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칼럼] 어느 쪽이 친일이고, 무엇이 나라 망치는 매국인가

조선일보
  • 박정훈 논설실장
    입력 2019.04.26 03:07

    일본을 배워서 일본을 넘겠다는 克日의 민족 에너지가 우리를 여기까지 오게 했다
    무엇이 나라 망치는 친일 매국이란 말인가

    박정훈 논설실장
    박정훈 논설실장
    문재인 정권과 그 주변부가 친일 프레임을 구사하는 것은 좌파 통치를 위한 또 하나의 진영 논리에 다름 아니다. 진심으로 묻고 싶다. 우리 사회에 정말 일본을 숭모하는 친일 세력이 존재한단 말인가. 일본을 위해 우리 국익을 내팽개칠 매국노가 있다는 건가. 광복 후 70여 년이 흘렀고 세상은 천지개벽했다. 민족을 배신하고 나라 팔아먹는 1900년대식 친일은 소멸한 지 오래다. 그런데도 70년 전 잣대를 가져다 마녀사냥을 벌이고 정적(政敵)에게 '토착 왜구'란 해괴한 프레임을 씌우고 있다. 이게 소득 3만달러 '선진국'에서 벌어지는 일이 맞나 싶다.

    이 정권 들어 반일은 원리주의 종교처럼 폭주하고 있다. 좌파 교육감들은 난데없이 '친일 교가(校歌)' 공격에 나섰고, 어떤 지방 의회는 '전범(戰犯) 기업'을 몰아낸다는 조례를 들고 나왔다. 민노총은 부산 일본 총영사관 앞을 항일(抗日) 거리로 조성하겠다고 선언했다. 국제협약 위반 소지가 있는 강제징용 노동자상(像)도 세우겠다고 했다. 감정적으론 시원하지만 결코 국익에 도움 되지 않는다. 국가 이익이란 수많은 변수가 복잡하게 얽힌 고도의 전략 이슈다. 동상 세우고, 항일 표지 붙여야 민족 자존심이 산다는 발상 자체가 싸구려 민족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현대판 척화비(斥和碑)라도 세우겠다는 건가.

    쇄국을 명하는 척화비가 조선 팔도 곳곳에 세워진 것은 1871년 신미양요 직후였다. 서양의 힘을 목격하고도 나라의 문을 걸어 닫았다. 그해 일본은 서구 문물 복제를 위한 '이와쿠라 사절단'을 구미 12국에 파견했다. 사절단 대표 이와쿠라 도모미는 미국 상륙 한 달 만에 상투를 잘랐다. 사절단의 일원이던 6세 소녀는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대학을 세웠다. 교육으로 일본 근대화에 앞장선 그녀를 아베 정부가 새 5000엔 지폐의 초상 인물로 선정했다. 역사가 또다시 반복되는 듯하다. 한국은 반일의 척화비를 세우고, 일본은 국가 건설의 영웅담을 꺼내 들고 있다.

    150년 전 척화비와 지금의 친일 프레임엔 공통점이 있다. 적을 알고, 적을 극복하려는 것을 매국(賣國)으로 모는 단세포적 발상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광복을 쟁취하지 못했다. 남이 가져다준 독립이었기에 그것은 미완의 산물일 수밖에 없었다. 국력 경쟁에서 일본을 이기는 것이 진짜 광복이었다. 일본보다 부강하고 격조 높은 나라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독립을 이루는 길이었다. 광복 이후 우리는 일본이 넘보지 못하게 힘을 키우자는 극일(克日)의 열정을 불태웠다. 그것은 또 하나의 독립운동에 다름 아니었다. 새로운 국가 건설에 힘을 보탠 국민 하나하나가 독립운동가였다. 그렇게 나라를 발전시킨 극일의 민족 에너지를 이 정권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 디스플레이 산업의 사망을 알리는 소식이 전해졌다. 마지막 남았던 LCD 패널 제조사가 대만·중국 자본에 넘어간 것이다. '액정(液晶)의 제왕' 샤프는 이미 3년 전에 팔렸다. 세계를 석권하던 일본세가 완전히 궤멸됐다. 그렇게 만든 것이 한국이다. 삼성·LG가 피 말리는 생존 게임에서 승리하면서 일본 디스플레이를 시장에서 소멸시켰다. 어디 그뿐인가. 삼성·LG TV는 소니의 30년 독주를 종식시켰고, 현대·대우는 조선(造船)의 '히노마루(일장기) 군단'을 꺾었다. 현대차는 도요타, 포스코는 신일본제철에 필적하는 경쟁자로 떠올랐다. 이것이 극일이고 진짜 독립일 것이다.

    세계인은 한국을 '적폐 청산'이나 '소득 주도'로 기억하지 않는다. 그들이 떠올리는 것은 삼성이며 현대차 브랜드일 것이다. 정권 논리에 따르면 이 기업들은 전형적인 친일 기업에 해당된다. 삼성전자는 산요의 기술로 시작했고, 현대차는 '전범 기업' 미쓰비시에서 엔진을 들여왔다. 삼성 창업자 이병철은 일본을 스승처럼 모셨다. 그러나 일본은 극복할 대상이라는 관점을 한시도 놓지 않았다. 정주영도, 박태준, 구인회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일본을 알고(지일) 활용해서(용일) 이기겠다는(극일) '전략적 친일'이었다. 기업만이 아니라 모든 부문, 모든 국민이 그랬다. 저마다 자기 위치에서 일본을 경쟁자 삼아 국력을 키우는 데 힘을 보탰다. 광복 후 70년사(史)는 또 다른 독립운동의 역사였다.

    우리에게 일본은 아직 배울 게 많고 얻을 게 많은 나라다. '친해져야 이길 수 있다'는 극일의 관점을 이 정권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단세포적 세계관에 갇혀 국제 고립과 외교적 따돌림을 자초하고 있다. 힘이 약해지고 쪼그라드는 길로 나라를 이끌고 있다. 우리 국력이 쇠약해지면 누가 좋아할지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반일을 원리주의 교리처럼 휘두르는 권력자들에게 묻는다. 어느 쪽이 일본 돕는 친일이고, 누가 나라 망치는 매국을 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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