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산하기관 임원 교체 과정에 청와대 등의 불법적인 외압이 있었다는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은 단순 의혹이 아닌 청와대→환경부→산하기관으로 연계되는 조직적인 범행인 것으로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그동안 청와대는 김태우 전 특별감찰반원의 폭로로 논란이 일자 "통상 업무 일환으로 진행한 ‘체크리스트’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은 전(前) 정부의 ‘문체부 블랙리스트’ 사건과 유사하다고 판단했다.
28일 검찰 등에 따르면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부장 주진우)는 지난 25일 김 전 장관과 신 비서관을 직권남용·업무방해·강요 등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이들의 재판은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데, 첫 기일은 아직 잡히지 않았다.
◇검찰 "前정권 블랙리스트 사건 참고했다"
검찰은 이번 사건을 수사하며 박근혜 정부 당시 문체부 블랙리스트 사건의 법원 판결을 기준으로 삼았다. 검찰 관계자는 "'문체부 블랙리스트 사건의 법원 판단을 보면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도) 직권남용이 성립이 된다고 보고 기소할 때 참고했다"고 했다.
검찰의 설명처럼 문 정부의 이 같은 ‘환경부 찍어내기’는 전(前) 정부 ‘노태강 사건’과 흡사하다. 2013년 노태강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체육국장은 비선(秘線)실세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의 승마대회 관련 민원을 원하는 방향으로 들어주지 못했다는 이유 등으로 좌천성 인사를 당했다. 노 국장은 이후에도 사표를 낼 것을 종용받았고, 이에 응할 의사가 없었지만 "거절하면 주변 동료들까지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압박을 받고 결국 사직서를 제출했다.
법원은 박 전 대통령→김상률 교육문화수석→김종덕 문체부 장관→문체부 운영지원과장 순으로 지시체계가 있었다고 보고 청와대의 인사개입을 유죄로 판단했다. 1, 2심 재판부 모두 "국가공무원은 본인의 의사에 반해 면직을 당해서는 안 된다"며 "지위를 이용해 노 국장에게 사직을 요구했고, 노 국장의 의사결정의 자유가 제한됐다"고 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실행에 소극적이던 문체부 1급 실장 3명의 사직을 종용한 혐의에 대해서도 유죄 판단이 내려졌다. 당시 청와대는 정권에 반하는 문화·예술인 등에 대한 지원을 차단하는 조치를 했는데, 이 과정에서 실장 3명이 비협조적으로 나오자 사직을 종용했다. 이들도 마찬가지로 신병상 불이익을 우려해 결국 사직서를 제출했다. 법원은 "명시적인 해악의 고지는 하지 않았더라도 박 전 대통령 등은 지위를 이용해 1급 실장들에게 사직을 요구했고, 불안감을 일으키게 했다"며 "묵시적으로 해악의 고지를 한 것으로 보기 충분하다"고 했다.
◇前 정권 '적폐'로 몰더니…결국은 '내로남불'
검찰은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도 사직 의사가 없는 사람이 윗선의 압박으로 물러났거나, 원하는 인사를 윗선에서 내리 꽂은 경우로 봤다. 김 전 장관과 신 전 비서관은 박근혜 정권 때 임명된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들이 사표를 제출하도록 종용한 혐의를 받는다. 사표를 내지 않은 환경공단 상임감사 김모씨에 대해 '표적감사'를 실시해 기어이 사표를 받아내거나,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 자리에 친(親) 정부 성향의 인사를 앉히기 위해 후보자들에게 대외비인 업무자료와 면접자료를 제공하고, 인사권자에게 이들을 뽑도록 강요한 혐의도 받는다.
차이점도 일부 있다. 문체부 블랙리스트의 대상자는 ‘공무원’이고, 환경부 블랙리스트의 대상자는 ‘산하기관 임원’이다. 하지만 검찰은 정부 산하기관 임원도 사실상 공무원에 준해 신분이 보장된다고 판단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제정된 공공기관운영법에 따른 판단이다. 검찰 관계자는 "공공기관의 책임경영을 유도하기 위해 사장, 임원의 임기를 보장하도록 하고 있고 해임·징계 등을 하려면 합법적인 절차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며 "문체부 블랙리스트 사건도 (국가공무원법상) 1급 공무원의 신분을 보장하는 직접적 규정이 없지만, 이에 준해 보장돼야 한다고 법원이 판단했다"고 했다.
문체부 블랙리스트 사건은 박 전 대통령과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모두 2심까지 유죄를 선고받았다. 이 사건은 대법원에서 심리하고 있다. 하지만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은 김 전 장관과 신 전 비서관만 법정에 서게 됐다. 검찰이 청와대 인사수석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에서 기각됐고, 핵심 인물들이 입을 열지 않으면서 ‘윗선’과의 연결고리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 전 비서관의 상급자인 조현옥 청와대 인사수석에 대해서는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이를 놓고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꼬리자르기 수사"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