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시진핑(習近平) 정권이 관료 비위를 척결하고 효율성을 높인다는 취지로 벌여온 반(反)부패 운동이 도리어 관료주의를 강화하는 역효과를 낳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시도 때도 없이 '반부패 학습 회의'를 열면서 도전과 혁신보다 사상 검증에 열을 올린 탓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1일 "공무원 체질을 바꿔 업무 성과를 높이겠다는 현 정권 의도와 정반대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톈진시에서는 2017년 6월부터 지난해까지 총 1만6000건의 공무원 대상 반부패 회의가 열렸다. 하루에 30여건꼴이다. 전직 톈진시장과 공안국장이 잇따라 수뢰죄로 낙마하자 시가 자정 의지를 보이겠다며 시작, 회의 횟수를 늘리려 소규모 조별 토론회를 반복적으로 열었다.

관영지 톈진일보는 "톈진시가 철저하게 공무원 기강을 확립했다"고 자화자찬했지만, 공무원들 사이에선 "매일 회의에 참석하느라 업무를 못 한다"는 말이 나왔다.

일선 공무원들은 업무 능력보다 '청렴결백'을 입증하는 데 더 신경 쓰고 있다. 광둥성의 한 공무원은 상부로부터 '요주의 인물'로 분류된 뒤 자신의 사상이 문제없다는 점을 밝히기 위해 '사회 안정 목표'라는 거창한 제목으로 장문의 글을 써내야 했다.

업무에 소극적인 태도가 퍼지면서 중소기업 대출 허가 등 각종 행정 절차도 늦어지고 있다. 좡더수이 베이징대 정부청렴연구소 부소장은 "엄격한 공무원 평가제도는 관료들을 '책임 회피의 달인'으로 만들고 있다"고 했다.

이런 지적이 계속되자 중 당국은 지난달 11일 '형식주의 해결을 위한 일선 부담 해소'라는 지침을 내리고 공무원의 문서 작성·회의 등 업무 부담을 현재보다 30~50% 이상 줄이라고 했다. 지난해 10월엔 '감독 검사 업무의 규범화' 지침에서 공무원 감독 업무를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줄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