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가라앉는 섬 투발루 사람들 "농지 사라지니 통조림 먹고 살아요"

조선일보
  • 푸나푸티(투발루)=이명신 탐험대원
  • 취재 동행=이옥진 기자
    입력 2019.04.16 03:27 | 수정 2019.04.16 10:30

    [청년 미래탐험대 100] [14] 기후변화 최전선 ,투발루의 경고
    국제개발 관심 많은 29세 이명신씨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투발루의 수도 푸나푸티의 유일한 활주로는 물바다였다. 활주로를 적신 것은 만조(滿潮)를 맞아 땅에 넘어들어온 바닷물이다. 아이들은 곳곳에 생긴 물웅덩이에서 물장구를 치며 놀았다. 간단한 나무판자를 가져다 서핑을 하는 아이도 보였다. 이곳의 해발고도는 4m로, 투발루에서 가장 높은 지대다. 제시카(12)는 말했다. "물에 기름이 뜬 게 보이죠? 저기 해안가에 있는 바닷물처럼요. 이 물이 저 물(바닷물)이에요."

    '투발루'를 구글 검색창에 쓰면 '가라앉는다(sinking)'는 말이 자동으로 붙는다. '가라앉는 섬나라'라는 무서운 별명을 가진 이 나라는 요즘 논란의 중심에 있다. 기후변화 영향으로 해수면이 계속 상승하면 가장 먼저 사라질 나라 중 하나로 지목된다.

    한 주 동안 투발루에 머물며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을 만났다.

    ◇작은 섬은 '엑소더스' 시작됐다

    서핑장이 된 활주로가 다가 아니었다. 투발루에서 목격한 '변화'의 현장은 충격이었다. 몇 가지만 소개한다.

    2018년 8월 투발루의 수도 푸나푸티를 하늘에서 찍은 모습. 길쭉한 뱀 모양의 섬을 둘러보는 데는 2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푸나푸티에서 폭이 가장 넓은 곳은 600m 정도고, 가장 좁은 곳은 5m도 되지 않는다. 투발루 사람들은 “해안가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했다. 아래 사진은 지난달 20일 투발루 푸나푸티공항 활주로에 생긴 물웅덩이에서 네미야(6)가 널빤지로 서핑을 즐기는 모습. 이 활주로(해발고도 약 4m)에는 만조 때마다 땅 위로 바닷물이 올라온다고 한다. 이날 오후 푸나푸티는 최대 만조(king tide)가 3.25m에 달했다.
    2018년 8월 투발루의 수도 푸나푸티를 하늘에서 찍은 모습. 길쭉한 뱀 모양의 섬을 둘러보는 데는 2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푸나푸티에서 폭이 가장 넓은 곳은 600m 정도고, 가장 좁은 곳은 5m도 되지 않는다. 투발루 사람들은 “해안가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했다. 아래 사진은 지난달 20일 투발루 푸나푸티공항 활주로에 생긴 물웅덩이에서 네미야(6)가 널빤지로 서핑을 즐기는 모습. 이 활주로(해발고도 약 4m)에는 만조 때마다 땅 위로 바닷물이 올라온다고 한다. 이날 오후 푸나푸티는 최대 만조(king tide)가 3.25m에 달했다. /게티이미지코리아·푸나푸티(투발루)=이옥진 기자
    ①푸나푸티의 면적은 25.8㎢, 울릉도의 3분의 1 정도 크기다. 바닷물의 범람이 잦아 주민들이 시멘트로 메워버린 둑길에 섰다. 폭은 5m도 안 된다. 어느새 그 시멘트 위에도 바닷물이 넘어와 찰랑대고 있었다.

    ②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엠마 아이오푸(30)와 작은 배를 빌려 타고 서쪽으로 20분가량을 달렸다. 엠마가 가리킨 곳엔 검은색 암초만 10여개 있었다. '테푸카 사빌리빌리.' 테니스 코트만 한 크기였다는 어떤 작은 섬은 1999년 물에 완전히 잠겨 사라져 이름만 남았다.

    ③푸나푸티 주변의 몇몇 작은 섬에선 이미 '엑소더스'가 시작됐다. 이들이 수도로 몰려와 푸나푸티 인구는 2002년 대비 37%가 늘었다. 이 '기후 난민'들은 대개 해안가에 있는 옛 미군 참호를 대충 고쳐 산다. 이주촌엔 쓰레기가 쌓여 있었다.

    ④투발루 수퍼마켓엔 채소류가 거의 없었다. 생선 몇 종류와 코코넛뿐이다. 나머지는 통조림이다. 바닷물이 수시로 범람하는 투발루에선 이제 제대로 농사를 짓기 어렵다. 통조림에 의존하는 투발루인은 10명 중 4명이 비만이었다.

    ◇"삶이 불안해요. 피난처가 없잖아요"

    지난달 21일(현지 시각) 투발루 푸나푸티 나우티초등학교 8학년 2반 학생들이 ‘한국에 하고 싶은 말’을 큰 종이에 써서 들어 보이고 있다. 맨 오른쪽 에 있는 여성이 이명신 탐험대원.
    지난달 21일(현지 시각) 투발루 푸나푸티 나우티초등학교 8학년 2반 학생들이 ‘한국에 하고 싶은 말’을 큰 종이에 써서 들어 보이고 있다. 맨 오른쪽 에 있는 여성이 이명신 탐험대원. /푸나푸티(투발루)=이옥진 기자

    해수면 상승이 뒤집어놓은 투발루의 일상 이야기는 쉼 없이 이어졌다. 나는 이런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을 투발루 어린이들의 목소리가 궁금했다. 푸나푸티 나우티초등학교를 찾아갔다.

    "기후변화를 생각하면 슬퍼요. 왜냐하면 우리나라를 잃을 수도 있으니까요." 이 학교 학생 투케우(13)는 '기후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즉답을 했다. '자연재해, 해수면 상승, 오염, 공포….' 여학생 노포시는 "기후변화 때문에 제 삶이 불안해요. 피난처가 없잖아요"라고 했다.

    학생들에게 '한국에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나무를 많이 심으세요" "차 타는 걸 줄이세요" "쓰레기를 태우지 마세요"…. 전체 학생 25명 중 기후변화에 대해 걱정한다는 학생이 21명이었다. 석탄 연료 사용이 많은 한국은 이산화탄소 배출량 7위(경제 규모는 12위)에 올라 있다.

    지난해 네이처커뮤니케이션지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투발루의 연평균 해수면 상승률은 3.9㎜다. 이대로라면 100년 후 이 아이들의 나라는 사라진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투발루 아이 리사의 목소리가 계속 떠올랐다. "투발루는 작은 나라이지만 다른 나라 친구들이 위험에 처한다면 도울 거예요. 우리 서로를 도와서 기후변화를 멈춰요."

    [미탐100 다녀왔습니다]

    "내가 할 몫, 작은 일이라도 실천하며 살래요"

    "우리는 단순히 살아남는 것 이상으로 번영할 자격이 있다."

    태평양 마셜제도의 시인 캐시 젯닐키지너가 2014년 유엔 기후회담에서 각국 정상들 앞에서 한 말입니다. 수많은 섬나라 사람들이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살아남기도 힘든 상황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함축한 외침이었습니다. 특히 투발루는 이번 세기 안에 모든 땅이 물에 가라앉을 것이라고들 합니다.

    2015년 세계보건기구(WHO) 서태평양지역사무소 재난위기관리부서에서 인턴십을 했을 때 투발루 상황을 처음으로 접했습니다. 당시 초강력 사이클론 '팸(Pam)'이 강타한 투발루는 나라 전체가 기후변화로 얼마나 큰 위협에 처해질 수 있는지 보여줬습니다. 4년 만에 다시 만난 투발루는 여전히 그 위협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기후변화는 어쩌면 인류 역사상 최초로 모든 인류가 힘을 합해야 하는 문제일지 모릅니다. 이 문제에 있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쉽게 답을 찾을 순 없겠지만, 계속해서 '제가 할 몫'을 고민하고 작은 일이라도 실천해나가고 싶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지금은 과연 어떻게 평가될까요? 적어도 '함께 노력했다'고 기록됐으면 좋겠습니다.

    투발루 위치 지도

    ☞투발루

    투발루는 호주에서 북동쪽으로 4000㎞ 떨어진 곳에 있는 섬나라다. 산호섬 9개가 넓게 퍼져 있다. 울릉도의 3분의 1 크기인 투발루는 국토의 평균 해발고도가 2m 미만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고통받는 대표적 나라로 꼽힌다. 국토의 대부분이 이르면 50년, 늦어도 100년 안에 사라지리라는 관측도 나온다.

    청년 미래탐험대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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