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궁금] 누구는 석방, 누구는 기각...보석, 기준있지만 결국 판사 마음

입력 2019.04.21 06:00

김경수 보석과 이명박 보석은 질도, 종류도 달라
"아프다" "늙었다" "일해야 한다" 사유도 제각각
법조계 "구속 여부부터 엄격하게 가리는 게 추세"

보석으로 석방된 김경수 경남지사와 이명박 전 대통령. /연합뉴스
보석(保釋). 보증금 납부를 조건으로 구속 집행을 정지하고 구속 피고인을 석방하는 제도다. 이명박 전 대통령, 김경수 경남지사, 양승태 전 대법원장,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안태근 전 검사장 등이 보석을 신청했다. 이 전 대통령과 김 지사는 보석을 허가받았고, 다른 이들은 보석 청구가 기각됐거나 심문이 진행 중이다. 개별 피고인의 조건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법원이 내리는 판단도 제각각이다.

어떤 경우 보석을 허가해주고, 어떤 경우 불허하는 것일까. 사람들마다 제각각인 보석 조건을 결정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보석에도 대원칙은 있다. 형사사법절차에서 보석과 관련한 조항은 형사소송법 94조부터 100조에 규정돼 있다. 우선 보석의 청구권자는 피고인 본인이나 변호인·법정대리인·배우자·직계친족·형제자매·가족 등이다.

법원에 따르면, 보석은 크게 ‘필요적 보석’과 ‘임의적 보석’으로 나눠진다. 필요적 보석은 증거인멸·도주 우려가 있는 경우, 사형·무기 또는 징역 10년 이상의 죄를 범했거나 상습범인 경우, 주거가 분명하지 않은 경우 등 ‘예외적인 사유’가 아니라면 보석을 허가해 불구속 재판을 받게 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판사 출신 변호사는 "구속 여부는 이미 수사단계에서 영장실질심사를 통해 다투는 내용이기 때문에 재판에 넘어와서 보석을 신청할 경우 큰 사정 변경이 있지 않는 이상 기각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지난 17일 보석이 허가돼 서울구치소에서 풀려난 김 지사와 지난달 5일 보석 청구가 기각된 양 전 대법원장, 보석 심리 중인 안 전 검사장 등은 ‘필요적 보석’에 해당된다. 김 지사는 "현직 도지사로서 업무를 처리해야 하고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가 없다", 양 전 대법원장은 "구속 중에 방대한 기록을 검토하며 검찰 주장에 반박하기 어렵다", 안 전 검사장은 "증거 대부분이 법무부 자료다. 피고인은 이미 검찰을 떠나 자료를 찾을 수도, 찾을 권한도 없다"며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지난해 사법연감을 보면 2008년 구속 피고인 중 보석을 청구한 비율은 16.9%(1만221명)였고, 이중 이 가운데 허가된 사람은 42.9%(4386명)이었다. 10년 뒤인 2017년의 경우 전체 구속 피고인의 11.4%(6079명)가 보석을 청구해 36.3%(2204명)가 풀려났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갈수록 불구속 재판이 보편화되고 있어 보석 신청율이 줄어드는 것이며, 상대적으로 구속된 사람은 그만한 사유가 이미 인정된 경우가 많아 보석 허가율도 낮아지는 것"이라고 했다.

‘임의적 보석’은 필요적 보석의 예외 사유가 있더라도, 보석을 꼭 해줘야 하는지를 한번 더 판단하는 절차다. 법원 관계자는 "보석 신청이 들어오면 우선 필요적 보석에 해당하는지를 따져본 뒤 예외적 사유가 있으면 기각하게 되는데, 이 경우에도 재판부는 보석이 필요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지, 즉 임의적 보석 요건에 해당하는지를 살펴본 후 최종 결정한다"고 했다. 피고인 측의 청구 없어도 법원이 직권으로 따져보는 경우도 있다. 2017년 전국 법원에 접수된 보석사건 6324건 가운데 3.8%인 245건은 재판부가 직권으로 보석 여부를 판단한 것이었다.

임의적 보석의 대표적인 유형은 '병(病)보석'이다. 피고인 측이 청구하는 경우도 있고, 재판부가 구속 피고인의 건강상태를 파악해 스스로 판단하는 경우도 있다. 이 전 대통령은 "수면무호흡증 등 건강이 악화됐고 재판부가 변경됐다"며 보석을 청구했었다.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이 전 대통령은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기 때문에 필요적 보석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보석을 청구하며 건강상의 이유를 든 것은 이 때문"이라고 했다.

이 전 대통령 사건 항소심 재판부는 지난달 6일 보석을 허가하면서 "병보석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서도 "구속만기일이 다가오기 때문에 충실한 심리를 위해 임의적으로 보석을 허가한다"고 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도 두 차례나 보석을 청구했지만 모두 기각됐다. 김 전 실장은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후 1심에서 "고령이고 건강이 좋지 않다"며 불구속 재판을 받게 해 달라고 요구했으나, 법원은 "도주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화이트리스트’ 사건 항소심에서도 건강 상태 등을 이유로 다시 보석을 청구했으나 재판부는 "보석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보석의 조건은 사실 판사의 재량에 달려있다. 형사소송법에는 범죄의 성질 및 죄상(罪狀), 증거의 증명력, 피고인의 전과·성격·환경 및 자산, 범행 후 정황 등을 고려하도록 돼 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주거지 제한, 보증금 납부 등의 조건을 내건다. 보통 필요적 보석보다는 임의적 보석의 조건이 까다롭다고 한다. 필요적 보석으로 풀려난 김 지사는 보석금 2억원에 주거지를 경남 창원시로 제한해 사실상 경남도지사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했다.

반면 이 전 대통령은 보석금 10억원에 주거지를 서울 논현동 자택으로 제한했으며, 변호인과 직계혈통, 배우자 외에는 접견을 제한하고 통신도 금지시켰다. 이 전 대통령측 변호사는 보석이 인용된 후 "이렇게 까다로운 보석 조건은 처음 본다"고 했었다. 서울중앙지법 한 판사는 "임의적 보석은 보석을 하지 말아야 할 사유가 있음에도 허가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 엄격한 조건이 붙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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