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연(22·가명)씨는 미국 유학 중 조현병 증세를 보여 작년 초 귀국했다. 유학 간 딸이 "아무도 없는 방에서 나를 욕하는 소리가 들린다. 지도교수가 나만 싫어하고 따돌린다"는 말을 하자 김씨 부모가 집으로 돌아오라고 했다. 하지만 귀국 뒤 김씨는 "나는 정상이다. 정신과에 갈 필요 없다"며 가출했다. 연락을 피하는 딸을 어렵사리 찾아내도 "치료 필요 없다"고 완강하게 버텨 입원도 시킬 수 없었다. 김씨는 집 밖을 떠돌면서 '외톨이' 생활을 하고 있다.

김씨처럼 부모 등 보호자와 떨어져 있는 외톨이 정신 질환자가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7일 경남 진주의 한 아파트에서 방화와 살인을 저지른 안인득씨도 치료를 권하거나 입원을 시킬 가족과 떨어져서 혼자 살고 있었다. 작년 7월 경북 영양군에서 노모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을 살해한 조현병 환자 백모씨도 비슷하다. 기초생활 수급자인 노모가 함께 살았지만 백씨를 돌보기 어려웠다. 보건 당국은 이들과 같은 외톨이 정신 질환자의 정확한 숫자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가족과 분리된 '외톨이' 정신 질환자 증가

안인득씨는 사건이 발생한 아파트에서 2015년부터 혼자 살았다. 친형이 안씨를 입원시키려고 노력해봤지만 본인이 완강히 거부해 사실상 외톨이 상태였다. 지난해 7월 경찰을 살해한 백모씨도 함께 사는 가족이라고는 보호자 역할이 버거운 노모 뿐이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환자의 부모도 환자와 함께 나이를 먹어간다"면서 "보호자인 부모가 사망하거나 건강 상태가 안 좋아져 보호자 역할을 해주기 어려워지면 환자가 홀로 방치되는 경우가 생긴다"고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정신 질환자가 결국 '외톨이'가 되어 간다는 것이다.

환자가 치료를 거부하면서 가족과 멀어져 사실상 보호자가 없는 상태가 되는 경우도 많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부모 등 보호자가 있어도 치료에 대한 의견 차로 관계가 악화되기 일쑤"라며 "가족이 아니라 사회가 정신 질환자 관리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하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강력 범죄를 저지른 정신 질환자는 보호자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7년 살인·강도·방화·성폭력 등 범죄를 저지른 정신 질환자 937명 가운데 805명(86%)이 배우자가 없었다.

중증 정신 질환자 5명 중 4명은 관리 사각지대 방치

보호자가 없다면 정부나 지자체가 그런 역할을 맡아줘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2016년 기준 병원 밖 중증 정신 질환자는 43만4000여 명으로 추정되지만, 지자체별로 설치돼 있는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등록된 환자는 8만2776명으로 19.1%에 그쳤다. 전국 226개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인천 옹진군 등 15개 군은 아직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없다.

보건복지부는 "응급 입원과 행정 입원 제도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경찰과 의사의 동의로 자해하거나 남을 해칠 위험이 있는 정신 질환자를 사흘간 입원, 관리할 수 있는 응급 입원은 지난해 6600여건에 그쳤다. 지자체가 보호자를 대신해 입원을 강제하는 행정 입원도 지난해 9월 기준 2796건에 그쳤다. 두 제도 모두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김의태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경찰이 입원시킨 정신 질환자가 나중에 '강압적이었다'고 소송을 내는 등 문제 제기를 하는 경우가 있어 경찰도 응급 입원 등 절차를 부담스러워한다"고 했다.

경찰관이나 의사가 책임 논란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서는 법원이 결정하는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최준호 신경정신의학회 법제이사는 "선진국처럼 법원이 강제 입원 필요성을 판단하게 하는 '사법 입원'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