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의원 보좌관, 학부모 단톡방서 '한국당 해산' 靑청원 독려

입력 2019.05.02 01:45 | 수정 2019.05.02 02:44

1·2당 해산 청원경쟁 185만 돌파

논란이 된 청와대 국민청원 사례 정리 표

청와대 국민 청원 사이트가 여야 지지층이 상대 당(黨) 해산을 요구하며 세 싸움을 벌이는 전장(戰場)으로 변질하고 있다. 지난달 22일 시작된 '정당 해산' 청원 경쟁엔 1일 현재 185만명 이상이 참가했다. 자유한국당 해산 청원에 찬성 의견을 밝힌 사람은 160만명, 더불어민주당 해산 요구 참가자는 25만명을 넘어섰다. 국회 1·2당을 해산시키라는 비정상적 청원 경쟁이 열흘째 이어지고 있지만, 청와대는 '새로운 민주주의 방식' '민심의 또 다른 표출'이라며 방치하고 있다.

지난달 말 국회에서 선거법 등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을 놓고 여야가 극한 대치를 벌인 이후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매일 평균 20만~30만명이 해산 청원에 참가하고 있다. 양쪽 지지층이 사활을 걸고 상대 당 해산 청원 경쟁에 나선 모습이다.

민주당의 국회의원 보좌관 A씨는 지난달 30일 인천의 학교 운영위원, 학부모 등 64명이 속한 카카오톡 채팅방에 한국당 해산 청원을 링크하면서 "안 하신 분들은 얼른 하세요" "지인 분들께도 전파 부탁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이에 일부 학부모는 "이 채팅방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곳인가" "정치하는 분들이나 하라"고 반발했다.

청원 청구인들은 "통진당 해산처럼 한국당과 민주당 모두 헌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정부가 헌법재판소에 해산을 제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들이 제시한 해산 요구 이유는 "여당을 사사건건 방해한다" "대한민국 의원인지 일본 의원인지 모르겠다" 등 정치적 이유가 대부분이었다. 정당 해산 요건인 민주적 기본 질서 위배와는 무관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청와대가 정당 해산이란 엄중한 과제를 마치 스포츠 경기 다루듯 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 위협"이라며 "청원이 정치적으로 이용돼선 안 된다"고 우려했다.

청원 참여자가 양측 모두 20만을 넘으면 청와대는 한 달 안에 공식 답변을 해야 한다. 청와대는 "정부가 정당 해산을 제소할 사안이 아니다"라는 취지로 원론적 답변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실제 정당 해산을 기대하고 청원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며 "촛불 혁명처럼 정치적 의지를 청와대 청원으로 표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여야 양대 정당 해산이라는 중대 사안을 아무런 여과 장치도 없이 청와대 게시판에 방치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종빈 명지대 교수는 "청와대가 정당 해산 같은 문제를 방치한다면 앞으로 다른 헌법 조직의 해산 청원도 계속 제기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세대 양승함 명예교수는 "정당 해산은 정당에 대한 사형 선고"라며 "누구를 죽여달라는 청원이라면 지금처럼 방치하겠느냐"고 말했다.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은 2017년 8월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을 맞아 문을 열었다. 그동안 소년법 개정, 낙태죄 폐지 같은 청원은 청와대와 행정부 관계자들이 답변하고 정책에도 반영되는 등 순기능을 발휘한 부분도 있다. 그러나 익명·복수 추천이 가능하고 '드루킹 사건'처럼 조작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역기능 우려가 계속 커지고 있다.

작년 동계올림픽 때는 특정 선수의 자격 박탈을 요구하는 청원이 제기됐다. '방탄소년단 강제 해체' '국가대표 축구 선수 A씨의 팔 문신 제거' 등 황당한 청원도 올라왔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특정 선수 자격 박탈처럼 청와대가 할 수 없는 일을 청원이라는 이름으로 받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했다. 최근에는 특정인 구속·사면·석방 등 정치적 목적을 가진 청원과 사법부에 대한 공격성 청원도 논란이 되고 있다.

올해 초 김경수 경남지사가 '드루킹 사건'으로 1심에서 법정 구속되자 청와대 게시판에는 '시민의 이름으로, 재판에 관련된 판사 전원의 사퇴를 명령한다'는 청원이 20만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작년 2월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판사에 대한 특별 감사 청원도 올라왔다.

국민 청원은 청와대와 여권이 주도하는 정치적 의제를 뒷받침하기 위한 용도로도 활용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월 김학의·버닝썬 사건 등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지시하기 직전, 청와대 게시판에는 관련 사안에 대한 국민 청원이 폭주했다. 청와대는 이를 근거로 "국민이 분노하고 궁금해하는 사안을 외면할 수 없다"며 수사 지시를 했다. 양승함 교수는 "청와대는 단지 국민의 의견 표출의 장을 열었다고 하지만, 여과 없는 감정 표출이 극단의 정치를 조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청원 게시판의 본보기로 삼았다는 미국 백악관의 '위더피플'은 선출직 공직 후보자에 대한 지지나 반대, 사법부나 주(州)정부 등 연방정부 소관이 아닌 사항에 대해선 답변을 거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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