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책선 따라… '평화의 발자국'을 찍다

입력 2019.04.26 03:03

[뜬 곳, 뜨는 곳] '안보 관광지'로 주목받는 철원
南北 대화 이후 새 관광지 조성
GOP 철책 안쪽까지 둘러보는 'DMZ 평화의 길' 상반기 중 공개

'월하리를 지나 대마리로 가는 길, 철조망 지뢰밭에서는 가을꽃이 피고 있다/꺾으면 발밑에 뇌관이 일시에 터져, 화약 냄새를 풍길 것 같은 꽃들/흘깃 스쳐가는 병사들 몸에서도 꽃 냄새가 난다.' 강원 철원군 철원읍 관전리의 조선노동당사 건물엔 분단의 아픔을 노래한 시가 적혀 있다. 철원 출신 정춘근 시인의 '지뢰꽃'이다. 노동당사는 광복 다음 해인 1946년 조선노동당이 지은 러시아식 건물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부른 '발해를 꿈꾸며'(1994)의 뮤직 비디오 촬영지로 잘 알려져 있다. 지상 3층 1850㎡ 규모였으나 6·25 전쟁을 거치며 앙상한 시멘트 골조에 총탄 자국이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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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남방한계선 내 자리한 강원 철원군 김화읍 생창리에 GOP 철책이 능선을 따라 길게 누워 있다. 이곳은 지난 1953년 체결된 정전협정 이후 민간인 출입이 허용되지 않는 금단의 땅이다. 정부는 올 상반기 중 백마고지 전적비를 출발해 GOP 철책을 지나 백마고지 전적비로 돌아오는 'DMZ 평화의 길'을 개방하기로 했다. /철원군
대한민국 최북단 철원군은 6·25 전쟁의 아픔과 분단의 슬픔을 간직한 고장이다. 6·25 전쟁 당시 가장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고, 정전 이후엔 안보 최일선을 담당해 왔다. 군사분계선과 맞닿아 있는 특수성 때문에 전체 면적의 98%가 군사보호시설로 묶여 개발이 더뎠다.

최근 철원군은 평화의 바람을 타고 새로운 안보 관광지로 떠오르고 있다. 우선 비무장지대 둘레길인 DMZ 생태탐방로가 이르면 올 상반기 중 일반에게 공개된다. 정부는 지난 3일 강원 철원과 고성, 경기 파주 등 3개 지역에 'DMZ 평화의 길'을 조성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27일 고성 지역이 첫 문을 연다. 철원은 올해 상반기 중 일반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총연장 15㎞의 철원 지역 둘레길은 도보로 백마고지 전적비에서 출발해 GOP 철책 남측을 따라 약 6㎞ 이동 후 차량으로 화살머리고지 GP를 방문하고 백마고지 전적비로 돌아온다.

지난 23일 강원도 철원 백마고지 전적비로 향하는 길목에 자작나무가 길게 늘어서 있다. 백마고지 전투 중 산화한 호국 영령의 넋을 기리기 위해 나무마다 태극기가 걸려 있다.
지난 23일 강원도 철원 백마고지 전적비로 향하는 길목에 자작나무가 길게 늘어서 있다. 백마고지 전투 중 산화한 호국 영령의 넋을 기리기 위해 나무마다 태극기가 걸려 있다. /주완중 기자
지난 20일 철원읍 산명리 백마고지 전적비 주변에는 휴일을 맞아 찾아온 관광객이 여럿 눈에 띄었다. 'DMZ 평화의 길'의 출발점이 될 이곳은 6·25 당시 열흘간 24번이나 고지의 주인이 바뀌며 치열한 전투가 펼쳐졌다. 전적비 입구에는 순백의 백마상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가족과 함께 전적비를 찾은 김주홍(52·서울)씨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 영령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하게 됐다"고 했다.

철원군 동송읍엔 안보 관광의 핵심 역할을 하는 제2 땅굴이 있다. 총연장 3.5㎞로, 지난 1975년 3월 19일 국군 진영에서 두 번째로 발견됐다. 한 시간 안에 중무장한 병력 3만명과 야포 등 대규모 침투가 가능하도록 특수 설계됐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의 문구로 알려진 월정리역도 빼놓을 수 없다. 서울과 원산을 오가던 경원선이 잠시 쉬어 가던 간이역으로 비무장지대(DMZ) 남방한계선과 인접한 최북단 기차역이다. 지금은 전쟁 당시 마지막 기적을 울렸던 객차가 앙상한 골격을 드러내고 있다.

철원은 천혜의 자연경관과 옥토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화산 폭발로 형성된 국내 유일의 화산강(江)인 한탄강이 있다. 용암이 흐르면서 형성된 현무암 주상절리와 협곡, 폭포 등은 푸른 강물과 어우러져 절경을 선사한다. 여름엔 래프팅을 즐기러 관광객이 모여들고, 겨울엔 꽁꽁 언 한탄강을 걸어 건너는 행사가 인기다. 환경부와 국방부, 철원군이 공동 협약을 맺어 조성된 생창리 DMZ 생태평화공원은 십자탑 탐방로와 용양보 코스 등 2개의 탐방 코스로 꾸며져 있다.

철원군은 철원평화산업단지와 남북 평화지역 추모 공간 등 평화 사업을 추진해 평화 선도 지자체의 입지를 다져나갈 계획이다. 철원읍 대마리와 중세리 일원에 330만㎡ 규모로 추진 예정인 철원평화산업단지는 강원도,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한국소기업소상공인연합회와 공동 업무협약 양해각서(MOU) 체결까지 마쳤다. 철원군은 또 남북 공동 유해 발굴 지역인 화살머리고지 일원에는 남북 평화지역 추모 공간을 조성하겠다는 구상이다. 이현종 철원군수는 "남북 정상회담 이후 철원군은 유해 발굴 사업 등 화해와 협력, 평화와 번영의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며 "평화 상징 도시 이미지를 구축하고 평화 산업단지와 남북 평화지역 추모 공간 조성 등의 사업을 완수시켜 실질적인 협력 기반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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