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차 회사 없애고 폐차장으로 먹거리 대신하겠다는 황당한 발상

조선일보
입력 2019.04.18 03:20

산업통상자원부가 500억원 규모의 원전 해체 펀드를 조성하고 기술 개발에 나서 2022년까지 원전 해체 분야에서 전문 인력 1300명을 배출하고 관련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원전 해체 분야 시장이 국내 22조원, 세계적으론 550조원 규모라면서 이걸 미래 핵심 먹거리로 키워보겠다는 것이다.

정부 주장은 탈원전으로 원전 건설·운영 분야에서 일자리와 산업 생태계가 사라지더라도 이를 원전 해체 분야 육성으로 만회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이는 마치 현대기아차를 없애고 대신 번듯한 폐차장을 차려 자동차 산업의 일자리와 수출 능력 등을 대체하겠다는 것처럼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대국민 사기에 가깝다. 정부는 원전 해체가 무슨 대단한 부가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는 것처럼 포장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국제 경험을 보면 원전 한 기 해체에 5000억~1조원 정도 든다. 앞으로 해체 경험이 축적되면 비용은 훨씬 싸질 것이다. 미국 시카고의 자이언 원전 두 기의 해체 프로젝트가 2013년부터 진행 중인데 여기서 일하는 인력은 450명밖에 안 된다. 또 원전 해체는 설비의 방사선량이 충분히 떨어지도록 기다리면서 진행하기 때문에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국내 원전 25기를 1차 수명 때까지만 가동하고 폐로한다 하더라도 최종 해체 완료까지는 80년 이상 걸릴 것이다. 22조원이면 얼핏 많아 보이지만 연간으로 따져 수천억원 수준이다.

이에 반해 우리가 아랍에미리트에 건설하는 원전 4기는 건설비만 20조원, 설비 수명 60년 동안의 운영 관리비 54조원, 부품과 핵연료 납품비 10조원을 모두 합치면 90조원짜리 초대형 프로젝트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원전 16기를 건설할 계획인데 건설비만 100조원 든다. 현재 세계적으로 건설 중인 원전만 18국 56기이다. 한국은 단단한 원전 건설 산업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어 원전 건설 단가가 프랑스의 절반, 미국의 3분의 1에 불과할 정도로 경쟁력이 있다. 세계 첨단 경쟁력을 갖춘 거대 산업 분야 하나를 통째로 포기하고 이제부터 선진국 기술을 따라잡아야 하는 원전 해체 분야에서 승부를 걸겠다고 나서는 것은 정상적 판단 능력을 갖춘 정부라면 쳐다보지도 않을 전략이다.

미국은 40년 1차 수명에 더해 20년 연장 운전을 승인받은 원전이 2017년 기준 전체 원전 99기 가운데 84기나 된다. 연장 운전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는 고리 1호기를 35년만 쓰고 폐로한다고 한다. 우리가 미국보다 부자인가. 월성 1호기는 7000억원을 들여 사실상 새 원전으로 만들었는데 폐로한다고 세워놓고 있다. 대통령의 잘못된 정책과 고집을 뒷받침한다고 왜곡이 왜곡을 낳고 나라와 국민에게 엄청난 부담을 안기고 있다.

우리가 미국처럼 1차 수명을 20년 연장한다면 고리 1호, 월성 1호기를 빼놓고는 2043년이나 돼야 새로운 해체 대상 원전이 생겨난다. 정부의 탈원전에 대해선 국민도, 기업도 반대하고 있고 여권에서도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금 정권의 남은 3년 임기 뒤 탈원전 정책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인데 정부 말을 믿고 해체 산업에 뛰어들겠다는 기업과 전문 인력이 몇이나 되겠나. 이 어이없는 행태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답답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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