‘무뢰한’을 꼽습니다. 상대 역인 전도연의 영향을 많이 받았나요?

"물론이죠. 연기를 그만둬야 하나 고민하던 시절이었어요. 아등바등 고민하던 모습을 귀신같이 알아채고 보듬어주더군요. ‘니가 돋보여야 내가 돋보이고, 내가 돋보여야 니가 돋보인다'는 말이 기억이 나요. 전도연 씨는 제 눈을 궁금해했어요. 당시에 살짝 다래끼가 난 채 게슴츠레한 상태였는데, ‘바로 그거야’ 하며 좋아하더군요. 왜 이제까지 눈에 힘을 줬느냐고요(웃음).

얼굴로 하는 연기는 이제 그만 하라고. (가슴을 치면서)여기서 나오는 연기를 해야 좋지 않겠냐고. 자신도 이창동 감독 앞에서 막막했을 때, 억지 연기는 거짓 연기였다는 걸 깨달았다고요. 전도연 씨와 연기하면서 결국 감정이 정답이라는 걸 배웠어요."

-아직은 눈의 감정보다 목소리에 실린 감정이 더 좋더군요.

"하하. 요즘은 목소리가 좋다는 말도 경계하고 있습니다. 어릴 땐 좀 눌러서 소리를 냈는데, 연기할 때 목소리가 달라진다는 말을 들었어요. 진짜 대화하는 것처럼 힘을 빼라는 거죠. 알고 보면 저는 선배들의 귀한 조언 덕에 성장하고 있어요. 전도연, 설경구, 김혜수… 이런 분들이 제가 길에서 어긋날 때마다 톡톡 쳐서 바로 잡아준다니까요. 저도 후배들한테 돌려줘야 한다고 느껴요."

-성실성에 대해선 어떤가요?

"연극을 할 때 철판요리집에서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일이 워낙 힘들어서 다들 3개월만 하고 내뺐는데, 저는 6개월을 버텼어요. 이것도 못하면 다른 것도 못할 것 같아서. 그랬더니 사장님이 연극 그만하고 같이 돈 벌자고, 주방장으로 승격을 시켜줬어요(웃음). 그 분을 드라마 ‘명불허전' 촬영할 때 거리에서 만났어요. 십 몇년 만에 만나서도 ‘또 같이 식당을 하자'시며, 하하하."

어린 시절부터 육상과 축구로 단련된 김남일의 날렵한 전신. 몸은 특수부대요원인데, 마음은 사제인 김남길은 물 만난 히어로처럼 부패 도시를 누빈다.
어린 시절부터 육상과 축구로 단련된 김남일의 날렵한 전신. 몸은 특수부대요원인데, 마음은 사제인 김남길은 물 만난 히어로처럼 부패 도시를 누빈다.
-용인에서 서울까지 지하철로 오간다는 게 사실인가요?

"네. 롱코트만 안 입으면 아무도 저를 못알아 보시더군요. 예전엔 버스 타고 전철 타면 그 안에서 남녀가 서로 정분이 나기도 했는데...이젠 아무도 서로에게 관심이 없어요. TV 속 연예인만 쳐다보는 것 같아 안타깝지요."

-문화예술 NGO 길 스토리의 수장입니다. 프로젝트는 여전히 진행 중인가요?

"(신이 나서)그럼요. 지금도 지방의 버스 안내방송(할아버지 할머니의 목소리로 녹음된) 캠페인을 진행 중입니다. 100명의 프로보노와 25명의 리더가 있어요. 저희 캐치프레이즈가 ‘작지만 위대한 움직임'이에요. 큰일은 큰 분들이 하시고, 저희는 비영리단체라 이웃을 위해 작은 변화를 일으키는 정서적인 일을 해요. 남을 돕는 건 거창한 일이 아니라도 실행하는 게 쉽진 않아요. 차분히 계속하고 있습니다."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한다는 강박이 있습니까?

"요즘 초등학생들의 꿈이 사제라서 부모님들이 걱정이 많으시답니다(웃음). ‘선덕여왕'을 할 땐 초등학생들이 ‘비담’이 될 거라더군요. 제 본성이 선하고 아니고 와는 상관없이 배우는 영향을 미치게 돼요. 각박한 세상에 주변을 돌보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파하는 건 필요한 일이죠.

다만 저에 대한 팬덤이 바로 그쪽으로 움직일 거라거나, 혹은 제 팬덤을 중심으로 그 활동이 퍼져나갈 거라는 기대는 조심스러워요. 오히려 반감이 생길 수도 있고요. 좋은 취지에 동참한다면 자생적으로 선한 길이 확장되리라 믿습니다."

‘열혈사제'는 지상파 드라마로는 드물게 시청률이 22%까지 나왔다.
‘열혈사제'는 지상파 드라마로는 드물게 시청률이 22%까지 나왔다.
-드라마가 끝나고 사제복을 벗었습니다. 무엇이 달라졌나요?

"서로에게 쪽팔리지 않게 임무를 완수했고, 그 대가로 다음의 기회를 갖게 됐습니다. 저는 여전히 집에 가서 어머니가 차려주시는 김과 김치, 가끔은 스팸이 올라간 밥상을 기쁘게 받을 뿐이에요."

-사랑하고 사랑받는 평온한 일상이군요.

"부모님과는 친밀한 관계예요. 어릴 때부터 부모님은 무슨 일이든 솔직하게 얘기해 달라고 저를 가르쳤어요. 저는 부모님과 지나치게 많은 대화를 나눕니다(웃음). 아무 것도 숨기는 것이 없지요."

-특별히 마음에 남는 대사가 있나요?

"드라마 막바지에 악인인 이중권을(김민재 분) 총으로 쏘려다가 이런 말을 하지요.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이라도 내가 너를 용서한다(마태오 18, 22)’.

용서라는 단어가 제 마음에 남았어요. 용서는 우리를 새로운 길로 인도하는 것 같습니다. 누구나 숨겨진 비밀이 있잖아요. 성인에게도 과거가 있고 죄인에게도 미래가 있다는 대사도 있지요. 내가 누군가를 그리고 누군가 나를 용서할 때야 인생의 다음 챕터로 넘어갈 수 있어요."

이 얼마나 ‘은혜로운 일이냐'며 그가 큰 소리로 웃었다. 은혜라는 말을 그의 입으로 들으니 더욱 은혜스러웠다. 김남길은 무교다. 그는 과거 촬영차 들른 절에서도 3개월 동안 하루도 빠지지 108배를 했다. 문득 이 열혈 인간의 종교는 친절과 성실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 시대의 지혜자를 만나면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지요?

"내 미래, 내가 어떤 길로 가게 될지는 궁금하지 않아요. 내 주변의 동료들이 잘 될 지, 내 가족의 건강이 괜찮을 지만 궁금합니다."

-자신에 대한 궁금증은 전혀 없습니까?

"저는 제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하다 보면 다 어떻게든 되게 되더군요. 예전엔 큰 사건이 중요했지만, 지금은 하루하루의 작은 행위가 중요하다는 걸 알아요. 주어진 시간을 성실히 보내다 보면 뭔가 이루어진다는 걸 경험으로 배웠죠(웃음). 내일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몰라요. 그래서 저는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삽니다. 그냥 성실하게, 잘(웃음)."

내 주변의 동료들이 잘 될 지, 내 가족의 건강이 괜찮을 지만 궁금하다는 김남길.
내 주변의 동료들이 잘 될 지, 내 가족의 건강이 괜찮을 지만 궁금하다는 김남길.
-마지막으로 인생에서 당신이 가장 잘한 결정 세 가지를 말해주겠어요?

"첫째 배우가 된 것. 둘째, 매 작품이 잘 되든 못 되든 내가 그걸 하기로 선택했다는 것. 셋째, 길 스토리를 시작한 것.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해 자책할 땐, 주변에서 말리는 사람이 많았어요. 하지만 저는 사람이, 세상이 변할 수 있다는 걸 진심으로 믿어요. 모든 건 상대적이라 저는 좋은 사람일 수도 상처 주는 사람일 수도 있어요. 다만 작은 NGO를 하면 제가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결정을 계속 확인하며 살게 돼요. 그 점이 좋습니다."

‘열혈사제'가 끝났어도 다들 자신을 ‘신부님'이라고 부르니, ‘앞으로 ‘성인(聖人)으로 살아야 하나 고민’이라고 그가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지금 자신의 성공을 ‘소소한 성취'로 규정지었다. 나는 김남길의 그런 담담한 성인(成人)다운 태도가 몹시 맘에 들었다. 살아가다 문득 알 수 없는 두려움에 휩싸일 때, 비음 자박한 그의 너그러운 목소리가 기억날 것이다.

"떳떳하니까 덜 불안한 겁니다. 하느님 말씀대로 살아줘서 고마워요."-드라마 ‘열혈사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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