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레터] 작은 생선 삶듯이

조선일보
입력 2019.05.04 03:00

이한수 Books팀장
이한수 Books팀장
노자(老子)는 요리를 자주 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정치를 요리에 비유할 정도였으니까요. '도덕경'에서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삶는 일과 같다[治大國若烹小鮮]"고 했습니다. 요리 좀 해본 사람이라야 이런 비유를 할 수 있을 터입니다. 작은 생선을 마구 뒤집으면 살이 떨어져 나가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들 수 없겠지요. 정치도 마찬가지로 조심하고 신중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고대 중국에서 재상(宰相)은 원래 요리사였답니다. 주나라 재상인 '천관총재(天官冢宰)'는 하늘에 제사 지낼 때 쓸 음식을 마련하는 직책이었다네요. 먹는 것이 하늘[以食爲天]인 까닭에 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음식을 공평하게 나누는 일이 재상의 역할이었답니다. 그러고 보니 한자 '재상 재(宰)'자는 '집[宀]' 아래에 '매울 신(辛)'자를 쓰네요. 주방을 맡은 사람이란 뜻이 있답니다. 신간 '음식으로 읽는 중국사'(더난출판)에서 읽었습니다.

정치란 결국 음식을 요리하고 이를 나누는 일이군요. '정치학개론'에 나오는 미국 정치학자 데이비드 이스턴의 유명한 정의가 있습니다. '정치란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다'. '전투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해도 배식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할 수 없다'는 군대 농담도 있습니다.

패스트트랙인지 사·보임인지 어려운 말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음식 만들어 나누는 권한 가졌을 때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롭게 해야 할 것입니다. 서툰 솜씨로 생선을 마구 헤집어 귀한 살을 다 흩뜨리거나, 음식을 배식하지 않고 독식하는 일은 정치라고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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