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이 평화를 외칠 때 軍은 전쟁을 각오해야 한다"

조선일보
입력 2019.05.01 03:01

[박찬주 전 육군대장 수뢰 무죄후 뒤늦은 전역사]
"군인은 정치에 흔들리면 안돼" 軍 선후배들에 이메일로 보내

박찬주 전 육군대장
박찬주 전 육군대장은 30일 군 선후배들에게 이메일로 보낸 전역사(轉役辭)에서 "정치인들이 평화를 외칠 때 군은 전쟁을 각오해야 한다"고 했다. 박 전 대장은 지난 2017년 공관병 '갑질' 의혹으로 군(軍) 검찰의 수사를 받고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됐지만, 지난 26일 무죄를 선고받았다. 불명예스럽게 군을 떠난 지 1년 8개월여 만에 전역사를 쓴 것이다.

박 전 대장은 "정치 지도자들은 때때로 국가 이익보다는 정권의 이익을 위해서 인기 영합적 선택을 하는 경우가 있다"며 "후배 장교와 장성 여러분들은 군의 철저한 정치적 중립을 지켜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 군의 정치적 중립이란, 군이 정치적 성향에 흔들리지 않고, 심지어는 설령 정치 지도자들이 잘못된 선택을 하더라도 굳건하게 국가 방위 태세를 유지하여 국가의 생존과 독립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권이 능력을 상실하면 다른 정당에서 정권을 인수하면 되지만 우리 군을 대신하여 나라를 지켜줄 존재는 없다"며 "군이 비록 정치의 통제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정치보다 도덕적 우월감을 갖게 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했다.

박 전 대장은 "정치가들이 평화를 외칠 때 오히려 전쟁의 그림자가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왔다는 각오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그는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며 "평화를 만드는 것은 정치의 몫이지만 평화를 지키는 것은 군대의 몫"이라고 했다. 그는 "비록 정치 지도자들이 상대편의 선의를 믿더라도 군사 지도자들은 선의나 설마를 믿지 말고 우리 스스로의 능력과 태세를 믿을 수 있도록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또 "힘이 뒷받침되지 않은 평화는 진짜 평화가 아니며, 전쟁을 각오하면 전쟁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운명을 달리한 사랑하는 동기생, 백합 같은 인품과 샛별 같은 지성의 소유자 이재수 장군의 명복을 빈다"고 했다.

군 안팎에서는 박 전 대장의 전역사를 두고 현 정권과 군 수뇌부를 겨냥한 작심 발언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박 전 대장은 본지 통화에서 "현 정부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비판하기 이전에 군인들이 흔들리지 않고 대비 태세를 갖춰야 한다는 취지로 전역사를 썼다"며 "군인들이 (최근 여러 상황에) 휩쓸리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전쟁은 없다' '무엇 때문에 열심히 대비 태세를 갖추느냐'는 등의 풍조가 퍼져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그는 "뇌물죄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은 지금 떳떳하게 인사를 하고 가는 게 제 명예를 회복하는 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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