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취] 貧農·장애인과 60년… '임실 치즈'의 아버지

입력 2019.04.15 03:00

벨기에 귀족 가문 출신 지정환 신부 88세로 선종
"전쟁의 땅에 희망을 품게 하자" 국내 최초의 치즈 공장 만들어

'임실 치즈'의 아버지 지정환 신부.
'임실 치즈'의 아버지 지정환 신부. 그의 이름 지정환은 '정의가 환히 빛나게 하려고 지랄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연합뉴스
'임실 치즈'의 아버지로 불리는 지정환(88) 신부가 지난 13일 오전 숙환으로 선종했다. 고인은 1931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기사 작위를 받은 귀족 가문의 3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1959년 천주교 전주교구에 신부로 부임하며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부임 당시 '전쟁의 땅에 희망을 품게 하자'고 다짐했던 그는 반세기 넘게 이 땅의 가난한 농민과 장애인을 위해 살았다.

지 신부가 처음 농민들과 함께 뛰어든 사업은 갯벌 간척이었다. 1961년 전북 부안성당에 부임한 뒤 지역 농민들과 함께 99만㎡ 바다를 농지로 만들었다. 간척된 땅은 농민 100명에게 돌아갔다. 당시 한국 음식에 적응하지 못해 빵과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다 담낭에 문제가 생겨 제거 수술을 받았다. 1964년 수술을 위해 벨기에로 돌아갔다 6개월 뒤 한국으로 돌아와 전북 임실성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임실군에 부임한 지 신부는 지인으로부터 산양 두 마리를 선물받아 키우다 치즈 생산에 나서게 됐다. 팔고 남은 산양유를 치즈로 만들면 농민을 위한 고소득 사업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1967년 국내 최초의 치즈 공장을 만들었다. 부모가 준 2000달러가 종자돈이었다. 그러나 치즈 생산은 2년 가까이 성과가 없었다. 지 신부는 직접 유럽의 치즈 공장을 찾아가 방법을 배우고 귀국했다. 마침내 1969년 한국에서 최초로 치즈 생산에 성공했다. 이후 임실 치즈가 점점 유명해지자 지 신부는 치즈 공장을 주민이 운영하는 협동조합에 아무 대가 없이 넘겼다. 1980년대부터는 장애인 공동체 '무지개 가족'의 지도 신부로 중증 장애인 재활 사업에도 헌신했다. 한국 치즈 산업과 사회복지에 이바지한 공로로 2016년 법무부로부터 우리나라 국적을 받았다. 빈소는 전주시 덕진구 서노송동 천주교 전주 중앙성당에 마련됐다. (063)277-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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