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제1야당 동의 없이 '선거의 룰' 바꾸는 초유의 사태

조선일보
  • 김동하 기자
    입력 2019.04.23 03:01

    민주당, 검·경 이어 공수처라는 강력한 사정기관 손에 쥘 가능성
    평화·정의당, 선거제 개편으로 내년 총선서 의석수 대폭 늘 듯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22일 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처리키로 한 것을 놓고 정치권에서는 "총선을 앞두고 국면 전환을 노리는 여야 4당의 이해관계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결과"라는 말이 나왔다.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인사 검증 논란으로 수세에 몰린 국면을 타개하면서 사정 권력을 공고히 하는 동시에 범여권 연대 효과를 얻고, 야 3당은 지지부진한 당 지지율 반등 효과를 노리면서 내년 총선에서 안정적 의석 확보에 나설 기회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당은 이를 "4당의 밀실 야합"으로 규정하며 국회 보이콧을 강력 시사, 제1 야당 존재감 확보에 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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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 원내대표가 22일 국회에서 선거제 개정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법 등을 패스트트랙(신속 처리 안건)으로 처리하는 내용의 합의문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의당 윤소하, 민주평화당 장병완,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 /이덕훈 기자
    ◇여권, '게임의 룰'보다 범여권 연대 모색에 무게

    여당 지도부가 이날 야 3당과 패스트트랙을 합의한 것은 국면 타개책으로 해석된다. 여권에선 최근 장관 후보자의 잇따른 낙마와 이미선 헌법재판관의 '고액 주식 투자' 논란 등을 둘러싸고 수세에 몰린 상황이었다. 그러나 공수처 설치 법안 추진으로 문재인 정부 1호 공약인 '권력기관 개혁' 이행이라는 상징적 성과를 낼 수 있고 검·경으로 대표되는 사정 권력에 대해 또 하나의 지렛대를 얻게 된다는 관측이 나왔다.

    여권 관계자는 "공수처 설치는 문재인 정부의 핵심 공약"이라고 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이날 여야 합의에 대해 "합의안에 찬동한다"고 페이스북에서 밝혔다. 그러나 조 수석이 애초 이 글을 21일 오후 6시 34분에 작성한 것으로 나타나, 한국당에선 "조 수석이 합의를 하루 전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청와대 관계자는 "타결과 결렬, 두 경우를 예상해 두 개의 초안을 어제 만들어두고 오늘 공개한 것"이라고 했다.

    선거법·공수처법 패스트트랙 합의에 대한 각 당 입장
    내년 4·15 총선에서 '범여권 연대'로 사실상 과반을 확보할 수 있다는 현실적 이해관계도 작용했다. 여당 지도부에선 "이대로는 현 정부에서 어떤 개혁 법안도 처리할 수 없다"며 "한국당을 제외한 4당 연대를 공고히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심심찮게 나오던 상황이었다. 4당이 이날 합의한 선거제 개정안이 패스트트랙을 통해 국회에서 통과될 경우 내년 총선은 바뀐 룰로 치르게 된다. 여야가 1987년 개헌 이후 합의 처리해 온 '게임의 룰'을 이번엔 제1 야당의 동의 없이도 바꿀 수 있는 초유의 상황이 된 것이다. 여당에서도 "잘못된 관례를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올 정도다.

    여당에서는 지난달 정치개혁특별위원회 4당 간사가 합의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 기초한 새 선거제를 내년 총선에 적용할 경우 큰 손해를 볼 것은 없다는 현실적 판단도 하고 있다.

    ◇야권, '판 흔들기' 통해 의석 확보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은 최근 당 지지율이 한 자릿수에 머물고, 끊임없이 내홍에 시달리던 상황이었다. 최근 4·3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양당은 한 석도 건지지 못했다. 특히 보궐선거에서 참패한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의 경우 당내 입지가 급격히 줄어들었고, 김관영 원내대표 역시 당 내홍과 맞물려 리더십이 시험을 받고 있었다. 바른미래당에선 "지도부가 살기 위해 패스트트랙을 밀어붙이는 모양새"라는 말이 나왔다.

    내년 총선에서 호남 의석을 놓고 민주당과 경쟁해야 하는 평화당도 돌파구 모색 차원으로 해석된다. 평화당 한 중진 의원은 "호남 지지율이 2% 안팎인 상황이라 선거제 개편으로 판을 크게 흔들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정의당은 선거법 개정에 사활을 걸고 있다. 여야 4당이 합의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적용했을 때 정의당은 현행 6석보다 약 10석 많은 의석을 확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당에서도 "선거제 개편안은 정의당만 좋은 일 하는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한국당은 패스트트랙 관철 즉시 소속 의원 전원의 국회 등원을 거부하고, 대규모 장외 투쟁에 돌입할 방침이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제1 야당을 제외한 채 패스트트랙을 추진한다면 의회민주주의 조종(弔鐘)을 울리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당은 23일 긴급 의원총회를 열고 대책을 논의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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