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4대강 보 개방, 물·관광객 끊겨"…지하수 37개로 '땜질'

입력 2019.04.27 14:00 | 수정 2019.04.27 15:12

정부, 4대강 보 개방…물 마르고 농업용수 부족 사태
농민 반발에 30일뒤 닫고, 1800만원짜리 지하수 파줘
"4대강 사업 후 살기 좋았는데, 정치싸움에 속 터져"

지난 24일 오후 2시 낙동강 구미보 상류에 있는 경북 상주시 낙동면 낙동리. 마을 곳곳에 높이 2.7m·무게 10톤(t)짜리 파란색 물탱크가 눈에 띄었다. 100m도 안 되는 거리에 물탱크 4개가 들어선 곳도 있었다.

지난 1월 낙동강 구미보 수문(水門)을 연 뒤 물이 마르자, 정부가 허겁지겁 농가에 파준 지하수와 연결된 물탱크였다. 물탱크 주변에는 지하수를 파던 구덩이가 방치돼 있었다. 한 농민은 "잘 쓰고 있던 보를 왜 열어서 세금 낭비하며 땅을 헤집고 다니는지 이해가 안 간다"며 한숨을 쉬었다.

정부는 지난해 6월 4대강 16개 보 가운데, 낙동강에 있는 구미보와 낙단보 수문을 완전히 개방한다는 방침을 내놨다. 2012년 보가 세워진 이후 처음으로, 보 개방 전·후 수질 등을 비교 관찰하겠다는 명목이었다. 농민들은 즉각 반발했다. 보 덕분에 물 걱정 없이 농사를 짓고, 관광객이 몰려든 마을에 해가 될까하는 우려에서였다.

지난 24일 경북 상주시 낙동면 낙동리 마을 길가에 50m 사이 새로 파진 지하수 3개가 들어서 있다. /최지희 기자
지난 24일 경북 상주시 낙동면 낙동리 마을 길가에 50m 사이 새로 파진 지하수 3개가 들어서 있다. /최지희 기자
◇보 개방 1달 만에 물 부족 사태…정부, 세금 들여 지하수 관정 사업 中
농민들의 격한 반대에도 정부는 지난 1월 24일 수문을 열었다.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농민들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구미보 물이 빠지면서 내천에 흐르던 물까지 말라 버렸다. 일부 농가에 물이 한 방울도 나오지 않는 사태가 벌어졌다. 인근 당근 재배 농가들은 파종(播種) 시기에 물이 말라 재배를 망쳤다. 결국 농민들은 물 사용이 가장 많은 4월 말 모내기 철을 앞두고 환경부에 이의를 제기했다.

농민 피해를 목격한 정부는 30일 만에 수문을 다시 닫았다. 하지만 이미 물이 빠져버린 상황에서 농민들의 물부족 현상을 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정부는 물이 끊긴 농가에 80~100m 깊이의 구멍을 파 지하수 시설을 마련해줬다.

지난 24일 경북 상주시 낙동면 낙동리 마을에 저수지를 파다가 물이 나오지 않아 방치된 구멍이 그대로 있다. /최지희 기자
지난 24일 경북 상주시 낙동면 낙동리 마을에 저수지를 파다가 물이 나오지 않아 방치된 구멍이 그대로 있다. /최지희 기자
80~100m 깊이로 지하수를 파다보니 기존 50m 깊이의 지하수를 쓰던 농가의 피해가 속출했다. 수위 차이로 흙탕물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정부는 피해 농가 전부를 대상으로 100m 깊이의 관정(管井)을 시행했다.

한 달 새 낙동리 마을에만 지하수 37개가 들어섰다. 전국적으로는 179개에 달하는 지하수가 새로 파였다. 비용도 문제다. 관정으로 지하수 시설을 만드는 데 1개당 약 1800만원의 비용이 투입된다. 책정된 예산만 77억원. 차후 보 개방을 대비한 지하수 관정 사업은 현재 진행형이다. 공주보 인근 지역에서는 지하수 관정 사업이 한창이다.

농민 김영근(57)씨는 "농업용수 부족하다고 그토록 수문 여는 걸 반대했는데, 다시 닫을 거면 처음부터 왜 시작했는지 모르겠다"며 "1800만원이 누구 집 애 이름도 아니고 다 세금 아닌가. 지금 온 동네가 지하수 판다고 공사판이 됐다"고 하소연했다.

보를 개방한 뒤 지난 2월 물이 끊겼던 농가 지하수에서 흙탕물이 흐르는 모습. /주민 제공
보를 개방한 뒤 지난 2월 물이 끊겼던 농가 지하수에서 흙탕물이 흐르는 모습. /주민 제공
◇환경부 "피해 예상 못해"…"곳곳 구멍, 지반층 약해져"
환경부는 정작 이런 사태를 예상하지 못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구미보 개방에 따른 피해가 예측됐던 구미 지역 농가에는 보를 개방하기 전 미리 지하수 파줬다"면서 "상주 지역엔 미처 예상하지 못한 피해가 발생해 보 개방 후 서둘러 지하수를 판 것"이라고 해명했다.

농민들은 ‘정치싸움에 왜 세금 낭비하느냐’고 입을 모았다. 수박을 재배하는 농민 김모(58)씨는 "지하수를 공짜로 파준다고 했을 땐 당장 물이 안 나와 파긴 했지만, 풍부하게 잘 쓰던 깨끗한 물인데 왜 환경단체와 정치권에선 4대강 사업을 싸잡아 부정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주먹구구식 관정’이 환경에 악영향을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하수 관정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업체 관계자는 "그동안 여러 사업을 해왔지만, 낙동리만큼 한 마을에 이렇게 많은 구멍을 뚫는 것은 처음본다"며 "가까운 위치에 지하수를 깊게 파기 시작하면 지반층이 약해져 어떤 환경 문제가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진용 강원대 지질학과 교수는 "땅 이곳저곳에 구멍을 파놓으면, 오수가 흘러 들어가 다른 지하수까지 오염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구미보를 개방한지 25일 째인 지난 2월 18일 낙동강물이 빠지고 모래톱이 드러난 모습. /독자 제공
구미보를 개방한지 25일 째인 지난 2월 18일 낙동강물이 빠지고 모래톱이 드러난 모습. /독자 제공
◇ 농민 "4대강 사업 만족…수문 열면 관광객도 사라져"
현장에서 만난 농민들은 4대강 사업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빈번하던 홍수 범람이 사라졌고 △농업용수가 풍족해졌으며 △강을 찾아 관광객이 몰려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마을 토박이 농민 황윤태(67)씨는 "4대강 사업 전, 홍수 때문에 마을 전체가 물에 잠겨 몇 명이나 죽었는지 아느냐"며 "여기 오래 살아온 우리는 전·후 비교가 되지 않겠나. 보를 없애버리면 살기 좋은 고장에서 비참했던 과거로 돌아가게 된다"고 했다.

낙동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이모(55)씨는 "주말엔 행락객과 낚시꾼들로 동네가 꽉 찬다. 피서철이면 구미보와 낙단보 주변에 주차할 곳이 부족할 정도"라며 "수문 개방으로 물이 빠지면 당장 관광객이 줄면서 동네 상권 자체가 무너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24일 구미보 위에 있는 상주시 낙단보 낙동강 일대 모습. 자전거를 타고 낙단보를 찾은 사람들과 보 인근 뭍에서 낚시를 하는 이들이 있었다. /최지희 기자
지난 24일 구미보 위에 있는 상주시 낙단보 낙동강 일대 모습. 자전거를 타고 낙단보를 찾은 사람들과 보 인근 뭍에서 낚시를 하는 이들이 있었다. /최지희 기자
예상치 못한 농가의 피해가 늘면서 정부의 보 개방 계획에도 제동이 걸렸다. 환경부 관계자는 "당초 올해 말까지 한강·낙동강 처리방안을 제시하고 추가 보 개방을 논의할 예정이었다"며 "추가 모니터링을 진행한 뒤 처리방안을 재검토하겠다는 방침"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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