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한·일 관계 기여한 천황에 사의"

입력 2019.05.01 03:01

퇴위하는 아키히토 일왕에게 서한… 李총리도 "천황님께 감사"
靑은 외교 관례라지만, 외톨이론 의식해 관계 개선 모색 가능성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퇴위한 아키히토(明仁) 일왕(日王)에게 한·일(韓日) 관계에 기여한 것에 사의(謝意)를 표명하는 서한을 보냈다고 외교부가 밝혔다. 외교부는 이날 문 대통령의 서한 발신 사실을 공개하면서 일왕 대신 '천황(天皇)'이라는 용어를 사용했고, 문 대통령도 서한에 천황으로 표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대통령이 나루히토(德仁) 왕세자의 일왕 즉위를 계기로 과거사는 물론 국방·경제 등 전방위로 악화한 한·일 관계의 개선을 모색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문 대통령이 서한을 보낸 사실을 전하며 "아키히토 천황이 재위 기간 중 평화의 소중함을 지켜나가는 것의 중요함을 강조해 왔고, 한·일 관계 발전에 큰 기여를 한 데 대해 사의를 표했다"고 전했다. 또 "퇴위 이후에도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해 힘써줄 것을 기대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나루히토 일왕 즉위를 축하하는 축전도 보낼 것으로 알려졌다. 이낙연 총리도 이날 자신의 SNS(소셜미디어)에서 "한·일 관계를 중시하셨던 아키히토 천황님께 감사드린다"며 "한·일 양국이 새로운 우호 협력 관계를 구축하도록 지도자들이 함께 노력하자"고 했다.

아키히토 일왕이 일본에서 국민적 존경을 받고 있고, 전쟁 범죄 반성을 수차례 표명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문 대통령이 '천황'이란 호칭으로 서한을 보낸 것은 외교 의전을 넘어 한·일 관계 개선 의지도 담은 것으로 해석됐다.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후 본격적으로 불거진 '4강 외교 실종' 논란, 중·일 밀착으로 인한 '코리아 패싱(한국 배제)'에 대응하기 위해 대일 외교 복원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문 대통령이 오는 6월 28~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G20(주요 20국) 정상회의 참석을 공식화한 상황에서 최근엔 "한·일 국장급 협의(4월 23일)에서 한국 측이 G20 회의를 계기 한·일 정상회담을 타진했다"는 일본 언론 보도도 나왔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한·일 관계를 개선할 기회가 G20이란 점을 양국 정부 모두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일 간 외교 악재(惡材)로 '한·미·일 3각(角) 안보 협력 체제'가 흔들릴 것을 우려해 미국이 중재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청와대는 적극적인 '대일(對日) 러브콜'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새로운 일왕 교체에 맞춘 외교적 행위"라며 "다른 정치적 의도는 없다"고 말했다. 일왕에게 서한을 보냈다는 사실을 청와대가 아닌 외교부가 공개한 것도 아직 청와대가 대일 관계 개선에 적극 나서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전직 외교부 차관은 "청와대가 서한 발신을 발표하는 게 훨씬 자연스러웠을 텐데 외교부에 맡긴 것은 일본과 아직 거리를 두려는 것"이라고 했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정부는 외교 관례상 '천황'이라는 표현을 써왔고 다른 나라도 그렇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역대 정부들도 공식적으로는 '천황' 표현을 써왔다. 다만 외교가에선 강제징용 배상 문제 등 과거사 현안에 관한 양국 정부의 입장 차가 워낙 큰 만큼 갈등은 계속 이어지리란 관측이 많다.

일본은 최근 미·중·러와의 관계를 강화하며 물밑에서 일본인 납치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북·일 정상회담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는 지난 29일 자신의 블로그에 "일본이 2003년 이후 처음으로 유엔인권이사회의 반북인권결의안 공동 발기국에서 빠지고 얼마 전 발표된 외교청서에서 북한 위협 관련 내용도 상당히 부드러워진 것은 일본이 정상회담 추진을 위해 물밑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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