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오후 9시 30분. 기자는 카카오톡 오픈 채팅창(익명 채팅창)에서 '칭찬방'이란 키워드를 검색했다. '산업기술대 칭찬방' '20대 칭찬방' '편견 없고 따뜻한 우리네 인생' 등 5개 채팅방에 '가입'을 클릭해 입장했다. 기자의 프로필 대화명은 '누가 봐도 연애소설'. 각 채팅방에서 동시에 알림이 울린다. "소설님 안녕, 소설 쓰는 거 칭찬해." 아무 답을 않자 이어지는 대화들. "소설님 아무 말 안 하는 거 칭찬해."
기자가 운을 띄웠다. "저 아직도 회사에서 일하고 있어요." '칭찬 릴레이'가 이어졌다. "야근수당 칭찬해." "밤늦게까지 끈기 있는 당신 칭찬해." "때려치우고 싶은데 정신줄 잡은 당신 칭찬해."
카카오톡 오픈 채팅, 웹사이트 '웃긴 대학' 채팅창 등 랜덤 채팅방을 중심으로 일명 '칭찬방'이 유행하고 있다. 이 랜덤 채팅방들은 10~20대 사이 일면식 없는 사람들끼리 모여 키워드를 중심으로 대화하는 곳. 요즘 뜨는 키워드가 바로 '#칭찬방'이다. '동남보건대 칭찬방' '배곧신도시 칭찬방' '97년생 칭찬방' 등 학교·지역·나이별 다양한 칭찬방이 있다. '모두가 평등한 칭찬방'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함박칭찬샤워방' 등 주제를 내건 방들도 있다.
'칭찬방' 인기에 게이머 커뮤니티 '루리웹'에는 칭찬방을 주제로 시뮬레이션 게임 '소녀전선' 주인공을 등장시킨 팬아트도 올라왔다. IT 정보 커뮤니티 '클리앙', 자동차 커뮤니티 '보배드림' 등에도 '고려대 칭찬방'을 소재로 한 캡처들이 돌면서 '칭찬방'이 온라인상 붐을 탔다.
이 방의 암묵적 규칙은 '조건 없는 칭찬'. 욕설과 조롱, 과도한 홍보, 불필요한 도배 등을 제외한 모든 말에 칭찬으로 답하는 게 원칙이다. 반려묘 사진을 올리면 "심장 따뜻해지는 사진 칭찬해", "양치를 안 했어요"라고 올리면 "충치균도 생명이다 칭찬해"라고 응하는 식이다.
이들 대화는 '개그'와 '드립(애드리브의 준말. 인터넷 은어로 '재미있는 즉흥적 발언'을 뜻함)'의 연속. 평소 익명 칭찬방 대화를 즐긴다는 직장인 이혜경(여·24)씨는 "삶이 힘들고 팍팍하니까 드립을 주고받으며 위로를 얻고 싶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예전에 유행했다는 '오늘의 유머' 코너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며 "일상의 위안을 찾는 우리 세대만의 소통 방식"이라고 덧붙였다.
젊은 세대의 커뮤니케이션 형태에 주목하는 의견도 있다. 베스트셀러 '90년생이 온다'의 저자 임홍택씨는 그의 책에서 "밀레니얼 세대는 짧은 언어로 대화하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익숙하다"고 말했다. 임씨는 "이 세대는 적절한 타이밍에 한 줄 길이 드립으로 이어지는 '핑퐁 대화'를 즐긴다"며 "촌철살인으로 강한 인상을 남기며 대화하는 데서 재미를 찾는다"고 말한다.
직관적 해석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는 전문가도 있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요즘 젊은 세대는 악성 댓글을 달면서 한 사람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며 노는 방식은 식상하고 비합리적인 것으로 여긴다"고 했다. 이 교수는 "이들은 기성세대처럼 경쟁을 통해 누군가를 무찌르고 올라가야 한다는 기존의 성공 공식에 반대해 '화합'과 '공존'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며 "칭찬방은 이런 가치관의 단면을 보여주는 놀이 문화"라고 말했다.
'칭찬방'의 기원을 중국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중국판 칭찬방인 '콰콰췬(誇誇群)'. 위챗(중국판 카카오톡)을 통해 오픈 채팅창에 접속하면 익명 참가자들의 환대를 받으며 얘기할 수 있다. 한 참가자가 "오늘 저 술 취했어요, 칭찬해주세요"라고 말을 붙이면 "오늘 밤 충칭은 전부 당신의 것입니다, 꼭 칭찬해 드려야죠"라고 답하는 식이다. "환영해요!"라는 인사에도 '낭만적 답변'으로 화답한다. "'환영(歡迎)'한다는 두 글자는 보기에는 간단해 보이지만 사실 풍부한 감정들이 들어있죠. 멋지십니다!"라는 식.
케이블방송 채널 '중화TV'에서는 지난 3월 말 '위클리 차이나우'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콰콰췬'이란 키워드를 직접 다루기도 했다. '중국 핵인싸(무리의 중심을 의미하는 유행어)들의 필수 가입방'이라는 설명과 함께 칭찬방 대화들을 소개했다. 칭찬 의뢰인이 "버스를 잘못 탔는데 우산을 잃어버렸어요, 칭찬해주세요"라고 말하자 "사람은 잃어버리지 않았다니 다행이네요"라는 답이 올라온다. 단톡방에 오른손을 다쳐 붕대 감은 사진이 올라오자 "왼손으로 타자 칠 수도 있고, 삶에 대한 의지가 보이네요. 칭찬합니다" "남자가 나약한 모습도 스스럼없이 보여줄 줄 알고, 칭찬해요"라고 말해준다. 이 단톡방 캡처를 본 네티즌들은 "'아프다면서 스마트폰 만질 시간도 있고 여유 있네'라는 식으로 비아냥대지 않고 좋은 면만 칭찬해주는 바람직한 유행"이라며 "인스턴트식 힐링이라도 위로가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