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으로 인위를 깨부수는… 이게 바로 전위

입력 2019.04.29 03:00

이우환… 전위예술 巨匠 이브 클라인과 세계관 연결하는 전시, 中 최고 미술관 PSA서 열려
"기계처럼 작품 쏟아내는 건 완전히 틀린 아방가르드"

이우환 화가
이우환
"아방가르드는 원래 위험한 것이다. 남을 즐겁게 하기 위한 게 아니다. 깨부수거나 다소 폭력적인 저항 의식이 작용한다. 오늘날 유명 작가들이 기계처럼 작품을 쏟아내고 팔아대는 건 아방가르드가 아니다. 초창기 아방가르드 작가를 망쳐 먹고 있는 이 상황을 반성해야 한다." 지난 27일 중국 상하이에서 만난 한국 대표 단색화가 이우환(83)이 말했다. 아방가르드를 상징하는 프랑스 화가 이브 클라인(1928~1962) 그림 앞에서였다.

동서양 미술, 아방가르드로 통하다

이우환과 그가 경애하는 이브 클라인을 연결하는 대형 전시 '더 챌린징 솔스(The Challenging Souls)'가 상하이시(市)가 운영하는 현대미술관 PSA에서 7월 28일까지 열린다. 기획 단계부터 화제였는데, 단색(單色)으로 동서양 현대미술을 평정한 두 거장의 첫 만남이기 때문이다. 중국 최고 수준의 미술관이라는 상징성까지 더해져 이번 전시는 이우환의 국제적 명성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이브 클라인 재단과의 친분으로 전시를 성사시킨 이용우(67) 상하이국제예술도시 총감독은 "이처럼 한국 작가를 세계무대에 세울 방안을 다각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우환은 전시장 1층과 2층을 잇는 계단에 신작 '무한의 계단'(2019)을 설치했다. 자연 상태의 흰 조약돌(이우환)과 파랑으로 채색한 돌멩이(이브 클라인) 2000포대를 계단 좌우에 쏟아 관람객으로 하여금 두 작가의 충돌과 화합을 통과토록 한 것이다. 이날 이우환은 "살아 있다면 가장 만나고 싶은 예술가였다"고 했다. 당초 2인전으로 기획됐으나, 중국 당국의 요구로 상하이 대표 추상화가 딩이(57)가 최근 추가돼 3인전이 됐다.

현대 미술 홀린 단색의 힘

전시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아방가르드 정신. 색 하나로 화면을 채우거나 붓 대신 여성 나체에 물감을 발라 종이 위에 뒹굴게 하는 등의 전위 실험을 감행한 이브 클라인, 최소한의 작업으로 정신성을 극대화한 일본 모노하(物派) 운동을 이끈 이우환의 공통분모다. "1년 넘게 일본에 머물며 이브 클라인은 매일 유도(柔道)를 연습했다. 이 체험이 그만의 세계관을 형성했다고 본다. 나 역시 일본에서 공부하며 1970년대 모더니즘과 소비주의의 정점에서 자연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게 됐다." 이번엔 작가별 대표작 20여 점이 나왔는데, 파랑(이브 클라인 블루)으로 채색된 초고가 회화 연작 '인체측정학'(1960)과 이우환의 푸른 단색화 '선으로부터'(1975)가 마주 보는 식으로 이색적인 통일성을 야기한다.

이우환이 중국 상하이 PSA 전시장에 놓인 ‘관계항―모멘텀’ 위에 섰다. 돌을 들었다 놔 유리를 깨뜨린 직후다. 이우환은 그 위에 올라가 발을 구르며 유리를 더 깨부쉈다.
이우환이 중국 상하이 PSA 전시장에 놓인 ‘관계항―모멘텀’ 위에 섰다. 돌을 들었다 놔 유리를 깨뜨린 직후다. 이우환은 그 위에 올라가 발을 구르며 유리를 더 깨부쉈다. /정상혁 기자

한국 대표 브랜드가 된 단색화지만, 이우환은 '동양의 미(美)' 운운을 경계했다. "나는 '동양'의 '동'자도 안 쓴다. 작가 입에서 '동양미' 한마디만 나오면 서양에선 작살난다. 바로 '잘 가라'다. 아프리카 사람이건 시베리아 사람이건 통할 언어여야 한다." 그의 미술 언어는 올해만 중국을 비롯, 프랑스 퐁피두 메츠 센터, 미국 뉴욕 디아비콘, 워싱턴 허시혼미술관 등의 개인전으로 잇따라 호명되고 있다. 이우환은 "오랫동안 해오니 내 생각이 조금씩 먹혀드는 것 같으면서도 내 의도를 사람들이 잘 알까 싶다"며 "나조차 내가 하는 걸 잘 모른다"고 말했다.

이것이 전위다, 두 거장의 퍼포먼스

특별한 퍼포먼스도 열렸다. 이브 클라인의 '심포니 모노톤 사일런스'(1947~1961)로, 연주 대신 20분의 단일한 불협화음과 20분의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이다. 당시 경악이었을 이 곤란한 상황을 이미 아는 100여명의 관람객은 편안해 보였다. 이 때문에 이 퍼포먼스는 '전위가 언제나 전위일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낳는다. "예술가가 늘 전위적일 수 있는가? 어려운 문제다. 조금만 잘나가면 미디어든 장사꾼이든 난도질해 별짓 다 하게 하니까. 자신이 살아 있다고 확인하기 위해 자꾸 질문해야 한다." 오후 6시, 이우환이 2층 전시장 가운데 놓인 설치작 '관계항―모멘텀'(2019) 앞에 섰다. 큰 자연석 하나를 철판과 유리 위에 올려둔 것으로, 이우환이 큐레이터 등 네 사람과 함께 돌을 살짝 들었다가 툭 놨다. '쩍' 소리를 내며 유리가 갈라졌다. 자연(돌)이 인위(유리)를 파괴한 것이다. "지금은 균열이 작아도 내일 되면 유리 전체로 퍼질 것"이라고 했다. 최근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은 그는 "살아 있다는 것은 챌린징(challenging)"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새 전시를 위해 다음 날 뉴욕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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