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의원 빼주고, 끼워 팔고, 국가 중심 제도 갖고 장난

조선일보
입력 2019.04.24 03:20

민주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한국당을 뺀 4당이 합의했다는 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법을 보면 기소 대상에 판검사와 경찰 경무관급 이상만 포함돼 있다. 고위 공직자의 권력형 비리 근절이라는 공수처 애초 취지와 달리 장·차관급과 대통령 친인척은 기소 대상에서 제외됐다. 국회의원도 슬그머니 대상에서 빠졌다. 이대로 통과되면 공수처가 아니라 '판검사 수사처'가 될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공수처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이 스스로 기소 대상에서 빠져나가는 행태는 2015년 '김영란법' 때와 꼭 닮았다. 당시 국회의원은 '공익적 청탁'에 대해선 처벌받지 않는다는 예외 조항을 만들어 법망을 피했다. 국회의원의 사익(私益) 추구와 연관이 있는 '이해충돌 방지' 부분도 삭제했다. 김영란법의 공식 명칭은 청탁 금지법인데 청탁이 문제가 될 소지가 많고 그래서 엄격한 잣대가 필요한 국회의원만 대상에서 빠져 버린 것이다.

조국 민정수석은 지난 2월 "국회의원 등 선출직을 공수처 수사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했었다. 그때는 왜 이런 말이 갑자기 나오는가 의아했다. 4당이 국회의원을 쏙 뺀 공수처법에 전격 합의한 것을 보니 국민 몰래 저희들끼리는 이런 얘기가 오가고 있었던 모양이다. 당리당략을 놓고는 한 치 양보 없이 으르렁대던 4당이 국회의원의 신분 안전을 위해서는 한마디 이견 없이 합의를 이뤘다.

바른미래당, 평화당, 정의당은 정당 득표에 따라 의석수 배분을 정하는 선거제 개편에 목을 매고 있다. 몇 석이라도 더 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공수처법 통과에 몸이 달아있다. 경제 지표는 싸늘하게 식어가고 가짜 비핵화 쇼는 1년 만에 들통이 나서 국정 전체에서 뭐 하나 되는 일이 없는 터라 뭔가 해냈다고 생색을 낼 거리가 필요해진 것이다. 그래서 공수처법을 선거제 변경에 끼워 파는 이번 4당 합의가 이뤄졌다. 경기의 규칙인 선거제를 제1 야당 동의 없이 처리할 수 있느냐는 비판도, 공수처법은 공직자, 국회의원을 빼고 껍데기만 남길 거냐는 지적도 아랑곳 않는다. 국가의 근본 틀을 이렇게 엿 바꿔 먹듯 거래하고도 국민 앞에 부끄러운 기색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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